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예방접종 후 다른 질병…법원 "보건당국이 보상하라"
질병관리청 상대 소송 항소심서 원고 승소 판결
입력 : 2020-10-23 12:09:29 수정 : 2020-10-23 12:09:29
[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독감 예방접종을 받은 후 마비가 일어나는 질병인 길랭·바레증후군을 진단받은 한 남성이 보건 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2심에서 승소했다.
 
23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3부(재판장 이상주)는 지난 22일 A씨가 질병관리청장을 상대로 낸 예방접종 피해보상 신청 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 관한 항소심에서 각하 판단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예방접종과 길랭·바레증후군의 발생 사이에는 시간적 밀접성이 있고, 길랭·바레증후군이 예방접종으로부터 발생했다고 추론하는 것이 의학 이론이나 경험칙상 불가능하지 않다"며 "또 길랭·바레증후군이 예방접종이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정도의 증명이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이 사건 예방접종과 길랭·바레증후군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앞서 A씨는 지난 2014년 10월7일 경기 용인시에 있는 한 보건지소에서 인플루엔자 예방접종을 받았다. A씨는 엿새 후인 같은 달 13일 한 내과의원에서 설사를 동반한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진단받았다. 또 약 열흘 후인 그달 18일 오른쪽 다리와 허리 부위에 힘이 빠지는 증세가 느껴져 인근에 있는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길랭·바레증후군으로 진단받아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A씨는 2015년 9월17일 질병관리청에 예방접종 피해보상을 신청했다. 하지만 질병관리청은 2차례 예방접종 피해보상 전문위원회를 개최한 후 길랭·바레증후군과 예방접종과의 관련성이 인정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A씨의 신청에 대해 기각 결정을 한 후 2017년 7월13일 이를 통지했다.
 
질병관리청 내부 절차에 따라 A씨는 이의신청을 했지만, 질병관리청은 그해 12월15일 "길랭·바레증후군의 주요 선행 원인인 위장관 감염 이후에 발병한 것으로 백신에 의한 가능성이 불명확해 예방접종과의 관련성이 인정되기 어렵다"면서 이의신청에 대해서도 기각 결정을 했다. 이에 A씨가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질병관리청이 1차로 기각 결정을 통지한 2017년 7월13일부터 행정소송의 제소 기간인 90일을 경과한 점을 들어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이 제대로 된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때 해당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심리 없이 사건을 끝내는 재판을 말한다.
 
다만 1심에서는 2017년 12월15일자 이의신청 기각 결정을 기준으로 하면 제소 기간이 지나지 않았다는 전제로 "이 사건 예방접종에 내재하는 위험이 현실화해 길랭·바레증후군이 나타난 것으로 보기 어렵고, 오히려 예방접종과 무관하게 발병한 위장관 감염이 길랭·바레증후군의 원인이 됐을 여지가 커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부가적 판단을 덧붙였다.
 
A씨는 1심의 부가적 판단에 따라 2심에서는 이의신청 기각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내용으로 청구를 변경했다. 2심은 이의신청 기각 결정에 대해 위법성 여부를 심리해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A씨는 2014년 10월7일 예방접종을 한 지 10여일 후 길랭·바레증후군 진단을 받았는데, 예방접종과 길랭·바레증후군의 발생 사이의 시간적 간격은 매우 근접하다"고 밝혔다.
 
또 "대한의사협회의 사실조회 회신 내용과 B대학교병원의 신체감정촉탁 결과를 보면 A씨의 길랭·바레증후군은 예방접종과 위장관 감염이 모두 원인이 될 수 있어서 위장관 감염에 의해 길랭·바레증후군이 발병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서울고법 관계자는 "예방접종과 길랭·바레증후군의 발병 사이에 시간적 근접성이 인정되고, 길랭·바레증후군이 예방접종으로부터 발생했다고 추론하는 것이 의학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며 "A씨에게 발병한 길랭·바레증후군의 경우 예방접종과 위장관 감염이 모두 원인이 될 수 있어서 길랭·바레증후군이 예방접종이 아닌 위장관 감염에 의해 발병한 것이 아니라는 정도의 증명이 된 이상 예방접종과 길랭·바레증후군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예방접종 피해보상 신청에 대한 기각 결정에 관련해 질병관리청이 내부적으로 정한 절차에 따라 제기한 이의신청을 다시 기각한 결정도 별도의 행정 처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23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동부병원 독감 예방접종실 앞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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