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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 누굴 위한 성장률인가
2021-05-17 06:00:00 2021-05-17 06:00:00
‘3.3%, 3.5%, 3.8%’, 칵테일 속 알코올 도수 얘기가 아니다. 힘겹게 버티고 싸워온 코로나 팬데믹 1년3개월, ‘GDP(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지난해 초 창궐한 슈퍼바이러스로 경제 석학들 사이에서 ‘경제성장률’은 핫한 키워드였다.
 
경기둔화와 감염병 장기화 여파는 성장률 하락 전망을 쏟아냈고 경제를 이끌어 가는 가계, 기업, 정부의 경제 주체들은 빛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한해를 갇혀 지냈다.
 
위기에 강한 경제라고 했던가. 외환위기 후 22년 만의 역성장을 맞은 선방은 백신 보급 터닝 포인트로 잇단 장밋빛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종전 2.8%에서 3.3%로 올려 잡았고 국내외 주요기관들은 줄줄이 GDP 전망을 상향했다.
 
특히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코로나 창궐로 부정적이었던 지난해 초 2%대의 전망과 달리 4% 턱밑인 3.8%로 내다보면서 ‘완만한 경기 회복’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국내외 주요기관들과 국제신용평가사들의 긍정적 평가 때마다 경제 수장인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페이스북 자평은 격앙된 어조로 또박또박 읽어 내리던 변별적 소리의 높낮이를 연상케 한다. 
 
일부 기자들 사이에서는 스마트폰을 뺏어야한다는 우스개 농담까지 나올 정도로 페이스북 자평은 도배수준이다. ‘강한 반등, 경제 회복에 자신감’을 표현하는 경제성장률을 들먹일 때 마다 강한 의문이 드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GDP 전망이 밝다는데 우리 삶은 왜 이럴까.
 
GDP는 사전적 의미로 한 나라의 가계, 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가 생산한 시장가격의 합을 말한다. 우리나라 1인당 GDP는 전년보다 두 계단 상승한 세계 10위다. 코로나 혼돈 속에 G7 주요국 중 한 곳인 이탈리아를 뛰어넘었다. 기축통화국도 아닌 동양의 한 나라가 막강한 기축통화국 중 한 곳인 이탈리아를 제쳤으니 자평할 만하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 16강전 때의 승리처럼 흥분하는 이들은 관료뿐이다. 장밋빛 성장률은 평균값일 뿐 서민들에게 과연 자랑할 만한 성적표인지 되묻고 싶다. 경제성장률의 그 속내를 들쳐보면 소득불균형 등 양극화가 더욱 심화된 참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지난해 2~4분기 가구소득 하위 20%인 1분위 소득을 보면 17.1% 감소했다. 3분위 –3.3%, 4분위 –2.7%, 5분위 –1.6%다. 더욱이 코로나발 쪽박과 대박 양상 속에 부의 불평등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특히 경제 성적표는 제조업 기반의 수출이 주도하고 있다. 외화벌이를 톡톡히 하고 있지만 고용이 필요 없는 반도체, 석유제품, 석유화학 분야로 치우친 의존형 수출 구조는 난제다.
 
전대미문의 시대를 겪는 코로나 앞에 숫자에 불과한 경제성장률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이들이 많다. GDP 개념의 한계는 여러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지적돼 온 문제다.
 
로렌조 피오라몬티의 저서 <GDP의 정치학>을 보면, 불평등을 감추는 숫자로 GDP를 지목하고 있다. 단순한 통계 수치가 아닌 사회를 조직하는 표상으로 강력한 정치적 도구라고 말한다.
 
대공황 이후 GDP는 국민 삶의 질과 가치를 무시한 채, 과도한 경제 성장을 부추겼고 자연을 파괴했다. GDP 달성을 위한 환경 파괴는 오늘날의 괴질을 탄생시킨 주범과도 같다.
 
그린뉴딜을 하자면서 국민 삶을 고민하지 않는 성적표에만 매진하는 기재부는 누굴 위한 정부인지 고민해야한다.
 
이규하 경제부장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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