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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은 없애는 동물실험…"법 만들어주세요"
미국·유럽서 의무화 폐지 기조 확대
국내 실험 증가…관련법 제정안 불과
2023-01-30 06:00:00 2023-01-30 15:08:36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동물실험 중단을 촉구하는 한국동물보호연합.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과학기술이 진보하면서 그동안 소외받았던 동물복지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국가들은 이런 기조를 받아들여 동물실험을 폐지하는 추세인데요. 이와 달리 우리나라에선 오히려 실험에 쓰인 동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 인간의 번영을 위한 동물의 희생을 막기 위한 법안도 제정안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동물실험, 꼭 필요한가요
 
동물실험은 교육이나 시험, 연구 및 생물학적 제제의 생산 등 과학적 목적을 위해 동물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실험을 말합니다. 주로 화장품이나 의약품처럼 사람의 몸이나 입, 혈관 등을 통해 주입되는 물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기 위한 절차로 활용됩니다.
 
실험에 쓰이는 동물은 다양합니다. 쥐나 페럿 같은 설치류부터 원숭이가 속하는 영장류까지 모두 동물실험 대상이 됩니다.
 
지금까지 동물실험이 끊이지 않은 것은 인간에게 주어질 수 있는 고통이나 위해를 사전에 평가하고 미리 발견해 예측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가급적 동물실험을 줄이고 실험 동물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면서 대체 방안이 있을 경우 이를 우선 적용한다는 원칙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죠.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고, 동물성 원료도 배제한 비건 제품도 이런 원칙에 근거합니다.
 
주요 국가서 퇴출 기로
 
일종의 의무사항이었던 동물실험은 주요 국가에서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미국에선 10여개 주가 동물실험을 반드시 거쳐야만 화장품 등의 제제를 만들 수 있다는 조항을 없앴습니다. 유럽에서도 오가노이드를 활용하는 등의 대안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죠. 오가노이드는 인간의 신체나 기능을 재현한 장기유사체입니다. 흔히 미니 장기, 유사 장기로도 불리는데 줄기세포를 3차원 배양하거나 재조합해 만듭니다.
 
과학 기술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이 동물실험을 없애는 쪽으로 기운 것은 실효성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는 제제를 동물에게 미리 투여할 경우 큰 줄기의 유효성과 안전성 데이터를 끄집어낼 수 있긴 하지만 작은 차이까지 알아내기 어렵기 때문이죠. 인간 세포 조직을 이용하는 등 진일보한 기술을 통해 실험을 거칠 수 있는 만큼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가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한몫했습니다.
 
글로벌 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SI)이 전개한 동물대체시험법 서명 캠페인. (사진=HSI)
 
한국은 오히려 실험 동물 증가
 
해외 사례와 달리 우리나라에선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실험에 쓰이는 동물의 숫자가 급증한 것입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실험동물 실태 조사에 따르면 실험동물 수는 2016년 약 287만마리에서 2020년 약 414만마리로 44% 증가했습니다. 최신 통계 작성 시점인 2021년에는 488만마리가 실험에 쓰였습니다. 2008년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대 규모입니다.
 
동물 종에 따라 나누면 2021년 한 해에만 353만마리가 넘는 설치류가 실험에 동원됐습니다. 어류는 약 92만마리, 조류는 31만마리로 설치류 뒤를 이었습니다. 이 밖에 포유류는 약 7만마리, 토끼는 2만마리가 실험에 쓰였습니다.
 
동물대체실험법 제정안 마련 움직임 본격화
 
무분별한 동물실험을 막기 위한 법안은 이제 막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불을 당긴 쪽은 국회였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2020년 12월 관련 법안을 제출한 겁니다. 남인순 의원이 발의한 동물대체시험법 개발 및 보급,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하 동물대체시험법)은 동물실험 의존도를 줄이고, 신체 모사 모델이나 컴퓨터를 활용한 시뮬레이션 등 새로운 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여기에 같은 당 소속의 한정애 의원 역시 최근 범정부 차원에서 동물대체시험법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도록 하고 동물대체시험법의 활성화를 위해 관련 연구 및 지원을 도모하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는 동물대체시험법의 개발, 보급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이하 동물대체시험법 활성화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시민단체와 기업은 배턴을 이어받아 여론 확산에 나섰습니다. 국제 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umane Society International, 이하 HSI)과 러쉬코리아는 2021년부터 동물대체시험법 제정 촉구를 위해 일반 시민의 서명을 받는 캠페인을 전개했습니다. 지금은 6만명이 캠페인에 참여해 서명한다고 전해집니다.
 
국회와 시민이 힘을 모은 동물대체시험법 제정 촉구 의지는 오는 31일 당국에 전해질 예정입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릴 동물대체시험법 제정안 통과를 위한 6만 서명 전달식에선 HSI와 러쉬코리아가 모은 서명을 식품의약품안전처, 환경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게 전달합니다.
 
지금까지의 평가는 긍정적입니다. 이와 관련, 서보라미 한국HSI 정책국장은 "앞서 2020년 12월 남인순 의원이 대표 발의한 동물대체시험법에 이어 한정애 의원의 동물대체시험법 활성화 법률안이 발의된 것은 국내 동물대체시험법 촉진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환영 의사를 내비쳤습니다.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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