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G)
밀림 속에 전설로만 전해오던 신전이 있었다. 나는 불경스럽게도 신전을 향하여 뛰어가고 있다. 내가 잡고 싶은 ‘진기한 나비’를 쫓아 달려가고 있다. 나의 동반자 유모차 위에 단 캄보디아의 국기에는 앙코르와트가 중앙에 자리한다. 벌거숭이 아이들은 뛰어 놀고, 개들은 짖으며 달려들고, 새들은 나무 위에서 지저귄다. 다른 나라에서는 보지 못하던 흰 소가 풍요로운 평원 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마음은 넉넉하고 표정은 밝다.
그들의 얼굴에서 킬링필드의 흔적을 찾기란 어려운 숙제였다. 그러나 그 잔혹한 살상극의 발단은 어이없게도 미국이라는 사실은 알게 될 뿐이었다. 베트남전이 한참 파국으로 들어설 때 미국은 독이 올라 북베트남군의 남침로인 호찌민루트가 캄보디아를 지난다는 이유로 캄보디아를 폭격했다. 수십만 명의 캄보디아인이 이 폭격에 잔혹하게 희생되었다. 미국의 지원을 받아 정권을 유지하던 론 놀 정권을 무너뜨리고 급진좌익무장단체인 크메르 루즈가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크메르 루즈는 정권을 장악한 후 미국에 협력한 론 놀 정권 관련자와 지식인 승려를 모두 처형했다. 심지어 안경을 썼다는 이유로, 얼굴이 하얗다는 이유로 손이 곱다는 이유로 처형했다. 또한 급진적인 정책으로 수십만을 굶어죽게 했다. 나는 우리나라의 가난한 60, 70년대의 농촌 풍경과 같은 캄보디아의 평원을 달리며 우리의 근현대사를 돌아본다. 식민통치와 외세의 개입, 내전, 그리고 정권에 의한 학살, 그 얼마나 같은 동병상련이란 말인가?
한 시간쯤 달리다 음식점이 나와 쌀국수를 시켰다. 어린 여자아이가 국수그릇을 어색한 포정으로 건네주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진다. 베트남 쌀국수와는 뭔가 조금 다르다. 여기 면발은 가늘다. 베트남 국수는 야채 고명을 듬뿍 준다. 국수를 먹고 있는데 시엠립 한인회장이 나를 환영하러 찾아왔다. 한인회장은 앙코르와트의 동문을 출발하여 서문으로 앙코르와트를 반 바퀴 돌고 태국 국경 방향으로 달려가면 의미가 있을 거라 제안하여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바탕방의 김경선 교무가 지도하는 어린이 태권도 팀도 같이할 것이라니 나로서도 보람된 일이겠다.
한인회 임원들과 헤어지고 조금 달리다 보니 어인아이 하나가 슬리퍼를 신고 네 옆으로 같이 쫒아온다. 말이 안 통하니 눈빛을 한번 맞추니 아이에 어색하던 표정이 금방 밝아온다. 그것은 어두운 방의 스위치 같은 역할을 하였다. 아이는 바지의 혁대가 없어 바지가 흘러내려 한손으로 바지춤을 잡고 뒤뚱뒤뚱 뛰는데 그 모습이 어찌 우습 던지 모르겠다. 내 뒤뚱거림과 아이의 뒤뚱거림, 우리는 뒤뚱뒤뚱 한동안 진기한 나비를 쫓아 숲속을 헤매는 아이들처럼 한동안 그렇게 달렸다.
아이는 내가 쫓아 헤매는 것이 ‘평화의 나비’인 것을 알기나 할까? 무슨 상관이랴! 지금 이렇게 평화롭게 달리고 있는데! 아이는 그 옛날 ‘진기한 나비’를 찾아 숲을 헤맸던 프랑스 생물학자 알베르 앙리 무오의 안내인처럼 가만히 놔두면 끝까지 나를 끝까지 쫓아올 태세였다. 나는 아이가 돌아갈 것이 염려가 되었다. 유모차를 뒤져 비상용으로 가져다니던 캔디 한 봉지를 꺼내주고 돈 1달러를 손에 쥐어주었다. 아이는 얼굴이 연꽃처럼 함박꽃을 피우더니 꾸벅하고 머리를 조아리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길 주변에는 대나무를 일정한 크기로 잘라 양 옆으로 이 열로 세워 놓고 밑에서 불을 지피고 있었다. 신기해서 다가가서 불어보았더니 대나무밥이란다. 몇 개를 사서 하나를 대나무를 벗기고 먹어보았다. 찹쌀과 검은 콩을 대나무에다 넣고 바나나 껍질로 위를 막고 불을 지펴 끓인 찹쌀밥이라 밥에서 대나무 향과 바나나 향이 은은하게 풍겨 나왔다.
또 한 구간은 바로 옆의 돈래샵 호수에서 잡은 민물고기 구위를 파는 식당이 늘어서 있다. 동남아에서 제일 큰 호수인 돈래샵에서 수상가옥에서 거주하며 어법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아이러니 하게도 캄보디아 족이 아니고 모두 베트남 무국적 난민들 이라고 한다. 이들은 베트남이 패망하자 보트를 타고 메콩 강을 거슬러 올라와 같은 지류인 돈래샵 호수에 정착하여 수상 촌을 형성 하였다고 한다.
마침 점심을 먹어야 할 때임을 배꼽시계가 알려주었으므로 식당으로 들어갔다. 한국에서 메기는 고급 어종이고 메기매운탕은 귀하다는 생각으로 메기구이를 주문하였으나 흙냄새가 나서 억지로 반이나 먹었을까? 닭구이를 다시 주문하여 식사를 마무리 하였다.
앙코르 와트에 가까워지자 거대한 고목나무 가로수가 터널을 만들어주어 시원하고 쾌적하게 달릴 수가 있었다. 길 옆에는 옛 크메르 제국 때 지어졌을 사암 다리가 우리의 청계천의 광통교나 수표교처럼 옛 이야기를 주절거리듯 버티고 서있었다. 그 길 옆에 한 아주머니가 밀림에서 채집한 꿀을 팔기에 얼른 다가가서 샀다. 마침 베트남에서 사온 꿀도 떨어진 참이었다.
나는 평소에는 꿀을 안 먹지만 이런 긴 마라톤 여정을 소화할 때는 꿀을 상복한다. 꿀은 면역력을 높일 뿐 아니라 에너지의 소모가 극심할 때 에너지의 원천이기도 하고, 위장에 좋아 낯선 음식으로 복통이 시달릴 위험을 감소시켜준다. 특히 야생 꿀은 몸에 면역력 증강함과 동시에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여주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나 같은 심혈관 질환을 앓는 사람에게 특히 좋다. 자연산 석청 꿀은 체온을 올려준다고 한다. 기초 체온이 올라감으로써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주고 허약체질의 기를 보해주는 효과가 있으며 수족냉증을 예방하는데 아주 좋은 작용이 있고 여성들 생리통에도 좋다고 한다.
캄보디아 밀림의 야생 꿀을 사들은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이번 여정은 사실 두 가지 목적이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평화 통일’이란 구호를 내세웠지만, 나는 나의 병의 치유도 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뇌경색이란 병은 현대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이기 때문에 끝없는 몸의 반복운동을 통해 조금씩 근육이 살아나고 신경이 살아나길 바랐던 것이다. 나로서는 일종의 극역처방인 셈이다. 피로는 뇌경색 환자에게 커다란 적이다. 나는 극심한 피로와 싸우며 기적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유래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문명이 왜 한순간 사라져 밀림 속에 숨어버렸을까?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불가사의, 이 사원은 우주를 지상에 구현한 것이다. 프랑스 생물학자 알베르 앙리 무오가 ‘진기한 나비’를 채집하기 위해 현지 안내원과 함께 시엠립의 밀림 속에 들어가고 있었다. 발견 당시 이 주변의 사람들은 이 밀림에 들어가면 신의 저주를 받는다고 두려워했던 곳이다.
다만 ‘진기한 나비’를 쫓아 밀림에 들어왔을 뿐인데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넋을 잃고 말았다. 내가 오늘 본 경이로움과 마주친 것이다. 파란 하늘에 초록의 정글 한 가운데 우뚝 서있는 이끼 낀 장엄함과 신비로운 곡선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그리스와 로마가 남긴 그 어떤 유적보다도 위대하다.”고 탄성을 질렀다.
나는 다만 ‘진기한 나비’를 쫓아 길을 나섰다. ‘평화 마라토너’라 불리는 내가 찾는 진기한 나비는 생물학자가 찾는 진기한 나비와 같은 것일 수는 없다. 나풀나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평화의 나비’를 찾아 지구 끝까지 가면 나는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까? 과연 내 몸이 치유가 되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
강명구 평화마라토너가 평화달리기 77일차인 지난 16일 캄보디아의 한 거리에서 만난 주민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강명구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평화마라토너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