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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LP의 가치
2021-05-17 06:00:00 2021-05-17 06:00:00
대구에 출장을 다녀왔다. 어느 도시에 가던지 용무가 끝나면 지역의 유명 레코드점에 들린다. 서울과는 다른 느낌의 가게들이 지방 도시에는 존재한다. 이유야 어쨌건 1970년대부터 영남 지역의 부를 장악했던 도시답게, 꽤 괜찮은 가게들이 있었다. 오래된 가게답게 꽤 많은 물량이 있었고, 오래된 가게답지 않게 단정하고 깔끔했다. 마치 대구의 가장 오래된 추어탕집인 상주식당의 품격을 보는 듯 했다. 과거 LP를 모으던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엄마를 졸라 미니 전축을 샀다. 대우전자에서 나온 10만원짜리였다. 턴테이블이 달려 있었다. 테이프 대신 LP(그 때는 그냥 ‘판’이라 불렀다.)를 모으기 시작했다. 음질 같은 건 알지도 못했다. 테이프 보다 크다는 이유 때문이었을까. 혹은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중학생보다는 어른스러워야한다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훨씬 어렸을 때, 아버지가 가끔 판을 사오시곤 했고, 그걸 온가족이 듣던 기억이 ‘판=어른’이라는 등식 처럼 박혔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고등학생 아들의 취미 생활을 장려하시기보다는 탄압하는 엄마덕에 나의 주말은 참으로 고된 시간이었다. 복원되기 전의 청계천은 음악 애호가들의 놀이터였다. 청계천 4가와 8가에는 레코드 도매상들이 몰려 있었다. 금요일 쯤 음반사에 전화를 돌려 금주의 발매 앨범 목록을 챙겼다. 토요일 오전 수업이 땡치자마자 7번버스를 타고 망원동에서 청계천까지 갔다. 레코드 가게를 돌아다니며 수첩에 꼬깃꼬깃 적어온 목록대로 판을 샀다.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비닐을 벗기면 4-5장의 판에서 알싸한 플라스틱 냄새가 올라왔다. 그 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엄마의 감시를 피해 판을 방안까지 공수해야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1층이었고 내 방 창문은 도로변으로 나있었다. 담을 올라고 창문을 열고 침대로 판이 담긴 비닐봉투를 던져놓은 후 다시 현관문으로 들어가야하는 수고로움을 반복했다. 그 고생은 등산용 대형 배낭을 책가방으로 쓰기 시작할 때 까지 계속됐다. 고1때부터 3년을 내리 주말마다 LP를 샀고,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학교때 테이프를, 고등학교때 LP를 모았으니 버젓한 대학생이 된 후엔 CD를 사는 게 순리겠으나 CD는 여전히 비쌌다. LP가 4500원이었던 반면 CD는 10000원 안팎이었다. 1995년 대형 음반사에서 더이상 LP를 안찍기 시작했고, 그 해 나는 입대했다. 제대한 후에야 CD를 모으기 시작했다. 18년이 흐른 지금, 어림잡아 7000장 가량의 CD가 방 양쪽 벽을 매우고 있다. 그리고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더 이상 CD를 사진 않는다. 대신 LP를 다시 모으고 있다. 추억 때문이 아니다.
 
다운로드, 스트리밍과는 달리 LP는 음악을 소유하고 있다는 기쁨을 극대화시킨다. 30X30㎝의 커버가 있고 지름 12인치의 바이닐은 마치 대화면 TV와 같은 시각적 쾌감을 준다. 음악의 역사에서 LP의 전성기였던 1970~1980년대에 커버 아트가 가장 발달했던 이유도 이 크기에 있다. 또한 판을 꺼내 턴테이블에 올리고 바늘을 얹어 한 면을 들은 후 다음 면으로 뒤집는 일련의 과정은 음악 감상을 일종의 제의적 가치로 승화시킨다. 탭 한 두 번이면 충분한 MP3나, 리모콘으로 조작하는 CDP와는 비교할 수 없는 불편한 도구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LP의 매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모든 과정은 좋아하는 음악에 도달하는 일종의 제의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번거로운, 하지만 의식같은 과정을 거쳐 들리기 시작하는 음악이 주는 기쁨이란 음질이고 나발이고를 떠나 MP3에 비할 바가 아니다. CD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와 원나잇 스탠드의 차이이자, 패키지 여행과 도보 여행의 차이와 같은 것이다. 편리로 가득한 삶도 물론 좋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지난 삶 중 과정과 질곡이 함께 했던 일들을 곱씹곤 한다. 몸과 마음에 각인된, 그로 인해 파생된 생각의 조각들 때문이다.
 
대구에서 산 음반은 권인하 2집, 송창식 베스트, 이수만의 <New Age>였다. 품질도 좋고 가격도 괜찮았다. 계산을 하던 중 단골로 보이는 남자가 “요즘은 판 많이 가진 놈이 벼슬이에요”라 농을 쳤다.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가요 LP값에 대한 한탄처럼 들렸다. 감상 및 소장으로서의 구매가 아닌 되팔이를 노리고 LP를 사는 ‘판테커’들이 판치는 업계에 공분하던 터. “저는 판테크할 생각은 없어서요”라고 답했다. 내가 가진 음반들 중에서도 아이유의 <꽃갈피>처럼 부르는 게 값인 아이템들이 있다. 경제적으로 난파위기에 처하더라도, 나는 끝까지 그 음반들을 가져갈 생각이다. 모든 한정된 재화의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세상에서, 돈으로 환산하기 싫은 최후의 가치 하나 정도는 곁에 두고 살고 싶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noisepo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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