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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경선에서 채원배 선생을 생각한다
2021-07-16 06:00:00 2021-07-16 06:00:00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를 뽑는 경선이 한창이다. 그런데 경선을 지켜보며 채원배 선생이 떠올랐다. 채원배는 한국 사람이 아니라 중국인이다. 요즘 사람도 아니고 150년 전 인물이다. 채원배는 학자로서 관료도 지냈다. 하지만 그의 경력 중 가장 중요한 걸 꼽으라면 북경대학 교장 역임이다. 민주당 선거를 보며 이웃 나라 사람을 떠올리는 것도 채원배가 북경대 교장 시절 벌였던 일 때문이다.
 
북경대는 1898년 경사대학당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1912년 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이 건국되면서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채원배가 북경대 교장을 지낸 건 1916년부터 1927년까지다. 이제 막 세워진 신생국가에서 설립된 지 20년도 채 안 된 학교를 맡았다. 그래서 채원배가 만사 제치고 중점적으로 추진한 건 교수들을 모으는 일이었다.
 
당시 채원배가 초빙한 사람들은 진독수, 노신, 유반농, 서비홍, 이사광, 안임광, 양수명, 정서림, 마인초, 양창제, 도맹화, 왕세걸, 고홍명 등이다. 그런데 이들은 면면이 화려한 것도 있지만, 한 자리에 모아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진독수는 상해에서 '신청년'이라는 잡지를 만들어 중국인 계몽에 앞장 선 개혁주의자다. 노신도 '아큐정전' 등의 소설로 중국인 의식개혁을 위해 노력했다. 반면 유사배와 고홍명은 중국의 전통 학문을 공부했다. 심지어 고홍명은 중국인의 정체성을 강조하려고 평생 변발을 고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렇게 모인 교수들은 정국 진단과 중국의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수시로 난상토론을 했다고 한다. 주먹만 오가지 않았을 뿐 진보와 보수, 개혁과 구체제 유지를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채원배가 의도한 결과였다. 당시 채원배가 남겼던 어록 가운데 하나가 "사상의 자유 원칙에 따라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자"였다. 사상과 이념, 나이 등을 따지지 않고 인재들을 모아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고 논쟁과 토론을 장려해야만 신생국가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실제로 이후 북경대를 다녔던 인재들은 제국주의 저항운동과 신중국 건설의 주역이 됐다. 그런 인물 중 한 명이 이 대학에서 사서로 일한 모택동이다.
 
민주당 경선이 치열하다. 루머를 언급하기도 하고, 가족 이야기도 나온다. 후보끼리 경쟁은 물론 캠프 간 흠집내기도 점입가경이다. 후보와 캠프가 이러니 지지자끼리도 인터넷에서 만나면 다툼이 벌어진다. 대선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난상토론과 치열한 다툼은 당연히 있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욕설과 거짓정보, 비방은 자제해야 한다. 무엇보다 경선을 통해 새 시대를 위한 어떤 철학과 정책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최병호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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