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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산다③)“자연 방생 명목으로 유기…죽음으로 내모는 것”
토끼, 개·고양이 이어 가장 많이 버려져
반려용으로 길들여지는 동안 야생성 잃어
인형보다 싼 값에 거래되는 것도 문제
2022-05-02 06:00:00 2022-05-02 06:00:00
[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토끼는 개와 고양이에 이어 가장 많이 버려지는 생명체다. 비영리 동물구조단체 동물자유연대의 통계에 따르면 사람에 의해 버려진 토끼는 지난 2020년 329마리, 2019년 292마리, 2018년 263마리로 3년간 약 900여 마리에 가깝다. 하지만 이는 보호소에 입소한 토끼의 숫자로 구조되지 못한 토끼는 더 많을 것으로 예측된다. 토끼 전문 구조센터 '꾸시꾸시'의 최승희 활동가는 “유기된 토끼 대부분은 보호소에 들어가기 전에 죽는다. 정말 많이 버려지지만, 통계에는 그 숫자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토끼를 길에 버리는 행위는 엄연히 유기지만 이를 자연으로 돌려보낸다고 인식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국내 입양되는 토끼는 유럽 남서부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온 ‘굴토끼’ 종으로 흔히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산토끼’와는 완연히 다르다. 굴토끼는 한국의 겨울을 견디지 못할 뿐 아니라 애완으로 길들여져 천적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는 등 야생에서 생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반려 토끼를 들이나 산에 풀어 놓는 것은 토끼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행위나 다름없음에도 토끼가 자연에서 잘 살아간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국내 유일의 유기 토끼 구조 전문 단체인 '꾸시꾸시'에 입소한 토끼 모습. (사진=꾸시꾸시 인스타그램)
  
예민한 굴토끼…개 짖는 소리에 죽기도 
  
토끼에 대한 인식 미흡에 따른 폐해는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애써 토끼를 야생에서 구조해 놓고 다시 유기하거나, 토끼를 천적인 개나 고양이와 한 공간에 두는 등 토끼의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를 은연중에 저지르는 게 그 예다.
 
지난 2017년 서울 노원구에서 119 구조 대원들이 중랑천 산책로에 출몰한 애완토끼를 포획했지만, 주인을 찾지 못하자 대원들이 근처 산에 토끼를 다시 풀어놨다. 동물구조단체에서도 토끼와 개·고양이를 가까운 거리에 함께 두는 일이 다반사다. 개와 고양이는 토끼의 천적으로, 토끼는 이들과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토끼는 청각이 예민해, 심한 경우 개가 짖는 소리만 듣고도 놀라 심장마비로 죽는 경우도 있다. 한 동물구조단체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토끼는 야생에서 사는 거 아니냐, 야생에 있는 토끼를 구조해야 되냐"고 묻기도 했다. 동물구조단체에서 조차 토끼에 대한 인식 미비를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토끼도 개나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로 동물보호법에 의해 보호받는다. 지난달 25일 20대 여성이 자신이 기르던 토끼를 다리가 부러졌다는 이유로 서울 시내 지하철 역사 내 화장실에 유기했다가 재판에 넘겨져 벌금 60만원을 선고받았다. 법원도 토끼를 반려동물로 인정한 셈이다. 
 
토끼상품화 하는 산업시스템 변해야
 
꾸시꾸시는 토끼 유기를 근본적으로 근절하기 위해서 애완 토끼 판매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토끼 입양에 아무런 제약이 없을 뿐 아니라 토끼 판매 시스템에 따른 학대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형마트의 토끼 판매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대형마트에서 점차 동물을 파는 행위가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일부 마트에서는 돈 몇만원에 토끼 등 소동물을 판매하고 있다.
 
최 활동가는 "판매업자들이 토끼 판매 금액을 저렴하게 하기 위해서 토끼의 생명 유지 비용을 줄이고 있다"며 “토끼를 키우는 데는 하루 6000원 정도가 발생하는데, 3일만 지나도 판매업자들에게는 마이너스여서 밥이나 물을 아예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가까운 일본에서는 토끼를 50만원 정도에 판매해 금액적 장벽이 있지만, 유독 우리나라는 토끼 인형값만도 못한 금액에 살아있는 토끼를 팔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유기된 토끼를 분양하는 식으로 시스템이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전국에 버려진 토끼들만 수백 마리가 넘고,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은 포화 상태다. 더욱이 현재 국내에서 토끼를 전문적으로 구조하고 보호하는 단체는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꾸시꾸시’가 유일하다. 이 때문에 꾸시꾸시에는 전국 동물보호 단체들이 “유기된 토끼를 이송할 수 있냐”는 문의가 빗발치게 오고 있다. 최 활동가는 “동물을 사고파는 산업화가 근절되지 않으면 계속 토끼가 유기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유기동물 입양 플랫폼 '포인핸드'에 올라온 토끼 입양 공고. (사진=포인핸드)
 
조승진 기자 chogiz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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