
[뉴스토마토 김태현 기자] 그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 엄희준 광주고검 검사가 연루된 쿠팡 수사 외압 의혹 등 이른바 '쿠팡 사태'로 난리가 났지만, 강한승 전 대표와 대형로펌 김앤장 출신 쿠팡 고위직들은 논란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강 전 대표는 개인정보 유출 면책 조항이 만들어졌던 시기 쿠팡을 이끌었습니다.
이번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핵심은 지난해 11월쯤 면책조항이 신설될 당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누가 해당 조항을 검토·작성했는지, 어디까지 보고가 이뤄졌는지, 그 시점에 이미 개인정보 유출 정황을 인지했는지 여부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관봉권 띠지·쿠팡 상설특검의 수사 대상에서도 벗어나 있습니다. 쿠팡 수사에 직접적인 외압이 있었는지 여부가 특검의 수사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지난1월21일 강한승 쿠팡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쿠팡 택배노동자 심야노동 등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9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쿠팡 창업자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 강한승 전 대표 등은 쿠팡 각 사업부의 주요 현안을 보고받아 왔습니다. 공교롭게도 강 전 대표는 윤석열씨의 사법연수원 동기입니다. 이에 '강한승 체제'의 쿠팡은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김앤장 출신 변호사들은 영입해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쿠팡파이낸셜, 법무팀 등 곳곳에 배치했습니다. 각 쿠팡의 계열사는 분쟁이 생기면 변호사들을 통해 가이드 라인을 하달하고, 협상 대신 고소·고발 등 법률적 대응을 진행해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된 것이 바로 지난 10월 국정감사 때 문지석 광주지검 부장검사가 폭로한 '쿠팡 일용직 노동자 퇴직금 미지급 수사 외압 사건'입니다. 해당 사건은 수사 정보가 쿠팡에 사전에 흘러갔다는 의혹입니다.
앞서 지난해 9월26일 오전 11시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은 쿠팡 풀필먼트서비스(CFS)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 하려고 했습니다. CFS는 쿠팡 물류센터 운영을 총괄하는 핵심 계열사입니다. 당시 압수수색은 노동청 관계자, 부천지청 관계자 등 극소수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압수수색 집행 2시간여 전인 오전 9시 이전에 김동희 차장검사가 수사를 맡은 문 부장검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문 부장검사는 압수수색 실제 집행시간이 11시였던 것을 해당 사건이 불기소 처분된 이후인 지난 5월에서야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다소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됩니다. 문 부장검사가 지난 10월 국회에 출석해 엄희준 검사 등이 수사 외압을 행사했다고 폭로한 이후 쿠팡 안팎에서는 공공연하게 자료를 폐기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쿠팡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각 회사에 포진한 김앤장 출신 변호사들이 사업에 대한 법률 검토 뒤 일종의 '가이드라인'까지 정해준 것으로 안다"면서 "엄희준 외압 사건 폭로 이후에 내부 자료를 폐기하라는 지시가 내려와서 업무 마비가 발생한 적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해당 지시가 실제 문서나 공식 절차로 존재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특검은 지난 11일과 14일 두 차례 문 부장검사를 소환조사 했습니다. 특검은 문 부장검사를 상대로 상부의 사건 처리 지시가 어떤 방법과 절차로 이뤄졌는지 파악했습니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 대표가 12월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관련 청문회에서 눈을 감고 있다. (사진=뉴시스)
쿠팡, 미국선 '중요 보안 사고'…면책 조항은 누가 만들었나
헤럴드 로저스 쿠팡 대표이사는 지난 1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사고가 난 데이터의 경우에는 민감도 측면에서 중대한 사고로 규정되지 않기 때문에 미국 증권위 대상으로 한 공시의무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로저스 대표는 청문회 약 4시간 전 미국 증권증권거래위원회(SEC)에 '중대한 사이버 보안 사고'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공시했습니다. 미국 상장 기업은 보안 사고가 중대하다고 판단하면, 8-K라는 양식으로 4일 안에 반드시 SEC에 보고해야 합니다. 쿠팡 보고서는 제목부터 '중대한'이 들어가 있고, 양식도 8-K로 작성됐습니다.
쿠팡 안팎에선 '면책 조항'이 생긴 지난해 11월쯤을 주목해야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쿠팡의 경영 관리 부문을 맡았던 강한승 전 대표는 2023년 재선임 됐지만 지난해 5월 모회사인 쿠팡lnc로 자리를 옮겨 북미 지역 사업 개발 총괄 및 해외사업 지원 업무를 맡게 됐습니다. 쿠팡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은 "강 전 대표가 왜 북미총괄로 간 것인지 확인한 필요가 있다"는 했습니다.
일단 쿠팡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권고에 따라 해킹 등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회사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면책 조항을 삭제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면책조항'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습니다. 면책조항을 검토했던 관계자들과 해당 시기 면책조항을 왜 만들었는지 여부도 조사대상입니다.
한편, 국회 과방위는 이날 쿠팡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은 쿠팡 김범석 의장과 강한승·박대준 전 대표를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증감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김태현 기자 taehyun1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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