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전보규 기자] 대장동 수사의 토대가 된 '정영학 녹취록'에 대한 신빙성이 다시 한 번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등이 언급한 인물들이 관련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대장동 그분'으로 지목됐던 조재연 대법관이 해명 기자회견에 이어 주민등록등본까지 공개하면서 녹취록 속 김씨 발언이 '허언'이었을 가능성을 높이고 있어서다.
조 대법관은 28일 법원행정처를 통해 자신과 배우자, 딸 3명의 거주지와 주소이전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주민등록등본·주민등록초본·등기부등본을 제공했다. 공개 자료에는 실제로 그곳에서 거주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아파트 월세 계약서·관리비 납부확인서 등도 포함됐다.
조 대법관이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을 입증할 자료를 내놓은 것이다. 당시 조 대법관은 자신은 30년 가까이 현 거주지에 머물고 있고 첫째딸은 2016년 결혼해 서울, 둘째딸은 지난해 결혼해 경기도 용인시, 막내딸은 자신과 함께 살고 있다고 밝혔다.
대장동 개발 특혜·로비 관련 녹취록 속에 등장하는 '그분'으로 지목된 조재연 대법관이 지난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입장 발표를 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최근 정영학 녹취록에 김씨가 대법관에게 50억원 상당의 판교 타운하우스 빌라를 제공했는데 그 곳에 대법관의 자녀가 거주하고 있다는 취지로 말한 부분이 있다는 보도가 있었고 조 대법관이 해당인물로 지목됐다.
관련 의혹이 언론과 정치권을 통해 확산하자 조 대법관은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조 대법관은 기자회견에서 "(김씨와)공적으로나 사적으로 만난 적도, 통화한 적도 없고 대장동 사건 관련자 그 누구와도 일면식, 일 통화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검찰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며 검찰조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의혹이 사실이 아니란 점을 강하게 피력한 것이다.
정영학 녹취록 속에 등장한 또 다른 인물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김씨 등과의 관계를 강하게 부인했다.
김씨는 녹취록에서 "양승태 대법원장님은 되게 좋으신 분이야. 나한테 '내가 우리 김 부장 잘 아는데, 위험하지 않게 해'(라고 했다)."라고 말한 것으로 최근 전해졌다. 이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은 지인들에게 김씨를 만나거나 통화한적도 없고 기자회견이라도 하고 싶지만 사기꾼의 거짓말에 호들갑을 떠는 것 같아 참는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정영학 회계사가 지난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 공판을 마친 뒤 나오고 있는 모습.(사진=연합뉴스)
녹취록에 등장한 인물들이 김씨와의 관계를 부정하고 증명할 자료까지 내놓으면서 '정영학 녹취록' 신빙성에 대한 의구심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씨가 정 회계사의 녹음 사실을 알고 일부러 허위사실을 섞어서 말했다는 취지로 발언한 바 있고 천화동인 1호 실소유주를 지칭하는 '그분'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추측만 난무한다는 점, '50억 클럽'으로 거론된 인물 중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외에는 수사가 진척되지 않는다는 점 등에서다.
특수수사를 오래했던 한 법조계 관계자는 "단정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으로 보면 녹취록을 크게 신뢰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며 "특히 50억 클럽 같은 경우 경험상 믿기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50억 클럽으로 거론된 인물들이 하나의 조직으로 뭉쳐서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고 청탁을 받았다고 해도 각각의 역할과 기여도가 달랐을 텐데 일괄적으로 같은 돈을 뇌물로 준다는 게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차장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수사를 할 때 녹취록의 내용을 사실로 전제하지 않는다"며 "녹취록은 그저 녹취록일 뿐"이라고 말했다.
전보규 기자 jbk880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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