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당분간 또 술 권하는 사회가 될 모양이다. 이럴 때면 하드코어 포르노 기법을 과감하고 파격적으로 도입해 만든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의 <숏버스>(2006)가 생각난다. 거기서 트랜스젠더 저스틴(저스틴 비비안 본드)은 게이 바에서 사람들과 기차놀이를 하듯 줄지어 다니며 가짜 젖가슴을 흔들어댄다. 그(녀)는 피켓을 하나 들고 있는데 거기 이렇게 쓰여 있다. ‘Sex, not War!’ 전쟁 따위 할 생각일랑 말고 섹스를 하자, 오르가즘을 느끼자, 뭐 그런 얘기였다.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이 연출한 <숏버스>는 한국에서는 한동안 원판 그대로 상영되지 못했다. 영화 <숏버스>의 한 장면. (사진=스폰지)
이 영화는 한국에서 한동안 원판 그대로 상영되지 못했다. 2009년 정식 개봉된 버전은 너덜너덜 다 잘린 판본이었다. 이 나라가 뭐 그렇게 위대하고 담대한 적이 있었던가. 원본은 2006년 당시 11회째였던 부산국제영화제 ‘미드나잇 패션’ 섹션에서 상영됐다. 영화 세 편을 자정부터 아침 6시까지 트는 행사였다. <숏버스>는 새벽 4시에 상영됐는데 사람들은 오직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자정부터 극장에 들어가 원치 않는 영화 두 편을 먼저 ‘때려야’ 했다. 바로 옆자리에는 당시 집행위원장이었던 김동호 옹이 6시간 내내 같이 앉아 있었는데 <숏버스>를 보면서 하도 침이 넘어가서 민망해 죽을 뻔했다,가 아니라 아침 6시쯤 영화가 모두 끝나고 다들 한참 발기한 모습의 표정을 서로 쳐다보기가 ‘거시기’해서 죽을 뻔했던 기억이 난다. 극장을 나와 이른 아침 부산 해운대 시장 뒤를 걸어가다가 순댓국을 먹었다. 당연히 소주도 마셨다. 그때 머릿속에 떠오른 말이 ‘Alcohol, not Politics’였다.
당시 한국은 대통령이 노무현일 때였고, 그때나 지금이나 보수(극우) 야당, 제도권 언론들은 진보 대통령을 물어뜯지 못해서 안달이 나 있었다. 그를 어떻게든 끌어내리려고 생떼를 쓰던 때였다. 20년 가까이 흘렀지만, 그 점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따위 짓 하는 인간들, 기사들, 뉴스들을 보느니 차라리 술이나 마시자는 것이 이 연사 드리는 말씀이라는 얘기인 것이라는 것인 것이다. 어차피 이 원고는 술 원고인 것인 것이다.
음악에는 두 종류가 있다. 반드시 술을 마시면서 들어야 하는 음악이 있고 조용히 (바늘 떨어뜨리는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두 다리를 딱 붙이고 들어야 하는 음악이 있다. 후자는 잘 모르겠고 전자는 확실히 안다. 쿠바 음악이다. 쿠바 재즈, 살사 리듬이 들어간 쿠바 음악이다. 엊그제(12월2일) 서울 시내 모처에서 외교부 주최 한국-쿠바 친선 음악회라는 이름의 행사가 열렸다.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속으로 외교부가 콘서트 이름을 지은 꼴 하며 쯧쯧, 하는 마음이었다. 팸플릿도 무슨 외교부 문서처럼 만들어놨다. 공무원들이 영혼이 없다는 비아냥은 종종 듣더라도 이렇게 감각이 없어서야 되겠느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공연은 ‘무지하게’ 좋았다. ‘로스 에르마노스 아브레우 트리오’와 야롤디 아브레우가 함께한 4인 공연이었다.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드럼 그리고 퍼커션으로 구성됐다. 이름으로도 알 수 있듯이 아브레우 삼 형제 그리고 아버지인 듯이 보였지만 공연이 끝나고 나와서는 삼 형제 중 두 명은 엄마가 같고 한 명은 다르다는 쪽으로 사람들이 입방아를 찧었다.
<쉘 위 댄스>는 1996년 일본 영화로, 야쿠쇼 코지와 쿠사카리 타미요가 주연을 맡았다. 사교댄스 교실을 무대로 한 코미디 영화다. (사진=브에나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
공연 내내 나는 옆자리의 사업가 L에게 (그는 쿠바를 스무 번 정도 다녀온, 내가 보기에 쿠바 스파이이거나 국정원 직원일 것이다) 도대체 이런 공연을 술 없이 어떻게 쭈그리고 앉아 보고 있느냐며, ‘누가 기획한 거야 대체? 왜 술이 없어’라고 툴툴거렸다. L은 ‘형, 맥주 안 가지고 왔어?’라며 낄낄댔고 옆자리에 앉아 있던 그의 애인은 두런대는 우리 둘을 시끄럽다며 핀잔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살사댄서답게(그러면서 낮에는 기독교 관련 대학 본부에서 회계 업무를 한다) 의자 아래 두 다리로 살짝살짝 스텝을 밟고 있었다. 그 장면은 일본 감독 수오 마사유키가 만든 <쉘 위 댄스>(1996)를 연상케 했는데 거기서도 주인공 스기야먀(야쿠쇼 코지)는 회사에서 회의하는 동안 책상 밑으로 라틴댄스 스텝을 밟는다. 다들 그렇게 몸을 흔들어대고 싶은 마당에 술이 없으니 원.
무대 위에서 피아노를 치는 디에고 아브레우는 스페인 애니메이션 <치코와 리타>의 딱 치코 같은 느낌이었다. 이 성인용 애니메이션에서 치코와 리타는 전날 밤 한바탕 사랑을 나눈 터였다. 남자는 눈을 떠 악상이 떠올랐고 벗은 몸 그대로 피아노를 친다. 남자의 소리에 잠이 깬 여자 리타는 역시 풍만한 굴곡의 벗은 몸 그대로 피아노 치는 남자를 뒤에서 껴안는다. 이날 외교부스러운 제목으로 열린, 전혀 외교부스럽지 않았던 내용의 콘서트는 영화와 술을 불렀다. 술 핑계는 늘 삼천리를 넘나드는 법이다.
2010년 스페인 애니메이션 영화 <치코와 리타>의 한 장면. (사진=찬란 제공)
공연장 주변은 을지로 인쇄 골목이다. 당연히 노포가 많다. 종종 가는 맥주&위스키 집인 ‘더 템플’은 그 이름답게 쇠락하는 절간이 돼가는 중이다. 인디카(IPA)는 이제 안 판다고 했다. 얼렁뚱땅 한 잔 맥주로 몸을 적시고 나왔다. 몸은 소주나 소맥을 부르는 상태였고 을지로에는 오래된 노포들 천지다. 그 중 하나가 안동장이라는 중식당이다. 1948년에 문을 연 중식당이니 신탁통치 찬반 시위부터 6·25 전쟁, 서울 수복, 이승만 하야, 박정희 쿠데타. 10·26, 12·12 등등 볼 꼴 못 볼 꼴을 다 보며 살아온 중식당이다. 사람 나이로 치면 77세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 사업가 L이 말했다. ‘근데 여기 사실 음식은 별로야 형.’ 살사 애인은 맥주와 고량주를 시켰다. 소맥이 아니라 ‘고맥’인데, 그녀는 두 술을 섞은 뒤 내게 잔을 내밀며 ‘냄새가 죽여요’라고 했지만 난 그게 그리 좋지는 않았다. 술도 다 취향이 있는 것이다.
고량주를 맥주에 섞는 걸 보고 있자니 어쩔 수 없이 브라질과 상파울루가 생각이 났다. 브라질에는 카샤사라는 그 나라 전통 증류주가 있다. 사탕수수 베이스다. 쿠바 럼도 사탕수수로 만들지만 둘은 맛에 있어 현격한 차이가 난다. 향의 세기가 다르고 목 넘김의 강도 또한 다른 느낌이다. 카샤사가 훨씬 더 사탕수수밭에서의 노동 강도를 소환시킨다. 쉽게 말해서 카샤사가 훨씬 더 마시기 어려운 술이라는 얘기이다. 알코올 도수가 48도에서 54도 사이다. 상파울루의 한 레스토랑에서 우리 일행이 좀 ‘먹어줬고’ 그 정도 팔아준 만큼 주인장이 고맙다며 감사주를 내온 적이 있다. 최고 도수 카샤사라고 했고 우리식 소주잔만 한 작은 잔에 찰랑찰랑 채워 왔다. 감사주인 만큼 원샷을 하는 게 서로 예의라는 말에 속아 한 번에 털어 넣었다가 죽을 뻔했다.
브라질 증류주 카샤사. (사진=필자 제공)
한국 남자는 카샤사를 마시는 데서도 기지를 발휘한다. 브라질에는 두 종류의 국민 브랜드 맥주가 있는데 하나가 오리지나우(ORIGINAL)고 또 하나가 브라마(BRAHMA)다. 둘 다 라거이고 둘 다 맛은 별로지만 브라질 한여름 더위에 바짝 차갑게 냉장한 오리지나우는 나쁘지 않다. 한국식 소맥으로 카샤사를 섞기에 브라마보다는 오리지나우가 낫다. 한국의 ‘건아’는 브라질까지 진출해 폭탄주를 퍼뜨리는 데 성공하고 돌아왔다. 이것도 한편으로는 K-컬처이다. 근데 컬처일까. 과연…
이른바 카맥을 제조해 마시던, 상파울루 파울리스타 거리에 있는 한 게이바의 풍경을 잊지 못한다. 건너 테이블의 게이 커플은 크게 싸운 뒤 화해주를 마시는 듯 한쪽은 끊임없이 울며 파트너의 품에 안겨 있었는데 그 모습이 못내 부러우면서도 쳇, 나는 어쩔 수 없이 스트레이트인 모양이군,이라는 생각을 했다. 천국은 천국 같은 데 이상하게 낯선, 마치 짐 자무쉬의 영화 제목 <천국보다 낯선>(1984)이 생각났다. 모든 게 다 지난 6월의 일이다. 그때 그 바에 같이 있었던 사람과 나는 <천국보다 낯선>의 흑백 스크린 속 배우들이었을까. 나는 그 바에 있던 상파울루의 게이들에게 이방인이었을까. 아마 천국보다 낯선 사람이었을 것이다. 카맥을 잊지 마시라. 카샤사라는 술을 기억하시길. 모든 술에는 그때의 기억과 추억이 있는 법이다.
한동안 차가운 거리에 나앉아 또 시위를 벌여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텀블러에 한두 잔 분량의 소주, 위스키 등을 챙기는 것도 추위를 이기는 어리석은 지혜일 수 있다. 하기야 한국의 시위 문화는 집회가 끝나면 주변 술집을 ‘돈쭐내는’ 것이다. 개 같은 정치, 극우들의 난동을 보느니 술이나 먹는 게 맘 편할 수 있다. 그들의 반동을 술판으로 막아내야 한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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