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시중금리가 완연한 하락세를 그리면서 은행권에선 연 3%대 중반의 정기예금 상품도 사라지는 분위기입니다. 서둘러 3.5% 예금 막차에 올라타야 한다는 조언도 나옵니다. 하지만 은행 예금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안정성은 예금에 준하면서 수익률은 4%대 중반을 유지 중인 은행채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채권만기 2045년 코코본드 주목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재 채권시장에는 4%대 중반의 수익률이 예상되는 다양한 종류의 채권이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중에는 은행들이 발행한 채권 특히 ‘코코본드(CoCo bond)’라고 부르는 조건부자본증권이 상당히 많습니다.
조건부자본증권은 2014년 새로운 규제인 바젤Ⅲ와 함께 도입된 새로운 형태의 자본증권인데요. 유사시 보통주로 전환하거나 상각될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아 발행하는 채권입니다. 회계상 자기자본으로 인정해 주기 때문에 남의 돈을 빌려 사업하는 은행들이 주로 발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유사시’는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거나 경영개선명령을 받는 경우 등입니다. 즉 은행이 재무적으로 위험해지는 상황을 말하는데 현재 시중은행 중에는 이에 해당할 만한 곳이 없어 채권 원리금을 받는 데는 안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건부자본증권은 채권 만기가 30년으로 길어서 웬만한 채권은 손을 대기 어렵습니다. 투자자가 중간에 상환을 요구(풋옵션 행사)할 수도 없습니다. 대신 거의 모든 조건부자본증권엔 일정 기간 후 조기에 채권을 중도상환하는 조건 즉 콜옵션이 붙어있고 거의 모든 경우 은행들이 이 콜옵션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채권 발행 후 만기인 30년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는 겁니다.
대다수 조건부자본증권의 콜옵션 기일은 채권 발행일로부터 5년 또는 10년 후부터라고 설정돼 있습니다. 내년에 콜옵션 기일이 돌아오는 채권 중에서 투자 후보를 고른다면 1년을 기다리지 않고도 원리금 회수가 가능한 겁니다.
투자후보 까다롭게 선별해야
장내 채권시장에 상장된 조건부자본증권의 숫자는 매우 많습니다. 하지만 평소에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채권이 대부분입니다. 채권 보유자 누군가가 물량을 시장에 내놔야 가격에 따라 매수를 할 텐데 매도 주문이 아예 없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매도 주문이 나와도 원하는 가격(호가)이 너무 높으면 거래가 체결되지 않습니다. 채권가격이 곧 매수자들의 수익률을 결정하는데 가격이 높을수록 기대수익률은 떨어집니다. 최소한 은행 예금금리보다는 높아야 채권에 투자할 유인이 생깁니다.
간혹 일시적으로 대량 거래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미리 약속하고 거래하는지 개인 투자자들이 거래에 끼어들 틈이 없이 한두 번 체결로 끝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본업이 있는 일반 투자자들로서는 매일 매시간 호가창을 들여다볼 수는 없기 때문에 이 경우도 예외로 봐야 합니다.
콜옵션 행사까지 남아 있는 날짜 즉 투자기간이 적당해야 하고, 모든 조건이 맞아도 평상시 거래량이 너무 적으면 쉽게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여러 가지로 따져봐야 할 것이 많습니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에 부합하는 조건부자본증권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표=뉴스토마토)
4.4% 수익률…연환산으론 5.3% 기대
하나금융지주는 2015년 5월29일 2700억원어치 채권(조건부자본증권)을 둘로 쪼개서 발행했습니다. 하나금융지주 제1-1회 상각형 조건부자본증권(신종자본증권) 800억원과 하나금융지주 제1-2회 상각형 조건부자본증권(신종자본증권) 1900억원입니다. 둘 다 30년만기를 내걸었지만 콜옵션이 있습니다. 1-1회 채권은 발행일 5년 후부터, 1-2회는 10년 후부터 콜옵션 행사가 가능합니다.
1-1회는 발행 5년 시점이었던 2020년 5월에 이미 중도상환했습니다. 그리고 1-2회 채권, 장내시장에 상장된 종목명으론 ‘하나금융지주 조건부자본증권(상)1-2’이 내년 5월에 콜옵션을 행사할 예정입니다. 발행금리 연 4.445%, 잔존일수가 7598일이나 되는 장기물이지만 실제로는 9개월 3주쯤 후에 상환하는 채권의 현재 기대수익률은 약 4.4%입니다.
이 채권의 현재 시세는 1만60원입니다. 만약 이 채권을 액면가 1000만원어치 투자한다고 가정하고 기대수익률을 계산하면, 일단 투자원금은 1005만원 그리고 이용하는 증권사의 매매수수료 약간입니다. 1006만원을 들이지만 내년 조기상환 때는 액면가 그대로 1000만원만 돌려받습니다. 그 사이에 발생하는 채권이자로 그 이상의 수익을 확보해야 합니다.
발행금리가 연 4.445%이므로 연간 이자는 총 44만4500원입니다. 3개월 이표채이므로 연간이자를 4등분해서 11만1125원씩 3개월 단위로 지급됩니다. 여기에서 이자소득세 15.4%가 원천징수돼 실제 받는 돈은 세후이자 9만4011원입니다.
채권 발행일이 5월29일이었으니 남은 이자는 8월, 11월, 내년 2월 그리고 5월28일에 원금을 상환하면서 마지막 이자를 지급합니다. 남은 일수는 1년이 안 되는데 이자는 이달 말부터 4회분 44만4500원을 전부 받습니다. 이건 매도자가 이번달 이자를 못 받는 것까지 매도가격에 반영해야 하는 매도자의 몫이지 매수자가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원금 1005만원을 투입해 채권원금 1000만원과 이자총액 44만4500원을 수령하면 4.42% 수익률입니다. 더구나 10개월이 안 되는 기간에 거두는 수익이므로 연환산 수익률로 다시 계산하면 5.3%가 넘습니다. 채권 매매수수료를 더한다고 해도 은행 정기예금에 비하면 훨씬 나은 수익률이 기대되는 것입니다.
이와 흡사한 발행조건을 지닌, 적당한 가격대가 형성된 조건부자본증권이 꽤 있습니다. 하나금융지주가 같은 해 11월에 발행한 ‘하나금융지주 조건부자본증권(상)2-2’ 채권 역시 내년 11월에 콜옵션 상환일이 돌아옵니다. 이 채권의 발행금리는 연 4.612%였고 현재 시세는 1만50원입니다.
이밖에도 신한금융지주, 기업은행 등의 조건부자본증권 중에도 내년에 콜옵션 행사일이 돌아오는 적당한 가격대의 채권물이 있습니다. 거래량이 많지는 않지만 며칠 지켜보면 매수할 기회를 만날 수 있을 정도의 거래량입니다.
조건부자본증권은 태생적으로 은행이 부실해질 경우 상환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나, BIS 비율 높고 금융당국에 의해 철저히 관리되는 시중은행의 신용등급 AA-급 채권이라면 안심해도 좋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3.5% 정기예금이 아니라도 투자할 곳은 남아 있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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