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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월성1호기' 청와대 수사 쉽지 않다
산자부 국장 등 감사방해 행위, 백운규·채희봉 재임 시점과 1년 이상 차이
한수원 경제성평가 조작 직권남용 여부, '원전 정책 영역'과 상당부분 겹쳐
2020-12-06 09:00:00 2020-12-06 09:00:00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과 관련해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내부자료를 인멸한 혐의를 받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공무원들이 구속됐다. 이른바 '윗선' 수사가 힘을 받게 됐지만, 청와대가 개입됐다는 의혹이 사실로 증명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전지법 오세용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4일 산업부 소속 공무원 3명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뒤 A국장과 C서기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범행을 부인하고 있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는 것이 영장 발부 사유다. 법원은 그러나 B 과장에 대해 신청된 구속영장은 기각했다. 오 부장판사는 "영장이 청구된 범죄사실을 대체로 인정하고 있고 이미 확보된 증거들에 비추어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감사방해 혐의를 받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 국·과장급 공무원 3명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하루 전인 지난 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직원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감사원과 검찰에 따르면, A국장 등은 지난해 12월 감사원 감사가 본격화될 조짐이 보이자 내부자료 444건을 고의로 삭제한 혐의(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감사원법 위반)를 받고 있다. 삭제한 자료에는 월성1호기 운영을 계속하는 것이 경제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 의사결정 과정, 이에 대한 이후 조치상황 등이 담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삭제 문건 중 324건을 복구했으나 120건은 복구하지 못했다.
 
감사원은 지난 10월20일 감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백 전 산자부 장관과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그리고 이번에 구속된 A국장 등을 문책대상자로 결론 내 검찰에 통보했다.
 
감사원이 공개한 감사 전문을 보면, 대통령 산업정책비서관실은 2018년 4월2일과 3일 산자부에 월성1호기 운영실태를 조사해 조기폐쇄 추진방안과 향후계획을 장관에게 보고한 뒤 이를 산업정책비서관실에도 보고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따라 산자부는 같은 달 3일, 월성1호기를 원자력안전위의 '영구정지 운영변경허가시까지 가동 후 정지'하는 방안으로 백 전 장관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백 전 장관은 '조기폐쇄 결정 즉시 가동중단하는 것으로 재검토를 지시하고 이튿날인 4일 이를 산자부 방침으로 결정했다. 산자부는 백 전 장관 결정대로 대통령 산업정책비서관실에 보고하고 같은 날 한수원에도 전달했다. 이후 한수원은 그 다음날, 당초 검토되던 여러 방안 중 '계속가동'과 '즉시 가동중단'만 비교·분석한 뒤 '즉시 가동중단'으로 결정했다.
 
감사원 감사결과만을 보면, 월성1호기 운영실태와 향후계획을 알려달라는 청와대 요구로 검토된 '영구정지 운영변경허가시까지 가동 후 정지'라는 산자부 실무부서의 입장이 백 전 장관 선에서 돌연 '즉시 가동중단'으로 확정됐다. 이후 감사원 감사와 감사방해까지 이르게 된 A국장 등 산자부 직원들의 증거인멸도 백 전 장관의 결정 뒤에 일어났다.  
 
감사원은 "백 전 장관이 지난 2018년 4월4일 월성1호기 원전에 대한 외부기관의 경제성 평가결과 등이 나오기 전 월성1호기 조기폐쇄 시기를 한수원 이사회의 조기폐쇄 결정과 동시에 즉시 가동중단하는 것으로 방침을 결정하고, 이에 따라 산업부 직원들이 한수원이 월성1호기를 즉시 가동중단하는 방안 외 다른 방안은 고려하지 못하게 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 "백 전 장관이 한수원 이사회가 즉시 가동중단 결정을 하는 데 유리한 내용으로 경제성 평가결과가 나오도록 평가과정에 관여했다"고 지적했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2017년 9월12일 오후 경북 한국수력원자력 월성발전본부 방문해 월성원전 건식저장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감사원은 정 사장에 대해서도 "월성1호기 계속가동에 대한 경제성 평가를 실시하면서 다양한 대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하지 않거나, 한수원 직원들이 외부기관의 경제성 평가과정에 부적정한 의견을 제시해 경제성 평가의 신뢰성을 저해하는 것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검찰 특수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6일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감사원 감사로 확인된 일련의 사실과 지금까지의 수사진행 상황을 보면, 검찰 수사는 '증거인멸' 등 감사방해 행위에 집중돼 있다"면서 "청와대가 산자부 실무부서의 보고를 받은 시점은 백 전 장관의 결정 이후다. 증거인멸 등 감사방해 행위에 청와대가 연관돼 있다고 보기는 어색하다"고 했다.
 
A국장 등 산자부 공무원들의 감사방해 행위가 있었던 시점과 '윗선'으로 거론되는 사람들의 재임시점도 1년 이상 차이가 있다. 국회가 감사원에 감사를 의뢰한 시점은 2019년 1월이다. 감사방해 즉, 증거인멸 시점은 2019년 12월이다. 백 전 장관은 2017년 7월 취임해 2018년 9월 물러났다. 채희봉 한국가스공사사장은 2017년 6월 대통령비서실 산업정책비서관실 산업정책비서관으로 임명됐다가 2018년 10월 퇴임했다.
 
특수부 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는 "증거인멸, 즉 감사방해 사건 피의자 구속이 이른바 '윗선' 수사의 직접적 디딤돌이 될 수는 없어도 마중물로 볼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A국장 등의 감사방해 행위를 직접 연결시키기는 어렵더라도 월성1호기 원전을 즉시 중단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경제성 평가를 조작했다는 의혹 측면에서는 백 전 장관과 그 윗선인 청와대도 개입했는지가 문제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결국 검찰의 '윗선' 수사는 백 전 장관과 청와대의 직권남용 혐의로 보인다.   
 
검찰은 백 전 장관의 '월성1호기 즉시 가동중단' 결정에 대통령 산업정책비서관실이 관여했는지를 의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주 중 백 전 장관과 정 사장, 당시 대통령 산업정책비서관이었던 채 사장을 차례로 불러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검찰은 백 전 장관과 채 사장 등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분석해왔다.  
 
형법상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죄'다. 이번 사건의 핵심 의혹은 정책의 판단과 결정 영역과 상당부분 겹쳐 있다. 설령 백 전 장관과 채 전 비서관이 '월성1호기 즉시 가동중단' 결정과 일부 연관이 있더라도 직권남용죄의 소명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대전지검은 "월성 1호기 원전 관련 수사는 원전 정책의 당부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정책 집행과 감사 과정에서 공무원 등 관계자의 형사법 위반 여부에 대한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하고 있다. 
 
감사원도 결과 발표에서 "정부의 '에너지 전환정책'이나 그 일환으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월성1호기 조기폐쇄를 추진하기로 한 정책결정의 당부는 감사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폐쇄를 위한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11월16일 오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교수연구실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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