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부산항 신항에서 '제7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해외 건설 분야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지만 고유가, 엔데믹 등 기회요인도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 모두 팀 코리아로 똘똘 뭉친다면 제2의 해외 건설 붐은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다.”
지난 8월 열린 제7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나온 윤석열 대통령의 모두발언이다. ‘연 500억달러 수주, 4대 해외 건설 강국 진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가 민관 합동으로 한 팀을 구성하고 지원사격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한 것이다.
대내외 환경이 개선되면서 건설사 해외수주도 활기를 띄고 있다. 연간 500억달러를 상회했던 과거(2010~2014년)에 비해서는 아직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지만 하반기 들어 달러 강세와 고유가로 본격적인 회복 국면을 맞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고 있다. 특히 경기 침체와 금리인상으로 국내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면서 수익 악화가 불가피한만큼, 건설업계 역시 해외시장에서 실적 반등의 기회를 모색하는 모양새다.
19일 해외건설협회 해외건설종합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8일까지 해외 건설 누적 수주액은 243억8355만9000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동기(181억3566만달러)보다 34.45% 증가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수주 건수는 355건에서 436건으로 22.82% 늘었고 시공건수는 11% 뛴 2273건으로 나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등 하방 압력이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도 원화가치 약세 움직임이 나타나고 유가 상승으로 발주 여건이 개선된 점이 주효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통상 원화 약세가 지속되면 해외 수주전에서 입찰가를 낮추는 등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데다 해외공사 잔액이 많은 건설사의 경우 기성액을 국내로 들여오는 과정에서 환차익도 얻을 수 있는 점이 유효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실제 원-달러 환율은 최근 1440원을 돌파하는 등 킹달러 흐름을 보이고 있으며,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브렌트유는 이날 현재 배럴당 80~90달러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물론 상반기 배럴당 최고 120달러까지 올랐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가가 내린 상황이지만 작년 초 배럴당 50~60달러 수준보다는 크게 오른 상태다.
건설사 수주액 역시 유가 상승과 강달러에 힘입어 하반기부터 반등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상반기 건설사 수주액이 120억3972만4000달러로 1년 전(147억4677만달러)보다 18.4% 감소하며 부진했지만, 하반기 들어서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현재까지 따낸 수주액도 작년 말(305억7970만달러)의 73.2%에 달한다.
해외수주 상위 10개 건설사 공사건수 및 금액 현황(표=뉴스토마토)
건설사 역시 해외 시장으로 눈길을 돌리는 모습이다. 실제 국내 건설사가 진출한 국가는 89곳으로 작년보다 4곳 더 늘었고, 기업 설립 이후 해외건설 진출에 첫발을 뗀 기업도 29곳으로 작년보다 21% 증가했다. 국내 부동산 시장 침체로 주택건설 경기가 악화한 만큼 해외에서 실적 반등의 기획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발주환경이 개선되며 대형 건설사를 중심으로 수주 낭보도 잇따르고 있다. 건설사별로 보면 삼성물산이 19억달러 규모의 미국 테일러시 반도체제조공장(FAB)1 신축공사를 수주하며 업계 1위를 지키고 있는 상태다. 올해 들어 현재까지 삼성물산의 수주액은 49억547만달러로 1년 전보다 11.89% 늘었다.
같은 기간 현대엔지니어링은 56.85% 증가한 25억4742만달러를 확보했으며 현대건설의 해외 공사 수주액은 25억1352만달러로 23.47% 늘었다. 이민재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건설은 동유럽 중심의 대형 원전 프로젝트를 다수 수행할 수 있는 사업 역량을 갖춰가는 상황으로 부진한 국내 부동산 고려한 건설 부문 밸류에이션 할인은 원자력에서 만회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유림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건설은 환율 상승에 따른 환관련 이익이 영업외로 반영되면서 올해 3분기 순이익이 전년대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하반기 들어 주택 수주는 다소 주춤한 반면, 해외 수주 파이프라인은 다시 채워지고 있는 분위기로, 연말 연초 사우디마덴 Phosphate과 사우디 네옴 항만, 카타르 노스필드 후속공사 등이 기대되는 수주 프로젝트"라고 꼽았다.
성장세가 가장 가파른 곳은 롯데건설이다. 롯데건설은 연초 인도네시아 석유화학단지 조성사업을 비롯해 베트남투티엠 에코스마트시티 프로젝트 등을 수주했으며 이달 초에는 필리핀 남부도시철도 공사도 수주했다. 롯데건설의 공사금액은 작년 1억1686만달러에서 올해는 15억4372만달러로 13배 넘게 급증했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동남아시아 인프라사업에서 거둔 성과를 바탕으로 향후 호주와 유럽의 인프라 시장에서도 신재생 에너지·육상 인프라 등 사업영역을 적극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대우건설은 우즈베키스탄 건설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으며 삼성엔지니어링은 8900억원 규모의 말레이시아 가스 플랜스 사업을 수주하는 등 수주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대우건설 이라크 알포 연결접속 도로 현장.(사진=대우건설)
시장에서는 올해 4분기부터 네옴시티 등 해외 발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해외 수주 일감을 확보한 건설사를 중심으로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강경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신규 해외 수주는 4분기에 집중될 것으로, 건설사마다 입찰을 마친 후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공사풀이 넓은 점을 감안하면 가이던스 달성 기대감을 내려놓기에 아직 이르다"면서 "국제유가는 상반기 대비 하락 거래되고 있지만 여전히 산유국 재정균형을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이며, 기존에 발주한 프로젝트가 유가 변동성 확대로 취소될 가능성은 낮다"라고 진단했다.
다만 사우디 왕세자 빈 살만의 방한 계획 무산과 미수금 부담 등은 우려 요인이다. 앞서 한화건설은 발주처인 이라크 정부로부터 공사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총사업비 14조원 규모의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 사업에 손을 떼기로 하는 등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상수 한국신용평가 수석애널리스트는 "영업적 측면에서 이라크 비스마야 사업 계약의 해지가 최종 확정될 경우 큰 폭의 수주잔고 감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라며 "향후 국제중재 또는 발주처와의 추가 협상 가능성, 합병법인에 미칠 수 있는 영향 등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장문준 KB증권 연구원은 "사우디 왕세자 빈 살만의 11월 방한 계획 무산으로 네옴시티 프로젝트와 해외수주에 대한 단기적인 기대감은 약화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프로젝트 자체는 기반시설 중심으로 발주 본격화 구간"이라고 분석했다. 중동지역 플랜트 시장의 경우 구조적인 시장 개선 구간에 진입했다는 의미다.
김승준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해외·플랜트 발주 환경은 긍정적으로 플랜트 부문에서는 해외 생산기지화와 O&G 발주가 동남아에서 이뤄지고 있어 수주 기대감이 큰 상황"이라며 "에너지 가격 상승과 에너지 전환 흐름에 따라 중동뿐 아니라 전세계 산유국에서의 플랜트 발주가 나타나고 있어 국내 기업들의 해외 수주와 플랜트 수주가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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