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유성우처럼 쏟아지는 이디오테잎의 ‘레트로 퓨처리즘’
코로나19 여파에 장기 싱글 프로젝트…“댄서블한 음악 새로운 지향점”
SF 소설 같은 이미지 출렁…두 번째 싱글 앨범 ‘Future That Never Comes’
입력 : 2020-08-21 00:00:00 수정 : 2020-08-21 22:02:06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밴드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서울 마포구 양화진로 한 건물 지하에 위치한 악기점 '링고샵'.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서울 마포구 양화진로 한 건물 지하에 위치한 악기점 ‘링고샵’. 계단을 내려서자 데이비드 보위의 곡 ‘Space Oddity’ 톰 소령이 된 듯 했다. 긴 전기 배선들을 늘어뜨린 ‘밀림식’ 기계장비들이 흡사 엔진가동을 앞둔 우주선 같았다.
 
프랑스 아투리아, 라트비아 에리카신스, 일본 롤랜드…. 세계에서 막 공수해온 이 따끈한 전자악기들 앞에 ‘그들’은 비행사 같은 자태로 섰다. 이내 손으로 버튼들을 주무르며 카운트다운 시작. ‘3, 2, 1….’ 1990년대식 ‘뿅뿅’ 전자음 사운드가 유성우처럼 쏟아졌다. 
 
10분여간 이들의 ‘막간 라이브’에 잠시 톰 소령 같은 상상이 일렁였다. 깡통 같은 우주선을 떠다니는 나, 둥근 헬맷 위 아른거리는 푸른 지구와 은하수. 일렉트로닉 밴드 이디오테잎의 ‘신음악’을 듣다 그렇게 우주여행이 보편화된 미래 어느 날로 날아갈 뻔했다.
 
일렉트로닉 밴드 이디오테잎. 좌측부터 디구루, 디알, 제제.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13일 오후 1시, 이 곳에서 만난 밴드[디구루·제제(신디사이저), 디알(드럼)]는 “통상 전자음악은 다양한 악기가 계속 출시되고 이에 새로운 소리 탐구를 끝없이 이어가야 한다. 뉴욕과 도쿄 악기점에 준하는 이 곳에서 최신식 전자악기들을 탐험하다 이번 신작들의 ‘레트로 퓨처리즘 사운드’에 도달할 수 있었다”며 눈을 반짝였다.
 
2014년부터 해마다 세계 각지 유수의 음악 페스티벌을 돌아다닌 밴드는 올해 코로나19 여파로 잠시 투어를 중단했다. 대신 코로나 전부터 준비하던 싱글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지난달 첫 싱글 ‘Too Old to Die Young’을 시작으로 9월까지 세 번에 걸쳐 총 5개의 곡을 발표한다. 신곡은 2017년 정규 3집 ‘DYSTOPIAN’ 이후 3년 만. 다양한 신스음에 메탈풍 드럼을 황금 비율로 섞던 이들은 이제 무게추를 ‘뿌리’인 전자음악 쪽으로 옮겼다.
 
“이디오테잎이라 하면 ‘이런 음악이다’ 하는 관념을 탈피해보고자 했습니다. ‘록킹한 전자음악’은 이미 전작에서 끝을 봤거든요. 현재로선 누군가를 춤추게 만드는 댄서블한 음악이 새로운 음악적 지향입니다.”(제제)
 
라이브 때 건반과 믹서 더미의 ‘ㄷ’자 형태로 자신들을 감싸는 디구루와 제제는 녹음 땐 도합 20여개가 넘는 전자악기로 ‘숲’을 만든다. 10개의 손을 신디사이저 위로 미끄러트려 음을 변주, 그 뒤 페달을 밟아 이펙트(음 변형) 효과를 내거나 믹서의 동그란 버튼을 시계 바늘처럼 돌려 사이보그적인 음색을 발진한다. 
 
이디오테잎 싱글 프로젝트 첫 포문을 연 'Too Old to Die Young' 커버. 사진/두루두루아티스트컴퍼니
 
다만, ‘무그 서브 37’을 앞세운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1990년대, 미래적이라 불리던 사운드’에 특히 주목했다. 그 당시 활동하던 테크노 대표 뮤지션 오비탈이나 언더월드의 음악 작법을 도입, ‘레트로적 미래 사운드’로 구현했다. 지난달 싱글 프로젝트의 첫 포문을 연 ‘Too Old To Die Young’가 대표적. 곡의 1분50초대 쯤에 이르면 90년대 ‘딴딴’ 거리는 테크노 비트의 점들이 겹치고 들러붙으며 가열되다 4차원처럼 시공을 찢어발긴다. 
 
“‘90년대 테크노 맥이 끊기지 않았다면’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한 곡입니다. 실제로 이너시티나 아웃랜더 같은 당시 뮤지션들과 비슷한 악기 소리를 넣어봤습니다.”(디구루) 
 
이 곡 제목을 의역하면 ‘우린 지금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란 뜻. 불혹을 넘긴 자신들의 심경 그대로를 새겨 넣었다. “제가 생각하는 ‘늙음’이란 하고 싶은 게 없을 때인 것 같아요. ‘새로운 것을 해보자’ 이렇게 느끼는 우린 물리적인 나이를 떠나 아직 ‘Young’ 하다 생각해요.”(제제) “메시지와 달리 음악적으로는 ‘Old’로 선회합니다. 과거와 현재, 시간의 반복을 그렇게 표현하고 싶었어요.”(디구루)
 
이 곡의 사운드, 메시지는 확장 축소되는 바다, 지구, 우주(뮤직비디오 영상)와 같은 이미지와 얽히고설킨다.
 
일렉트로닉 밴드 이디오테잎.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19일 공개된 두 번째 싱글앨범도 첫 싱글의 실험성을 이어간다. 수록곡 ‘Future That Never Comes’는 레트로 퓨처리즘을 극대화한 곡. 미래, 우주 같은 SF 주제를 시청각적 재료 삼음로써 밴드는 제러드 오닐의 SF소설 같은 이미지를 출렁인다. 댄서블한 전자음 파고는 눈 앞에서 세기말 우주비행선을 건축한다.
 
“어릴 적엔 ‘과학동화’ 잡지 같은 세계가 펼쳐질 것 같았어요. 자유롭게 우주여행을 다니고 장밋빛 희망이 넘쳐날 것 같은 미래 세상, 이 곡은 그런 세상을 꿈꾸는 바람이에요. 기술적으로 진보 했을지언정 지금 세상은 굉장히 어둡잖아요. 질병으로 이렇게 세상이 멈춰버릴줄 누가 알았겠어요...”(제제)
 
드러머 디알은 밴드를 다른 국내외 전자음악가들과 차별화하는 핵심이다. 슈가도넛, 뷰렛 등의 밴드 출신인 그는 전폭기처럼 리얼 드럼을 연타하며 팀에 역동성, 인간미를 불어 넣는다. 다만 이번 프로젝트에선 테크닉적인 면보단 전자악기와 밸런스를 맞추는 데 초점을 뒀다.
 
“인간과 기계의 공조를 어느 비율로 맞추느냐 계속 실험 중입니다. 리얼 드럼도 너무 정확하게 치면 기계 같으니까, 일부러 살짝 박자를 엇나가게 칠 때가 있어요.”(디알)
 
이디오테잎 두번째 싱글 앨범 'Future That Never Comes'. 사진/두루두루아티스트컴퍼니
 
이번 싱글의 또 다른 수록곡 ‘Right Answer to the Wrong Question’은 앞선 두 곡과 결이 조금 다르다. 수능시험의 폐해를 다룬 최우영, 스티븐 두트 감독 다큐(‘공부의 나라’)에 착안, 다름과 틀림을 구분 못하는 한국사회를 향해 날을 벼린다. 디알은 다시 벌새의 날개짓처럼 플로어 탐과 심벌에 드럼스틱을 메다꽂는다.
 
“모두가 정답을 찾는 데 혈안이 된 사회가 과연 올바른가에 관한 곡입니다. 다름을 틀림으로 단정 짓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디알) “3집과 이번 프로젝트를 잇는 가교역할을 하는 곡입니다. 이 곡 만큼은 디알 형에게 ‘유일한 분노’를 허락했습니다. 하하.”(제제)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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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익도

자유롭게 방랑하는 공간. 문화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