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표준계약서 개정안, 현장 목소리 외면" 문체부, 웹툰 창작자들과 또 불협화음
웹툰 창작자 단체들, 문체부 표준계약서 개정안 일방 추진 규탄
애매모호한 규정·현장 실용성 미반영 지적…"원점 재논의해야"
2023-01-11 16:55:25 2023-01-16 09:08:30
[뉴스토마토 이선율 기자] 웹툰업계의 고질적인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부의 상생협의체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소통의 문제 때문인데요. 협의체를 주도한 문체부가 웹툰 창작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어 불만의 목소리가 최근 다시 터져나왔습니다. 특히 표준계약서 개정을 놓고 문체부가 현장의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창작자들은 지적했습니다.
 
만화·웹툰업계 창작자들과 노동단체(한국여성만화가협회, 웹툰작가노조, 문화예술노동연대, 플랫폼노동희망찾기)가 문화체육관광부의 만화계 표준계약서 개정을 규탄했다. (사진=이선율기자)
 
상생협의체 출범했지만…표준계약서 개정부터 삐그덕
 
지난 2021년 말 국정감사를 통해 웹툰 작가들의 불공정 계약 등 문제가 불거지면서 문체부는 지난해 초 웹툰 창작자, 플랫폼, 제작사 등 관련 이해관계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상생협의체를 출범, 지난해 말에서야 '웹툰 생태계 상생 환경 조성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러나 협약의 첫 단추로 꼽히는 표준 계약서 개정 작업부터 순탄치 않은 실정입니다.
 
기존 웹툰 표준계약서는 무료 웹툰 플랫폼 중심으로 제작돼 실제 활용도가 떨어지고, 변화된 웹툰 산업 환경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줄곧 받아왔습니다. 이에 웹툰업계 및 창작자들을 중심으로 개정안에 유료 웹툰 플랫폼 확대 추세를 반영,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규정을 넣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23일 열린 '표준계약서 개정 설명회'를 통해 공표된 개정 초안은 창작자들과의 상생협약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내용이 담겨 불통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에 창작자들은 새해 초부터 현장 실용성을 반영해 재논의해야 한다고 항의했지만 문체부는 서면으로 응하며 오는 12일 2차 설명회 개최를 통보했습니다. 사실상 원점 재논의를 요구하는 창작자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기존 개정안 통과를 강행하려는 행보로 보입니다. 이에 창작자들은 11일 별도 기자회견을 열어 또 다시 문체부를 향해 표준계약서 개정안에 대해 원점에서 재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신아 웹툰작가노조 위원장이 문체부의 일방적 표준계약서 개정 과정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사진=이선율기자)
 
"개정 표준계약서 초안, 제작사-플랫폼 간 계약조건 여전히 확인 어려워"
 
11일 웹툰작가노동조합을 비롯해 한국여성만화가협회, 문화예술노동연대, 플랫폼노동희망찾기 등 단체는 최근 문체부에 전달한 만화계 표준계약서 초안에 대한 의견서와 웹툰업계 상생협약문을 공개했습니다.
 
우선 이들 단체는 웹툰시장이 플랫폼-제작사-창작자로 구성된 3자 이상의 다중 계약 구조가 자리잡혀 있어, 창작자들은 자신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제작사와 플랫폼간 계약조건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플랫폼이 작품 유통 및 심사 권한을 가지고 있어 사실상 독점할 권한까지 갖게 돼 불공정 계약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인데요. 이에 제작사가 플랫폼에게 울며 겨자먹기로 해외 판권 등 2차 판권 일체를 넘기는 등 을의 입장에서 불공정 관계가 고착화된다는 주장입니다. 하신아 웹툰작가노조 위원장은 "창작자들이 계약을 잘 한다 하더라도, 제작사가 플랫폼과 맺는 계약이 공정하지 않으면 건강한 웹툰 생태계가 요원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단체들은 보조작가 고용조건에 대한 계약서가 필요하다고 요구했습니다. 보조작가의 경우 협업 제작 시스템 진화로 제작사에 근로자로 고용되는 보조작가들의 숫자가 급격히 늘고 있지만, 적정 분량에 대한 기준·경력과 실력에 의한 표준 단가의 가이드라인조차 존재하지 않아 최저임금을 받으며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 제작사가 창작자의 기본적인 저작인격권을 빼앗으려 시도한 사례가 종종 발견되고 있는데, 이런 문제를 근절하기 위해 창작자 오리지널 작품의 권리를 보장하는 계약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사실 표준계약서 개정 요구는 문화예술업계에서 처음 제기됐습니다. 이씬정석 문화예술노동연대 대표는 "문화예술계에서 불공정한 상황, 갑질들이 너무 많아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식의 표준계약서가 필요하다고 처음 요구했다"면서 "창작자, 일반 예술인들은 힘이 미비한 데 반해 이를 유통하고, 이것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이나 플랫폼들의 권력은 막강하다. 웹툰 쪽도 비슷하게 작동하고 있는 만큼 계약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기업, 플랫폼의 깜깜이 계약 조건으로 힘의 논리가 비대칭을 이루는 상황에선 불공정한 거래 구조가 만연할 수 밖에 없기에 표준 계약서 개정이 필요하다는 설명입니다. 
 
대부분 '합의' 문구…개념 모호해
 
표준 계약서에 모호한 개념들을 분명하게 구분해줘야 하는데 이에 대한 내용 대부분이 '합의'에 그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됐습니다. 실제 현장에서 문제시되는 쟁점 대부분이 '갑(창작자)과 을(서비스업자)이 합의하라'고 돼있는데요. 최근 문체부가 내놓은 표준계약서도 계약 양측간 합의로 해결하라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심지어 창작자의 건강권과 직결되는 휴식권을 놓고는 '합의'가 아닌 '협의'라는 단어로 규정했습니다. 
 
특히 정산정보 공개 의무를 모호하게 언급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그동안 창작자들은 자신들이 정확히 얼마를 받고 일하는지 알고 싶다고 투명한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고 지적해왔습니다. 문체부가 내놓은 표준계약서 개정안에도 '정산서'라는 단어는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 정산서가 아닌 연재 내용, 대가 계산 내역 등이 기재된 서류에 불과하며, 유·무료 조회수, 코인당 금액 등 정산금액의 근거가 되는 자료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수익 분배 계약을 맺은 당사자가 마땅히 받아야할 자료가 빠진 데다, 을(서비스업체)에게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조차 불가하고, 열람만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김현희 한국여성만화가협회 이사는 "문제가 심각한 건 모든 계약서에 2차 저작권이 합쳐져 계산되게끔 돼있는 부분인데, 실질적으로 노예계약에 다를 바 없다"면서 "이를 악의적으로 이용됐을 때 분쟁 여지가 많은 만큼 원점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 위원장은 소통하려 하지 않는 문체부의 대응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는 "이미 문체부는 만화진흥법 개정안 상정에 있어 창작자 조직에 일체 정보 공유 없이 급하게 강행한 바 있다. 표준계약서 개정안 연구개발 용역 선정과정부터 개발과정 및 설명회도 마찬가지였다"면서 "지난해말 겨우 열린 소통의 자리에서도 시간이 제한돼 있으니 질문이나 의견을 자제하라고 했다. 이제라도 창작자들과 진정성 있는 소통을 해야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이선율 기자 melod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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