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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위태로운 야당의 '심재철 사건' 선전포고
2018-10-01 06:00:00 2018-10-01 06:00:00
요즘 대한민국은 정치·외교, 경제, 사회 등 거의 전 분야에서 정말 어지럽고 정신이 없는 상황이다. 우선 초강대국 미국의 수장 트럼프와 유엔 총회에서 '셀럽'이 된 리용호가 심상치 않다. 눈치 보기 9단인 부자들이 정부의 초강력 부동산 대책에 눈 하나 깜짝 않는 것도 걱정된다. 운용 능력이 심히 의심스러운 국민연금은 말할 것도 없고, 청소년 범죄는 그 방향성과 강도 면에서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전통적 가족제도는 무너지고 시니컬한 청년들은 결혼마저 거부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을 수습하고 나라를 안정시키는데 전념해야 할 국회에서는 오히려 심재철 의원의 자료 유출을 빌미로 정작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채 당리당략적 정쟁만 일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권 분립이 엄격한 민주 국가 대한민국에서 행정부와 입법부가 전쟁을 벌이면 국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이번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 사건'의 쟁점은 ‘심 의원의 37개 기관에 대한 47만 건의 자료 확보 경위와 과정의 불법성, 국민의 알권리 충족 차원에서의 자료 공개 여부의 적절성, 정부 및 국가기관이 집행한 재정 사용 내역의 합리성' 등이다. 이를 둘러싸고 표면적으로는 기재부와 심 의원이 다투고 있는 모양새이지만, 그 이면에는 청와대와 자유한국당이 대립하고 있고, 그 본질은 국정감사와 예결산 심의를 앞둔 기선제압이다. 결국, 진정한 의미에서 국민을 위한 싸움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헌법상 국회의원은 “한 국가에서 유권자를 대표하여 국가의 입법부인 의회를 구성하는 의원”이며, 그들은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대표로서 국민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고 보호하기 위하여 국정을 운영·감독해야” 한다.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인 심 의원이 국정감사를 앞두고 자신의 소관 상임위에서 필요로 하는 자료를 확보하고 이를 분석해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은 당연히 그가 해야 할 일이다.  
 
다만, 심 의원 보좌진이 이달 초 기획재정부 산하 한국재정정보원의 재정분석시스템에 접속해 190회에 걸쳐 다운 받은 자료에 국세청과 청와대·국무총리실·법무부·헌법재판소·대법원 자료,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재정 기록' 등이 포함됐고 이것이 소관 상임위의 정보 접근 범위를 크게 넘어선 비인가 자료들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촉발됐다. “백스페이스를 두 번 누르니 모든 자료가 쏟아지더라”는 심 의원 측 해명과 달리 기재부에서는 ‘5단계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확보할 수 있는 자료들이었고 불법적 수단을 쓰지 않는 한, 심 의원 측 아이디로는 접근조차 불가능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결국 자료 유출 경위의 적절성은 검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심 의원이 주장하는 국민 알권리 차원에서의 자료 공개의 적절성과, 그가 공개한 자료들이 정말 현 정부의 문제적 예산 집행을 의미하는 것인지가 문제된다. 심 의원이 공개한 청와대 업무추진비 내역에 따르면 업무추진비를 사용할 수 없는 평일 심야, 법정 공휴일과 주말에 2억4천만 원가량이 사용됐고, 이 가운데 236건 3천132만원은 호프집·막걸리집·포차·일본식 선술집(이자카야)·와인바 등에서 사용됐다. 1인당 10만원 내외 고급음식점에서의 사용내역도 70건으로 1197만원어치가 사용됐다고 한다. 사용처가 불분명한 인터넷결제가 500만원가량(13건), 주말과 휴일에 백화점에서 사용한 금액이 1566만원(133건), 평일 7260만원(625건)도 보고됐다. 불법적 회의수당 지급 및 이·미용업소에서 상당 금액을 사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에서는 이미 외교·안보·비상근무 등을 근거로 심 의원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고, 심 의원의 의혹 제기는 상당 부분 사실무근으로 드러난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심 의원이 공개한 자료들이 ‘공개되면 안 되는,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기밀 자료’에 해당하는 것 같지는 않고, 정부의 예산 집행에도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아직까지는 심 의원의 '정보 공개'가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공개되어도 좋은 자료라 하더라도 유출 경위가 불투명하고 불법적이라면 형사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전례가 문제다. 고 노회찬 의원이 소위 “떡검들의 삼성 X 파일”로 불리는 자료를 공익적 차원에서 공개했을 때 지금의 야당과 우리 법원은 ‘실정법 위반이라며 대노했고 유죄를 선고’한 경험이 있다.
 
따라서 기재부가 심 의원을 고발하고 검찰이 심 의원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것에 대해 자유한국당까지 나서 ‘야권 탄압’이라며 노발대발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특히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도가 다시 올라가고 있는 시점에서 더 이상의 결정적 한 방이 나오지 않는다면 국정감사와 예산 심의를 앞두고 감행한 야당의 선전포고는 그 명분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노영희 법무법인 '천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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