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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우리 모두 기억해야 할 사람
2020-11-13 06:00:00 2020-11-13 06:00:00
매년 11월 중순이 되면 전국의 노동자와 노동단체들이 모여 전태일 열사 계승을 위한 각종 행사와 집회를 개최한다. 코로나19로 계획보다 올해 행사는 축소되었지만 과거 어느 때보다 규모 있고 다양한 행사가 11월 첫 주부터 열리고 있다.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전태일 50주기를 맞이하여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50주기 범국민행사위원회”를 꾸려 노동존중사회를 현실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노동의 미래를 주제로 한 국제포럼, 전태일50주기 기념동판 만들기, 추모 문화제와 추도식 등이 행사의 주된 내용이다.
 
많은 노동자와 시민들이 전태일을 기억하고 추모함은 그가 노동인권의 상징이자, 노동운동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한국 노동운동은 일본제국주의 지배와 해방 그리고 전쟁과 분단이라는 참혹한 역사에서도 중단되지 않은 채 100여 년 동안 지속되었다. 하지만 노동 문제는 개발 논리에 밀려 언제나 뒷전이었다.
 
선성장 후분배를 앞세운 권위주의체제 아래에서 사람들이 말하지 못한 노동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사람은 스물두 살에 생을 마감한 전태일이었다. 조영래변호사는 전태일을 역사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재단사라는 이름의 청년 노동자. 1948년 8월 26일 대구에서 태어나,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 앞 길거리에서 스물둘의 젊음으로 몸을 불살라 죽었다. 그의 죽음을 사람들은 ‘인간 선언’이라고 부른다.” 사건 당시 일간지들은 사회면 한 구석에 단신으로 젊은 재단사의 죽음을 알렸다.
 
경향신문 기사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13일 하오 2시쯤 서울 중구 을지로 6가 평화시장 앞길에서 평화시장 재단사 친목회원 전태일 씨가 휘발유를 몸에 끼얹고 분신자살을 기도, 국립의료원을 거쳐 성모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날 하오 10시쯤 숨졌다. 전 씨는 “기업주는 근로기준법을 지켜 달라. 15, 16세의 어린아이들이 일요일도 없이 하루 16시간씩 혹사당하고 있으니 당국은 이런 사태를 시정해 달라”고 호소, 미리 준비했던 휘발유로 책을 태우려다 제지를 받고 자기 몸에 불을 지른 것이다. 전태일의 분신은 시민과 학생 그리고 지식인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다. 함석헌선생은 1971년 11월 13일. 전태일 1주기 추모집회에서 “전태일을 살려라”는 강연을 했다. “태일을 죽인 것은 이 나지, 이 70이 되어서도 아직도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이 살 속에 갇혀 있는 이 나지” 전태일의 죽음은 성장주의가 만든 비극이었고, 노동자의 삶을 외면했던 모든 이들의 책임이었다.
 
전태일은 70년대 폭압적 유신정권에서 감추어져 있었지만 민주화의 봄과 함께 노동자에게 돌아왔다. 마침내 19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사회적 시민권을 획득한 민주노조운동은 전태일을 역사의 광장으로 호명하였다. 1988년 11월 13일에 연세대학교 노천강당에서 열린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노동악법 개정 전국노동자대회’는 전태일을 노동자의 상징이자 노동열사로 확고하게 자리 잡게 한 기점이었다. 이후 전태일은 노동자의 벗에서 시민들의 친구로 재조명되었다. 2000년대 이후 전태일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는 인물이 되었고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인 중 한 명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청계천 복원 공사로 생겨난 22개의 다리 중에 평화시장 입구에 있는 버들다리는 2012년 11월부터 전태일 다리로 불리며, 전태일 흉상이 그 위에 서 있다.
 
전태일 50주기를 맞는 한국의 노동은 어떠한가. 전태일이 외친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소박한 권리는 실현되고 있는가. 지난 50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발전에 견주면 그 답은 긍정적이지 못하다. 국민소득 3만 달러의 선진국 이 되었지만, 일터로 나간 노동자 평균 3명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5인 미만 사업장 360만 명의 취약노동자들은 여전히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에서 배제되어 있다. 노동자들의 임금은 올랐고 근로시간은 단축되었지만 일터 민주주의는 걸음마 단계이다. 노동자들은 경영의 파트너가 아닌 지시의 대상이다. 청년노동자들은 어렵게 들어간 일터에서 갑질과 감정노동 등 직장 내 괴롭힘에 신음한다.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의 이중구조는 더 심각하다. 대-중소기업간,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격차가 확대되고 이동성이 단절되었다. 상대적으로 양호한 고용 안전성과 근로조건을 유지하고 있는 대기업 정규직에 비해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시장은 열악한 근로조건과 고용불안전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의 설문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50년 전 전태일시대와 현재의 노동현실을 비교하는 설문조사였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응답 결과는 비관적이었다. 삶과 처우가 좋아졌다는 사람은 38%에 그쳤고, 55%는 앞으로도 나아질 게 없다고 봤다. 39%는 근로기준법 밖에 있고, 55%는 원하는 날에 쉬지 못한다고 했다. 50년 전 전태일과 동료들의 불안과 고통이 2020년 일터의 약자인 비정규직, 5인 미만 사업장, 저임금노동자들에게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전태일이 꿈꿨던 연대와 평등의 세상은 구현되지 않았다. 살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삶의 과제이다. 
 
노광표 한국고용노동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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