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큰별 지다…이건희 삼성 회장 별세(종합)
6년5개월의 병상 생활 끝에 영면…향년 78세
삼성 "장례는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치를 것"
입력 : 2020-10-25 14:09:42 수정 : 2020-10-25 14:09:42
[뉴스토마토 권안나 기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향년 78세로 별세했다.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5개월만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뉴시스
 
25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이날 장기간의 와병 끝에 사망했다. 이날 삼성전자는 “장례는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면서 “이에 조화와 조문은 정중히 사양하오니 양해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1942년 대구에서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난 이건희 회장은 경남 의령 친가에서 지내다 1947년 상경해 학교를 다녔다. 1953년에는 선진국을 배우라는 부친의 명으로 유학을 떠났고, 일본 와세다대학 상학부와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1968년 동양방송에 입사하면서 그룹 경영에 참여했으며, 부친인 이병철 삼성창업주가 별세한 1987년부터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2014년 입원 전까지 약 27년 동안 삼성그룹을 이끌면서 삼성 경영 반도체와 스마트폰, 바이오 등 신사업을 통해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일궜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은 2006년 글로벌 TV시장에서 일본 소니를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고, 애플을 따라잡고 스마트폰 1위를 달성했다. 메모리 반도체를 포함해 20여개 품목의 글로벌 1위를 일궈냈다. 이 회장이 경영을 맡은 27년의 기간 동안 삼성그룹의 매출은 40배, 시가총액은 300배 이상 커졌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품질중시 경영으로 대표되는 이 회장의 신경영 등이 삼성을 발돋움하게 한 원동력이다. 이 회장은 당시 글로벌 경영환경의 격변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일류가 돼야 하는데 지난해보다 얼마나 많이 생산하고 판매했는지에 급급한 당시의 관행으로는 해낼 수 없다고 진단했다.  
 
이건희 회장은 특히 양 위주 경영의 한계를 절감하고, 양적 사고의 결과로 생기는 불량을 고질적인 병폐라고 지적했다. 이후 삼성은 불량을 없애는 제품의 질부터 혁신을 시작했으며, 생산라인을 중단시키더라도 불량을 선진 수준으로 낮추도록 노력했다.  
 
신경영의 변화는 혈연·지연·학연이 끼지 않는 공정한 인사의 전통을 조직에 뿌리 내리고, 연공서열이나 각종 차별조항을 철폐하여 시대 변화에 맞는 능력주의 인사가 정착되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이 회장은 "기업이 인재를 양성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죄악이며, 양질의 인재를 활용하지 못하고 내보내는 것은 경영의 큰 손실"이라며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으로 손꼽혔지만 각종 수사로 홍역도 치렀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비자금 사건으로 특검 조사를 받았고, 이로 인해 2008년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등을 발표했다. 이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재계·체육계 건의로 단독사면되면서 2010년 경영일선에 복귀했고 삼성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헌신했다.
 
한편 이 회장은 2014년 5월 10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이후 병원에서 심폐소생술(CPR)까지 받고 소생했다. 이후 자가호흡을 하며 재활치료를 받아왔으나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권안나 기자 kany87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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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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