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오스트레일리아의 두 지자체를 시작으로 국내 226개 지자체 등 세계 2300여곳의 지방정부가 ‘기후 비상사태(Climate Emergency)’를 선언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기후 붕괴(Climate Breakdown)’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목도하는 현상이 완만한 ‘변화’가 아니라, 비상벨을 울릴 만큼 즉각적인 행동이 필요한 ‘비상 상황’이라는 것이다.
지난달 비영리 과학 프로젝트 ‘기후행동추적(CAT)’은 현재 추세대로라면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이번 세기말에 지구 온도가 2.6도나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최선의 낙관적 시나리오’에서조차 최소 1.5도에서 최대 2.4도 상승한다. ‘1.5도 저지’ 목표가 벼랑 끝에 몰린 셈이다. 이 붕괴의 터널을 빠져나갈 출구가 있기라도 한 건가? 딱 하나 있다. 바로 메탄 감축이다.
이산화탄소가 지구를 서서히 데우는 온돌이라면, 메탄은 순식간에 열을 올리는 번개탄이다. 대기 중 체류 시간이 12년에 불과한 메탄은 지구에 끼치는 온실효과가 20년 기준으로 이산화탄소보다 80배 이상 강력하다. 거꾸로 말하면 메탄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면, 단기간에 지구 온도를 낮출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글로벌 메탄 평가> 보고서에서 2030년까지 메탄 배출량을 45% 줄이면, 2040년대에 0.3도를 낮출 수 있다고 밝혔다. 기후 붕괴의 터널에서 탈출하는 비상구의 열쇠는 다름 아닌 메탄 감축이다.
메탄을 줄이기란 쉽지 않다. 우리 식생활을 바꾸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소가 트림하면 막대한 메탄이 나온다. 방목지를 만들고 가축 사료로 쓸 옥수수 농사를 짓느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숲도 사라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에너지 전환이 지구적 과제로 부상하는 동안, 축산업의 ‘정의로운 전환’은 정책 테이블 위로 올라오지 못했다. 지난달 22일 브라질 벨렝에서 막을 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시급한 과제인 ‘메탄 감축’에 대해 유의미한 합의는 없었다.
좀처럼 축산업의 정의로운 전환에 관해 구체적인 개혁 과제가 의제화되지 않고 있다. 세계적인 동물단체도 ‘채식을 하자’는 당위적 구호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축산업에 대한 규제나 탄소세 논의가 자칫 동물 착취 산업을 공식적으로 용인하는 결과로 이어질까 우려하는 이들의 정서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매년 시민사회가 여는 ‘기후정의행진’의 참여 여부를 두고 동물운동가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있었다. 기후정의행진이 내건 ‘공장식 축산 반대’ 슬로건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이들이 있었다. 이처럼 ‘동물 해방’이라는 이상과 ‘축산업 규제’라는 현실적 대안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사이, 거대 축산 자본은 기후 감시의 사각지대에서 몸집을 불려왔다.
영국의 비영리 민간 연구소인 푸드라이즈와 북유럽 그린피스, 지구의벗 등이 이번 당사국총회를 앞두고 펴낸 <지구를 굽다(Roasting the Planet)> 보고서는 그런 점에서 일독할 만한 가치가 있다. 세계적인 육류 및 유가공 업체 45곳을 분석한 결과, 이들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10억2000만톤(이산화탄소 환산량)으로 나타났다. 만약 이들이 하나의 나라라면, 세계 2위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거뜬히 제치고 온실가스 배출량 9위를 차지한다. 상위 5개 기업의 배출량만 합치면, 쉐브론이나 쉘, 비피(BP) 같은 거대 에너지 기업의 배출량을 넘어설 정도다. 보고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다. ‘메탄 배출의 주범은 영세한 농가가 아니다. 소수의 거대 글로벌 축산 기업들이다.’
메탄 배출의 주범은 영세한 농가가 아니라 소수의 거대 글로벌 축산 기업들이다. (이미지 출처='지구를 굽다' 보고서)
글로벌 축산 기업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은 소의 메탄 배출을 줄이는 사료첨가제를 개발한다거나 축산 분뇨로 바이오가스를 만드는 등의 기술적 해법 일색이다. 소가 내뿜는 메탄을 절반으로 줄인다고 치자. 소고기 소비량이 두 배 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또한, 축산업계에서는 메탄의 영향력을 100년 기준(GWP100)으로 평가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메탄은 화학적 분해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20년 기준(GWP20)으로 할 때보다 100년 기준으로 할 때 통계상 잡히는 배출량 수치가 절반가량 줄어든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통용되는 기준이지만, 그런 계산법으로는 메탄 감축이 비상구의 열쇠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메탄 배출을 줄일 수 있을까? 기술적 해법을 포함해 생산 단계의 배출량 감축과 육류 소비 축소 등 공급과 수요 두 차원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보고서의 제안은 명료하다. 첫째, 사료 생산부터 소비에 이르는 전체 공급망의 메탄 배출량 보고를 글로벌 축산 기업에 의무화하자는 것. 둘째, 공장식 축산과 거대 축산 기업에 투입되는 막대한 보조금을 줄이고, 대신 유기 축산 등 생태농업과 식물성 단백질 산업 등으로 돈의 흐름을 돌리자는 것. 마지막으로 학교와 병원, 관공서 급식에서 채식 메뉴를 장려하고, 과도한 육류 마케팅을 지양하자는 것이다.
고기가 줄어든 식탁이 허전할지 모르지만, 기후 붕괴로 사라질 우리의 미래보다 허전하진 않을 것이다. 화석연료 에너지 기업에 준하는 ‘기후 책임감’을 대형 축산 기업은 느껴야 한다. 메탄을 잡지 못하면 1.5도 저지가 불가능하다. 마지막 비상구가 닫히고 있다.
남종영 KAIST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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