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선율 기자] 최근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를 위한 '디지털자산기본법' 개정이 또 다시 무산된 가운데 입법 공백 속 가상자산 질서를 잡기 위해 업계가 추진 중인 자율규제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규제 당국인 금융위원회가 증권형토큰(STO) 발행 허용 방침을 알리면서 긴장감이 고조된 가운데,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향후 관련 라이선스 획득을 염두에 두고 자율규제 방안 마련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16일 서울 마포 프론트원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가상자산 관련 금융리스크 점검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현재까지 국내외 가상자산 시장은 법과 제도적 장치가 부재해 투자자 피해가 발생해도 처벌할 근거조차 없어 혼란이 이어졌습니다. 지난해 루나·테라 폭락사태와 FTX 거래소 파산 등 사태가 제도 정비 필요성에 경각심을 일깨워준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요. 이 때문에 올해는 가상자산 시장에 대해 국회와 정부에서 법안과 제도 마련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습니다.
그러나 가상자산 규제를 위해 지난해부터 논의된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추진단계부터 난항을 빚고 있는 실정입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16일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열었지만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는 또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12월에 이어 두번째입니다. 가상자산 관련 법안만 14건이나 되지만 여야간 대치정국에 정치현안이 산적해있다는 이유로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됐습니다. 주요 법안은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이 대표발의한 '디지털 자산 시장의 공정성 회복과 안심거래 환경 조성을 위한 법률 제정안'과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가상자산 불공정거래 규제 등에 관한 법률안'입니다.
당초 정치권에선 지난해 중으로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올해 1월까지도 논의 시작조차 못한 것을 감안하면 규제 공백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율규제의 역할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 주요 거래소들의 자율규제 또한 이제 걸음마 단계로 구체화된 가이드라인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게다가 거래소들 의견도 제각각이라서 공통 가이드라인 마련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가상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 닥사 의장인 이석우 두나무 대표가 지난 12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2023년 디지털자산 자율규제 정책 심포지엄'에 참석해 자율규제 관련해 계획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사진=이선율기자)
지난 12일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가 속한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닥사)는 거래지원(상장)에 이어 거래지원 종료(상장폐지) 공통 기준을 마련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자율규제 방향을 잡기 위해 금융당국, 국회와 긴밀한 협의를 이어나간다는 방침입니다. 일단 현재 상장과 관련해선 큰 틀의 대략적인 공통 가이드라인을 마련해놓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자율규제의 경우 5곳의 원화거래소뿐 아니라 다른 코인마켓 거래소들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업계 전반의 규제 틀을 정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을 통해 구매하는 C2C(코인간 거래) 방식으로 마켓을 오픈해 운영하는 코인마켓 거래소들 일부는 지난해 7월 KDA(한국디지털자산사업자연합회)를 통해 공동 가이드라인 기초안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다만 내부 견해차를 보이면서 구체화된 자율규제안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상자산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 혼란이 심화된 상황에서는 빠른 자율규제 마련을 위해 의견 조율이 중요한데, 이 작업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했습니다.
또한 자율규제 추진을 놓고 업계와 금융당국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결국 금융위가 추진하는 규제 틀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6일 '가상자산 관련 금융리스크 점검 토론회'에서 자율규제에 대해 "자율 규제는 규제가 아니다"라며 "지금 규제의 틀을 어떻게 둘지에 대한 입법적 고민은 국회에서 하고 있으며, 금융당국을 비롯한 여러 이해관계자들은 이에 대한 의견을 내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원화거래소 한 관계자는 "가상자산 관련 법 제도 추진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선 자율규제에 힘이 실릴 수 밖에 없다"면서 "다만 자율규제안 마련과 관련해 이해관계가 제각각인 데다 의견차가 커 상폐 관련 공통 가이드라인 마련까지 꽤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코인마켓 거래소 관계자는 "코인마켓 거래소들은 실명계좌 획득이 가장 중요한 현안이기에 자율규제 공통 방안 마련에 관심을 크게 보이지 않는 곳이 많다"면서 "우리는 그래서 알아서 잘하자는 마음으로 당국의 규제 현안에 맞춰 자율규제를 이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선율 기자 melod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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