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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청소'라는 이름의 국가폭력
2021-11-17 06:00:00 2021-11-17 06:00:00
버스 타는 곳을 찾아 헤맨다는 이유로 어딘가에 끌려가는 나라가 있다면 적어도 한국은 아니다. 침 뱉었다고 경찰에 잡혀간 뒤 병상에서 청춘을 보내야 했다면 더더욱 먼 나라 얘기다.
 
믿고 싶지 않은 일이 40년 전 서울에서 일어났고, 피해자와 가족들이 다시 마이크를 잡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영보자애원 강제입소 피해 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16일에는 삼청교육대 피해자 국가배상 소송을 알리는 간담회가 열렸다. 
 
1983년 중학교 2학년이던 임경애씨는 미용실에서 일하던 어머니가 실종돼 발을 굴렀다. 수년 뒤 어머니 주민등록을 말소했지만 2007년 느닷없이 영보자애원에서 할머니댁에 엽서를 보냈다고 한다. 수십년만에 아들을 만난 어머니는 표정이 없었다. 이후 엄지 손가락 크기 담석 여럿을 제거하며 병치레 하다 2010년 눈을 감았다.
 
박광수씨 동생이 국가에 청춘을 뺏긴 날은 1980년 8월7일이었다. 이날 동대문 야구장에서 경기를 기다리던 동생은 침 뱉었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4주 뒤 형을 만났다. 기억상실과 정신병을 앓게 된 이때 나이가 스물 네 살이었다. 박씨는 "동생이 결혼도 못 하고 평생 병원에 있었다"며 "이 얘기를 하면 눈물이 난다"고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간담회를 마치고 보여준 사진 속 동생은 결실을 기다리는 나무처럼 푸른 웃음을 짓고 있었다. 다음장은 침대에서 평생을 보낸 노인의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두 사건 피해자와 유족의 공통점은 이유도 모른 채 사회에서 지워졌다는 사실이다. 임씨의 어머니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둔 '길거리 정화'로, 박씨 동생은 전두환 신군부의 '불량배 소탕계획'이라는 빗자루에 쓸려나갔다. 사람의 인생이 법 없이도 사는 나라의 먼지 취급 당한 것이다.
 
특히 삼청교육대 피해자는 40년 전의 낙인이 두려워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고 한다. 민변 삼청교육대 변호단 조영선 변호사는 "다른 분들은 다른 형태의 명예라도 회복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이 분들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도 아니고 폭도·깡패라는 낙인이 찍혔다"며 "4만명이 피해를 입었어도 지금도 나타나지 못한다. 스스로 깨지 못하는 벽을 우리가 깨줘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당한 사람들의 지워지지 않는 눈물이 40년 넘게 흐르고 있다. 어딘가 묻혀있을 국가폭력 실태 규명과 피해자 치유 대책이 요원하다.
 
이범종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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