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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수제맥주는 주류 이상의 문화콘텐츠…정부 지원 절실"
획일화 된 맥주 경쟁력 없어져…'다양성'과 '가치소비' 앞세운 수제맥주가 대안
주세법 개정으로 판로확대 등 성과…'수입맥주' 맞설 공정한 경쟁여건 시급
2018-04-02 06:00:00 2018-04-02 06:00:00
[뉴스토마토 이광표 기자] '수제맥주'가 지속 성장을 위한 중요한 변곡점에 섰다. 4월부터 시행되는 개정된 주세법에 따라 제조면허 요건이 완화됐고, 편의점 등 다양한 채널로 판로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대기업 중심의 맥주시장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가운데 수제맥주 시장은 매년 평균 30%씩 커지며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수제맥주 시장은 약 350억~400억원 규모로 국내 맥주 시장 규모를 4조2000억원가량으로 추산했을 때 1% 수준에 그친다.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5년 후면 전체 맥주 시장의 5%선인 1500억~2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본다. 수제맥주의 성장은 소비자들의 맥주에 대한 인식 변화가 주된 요인이다. 소규모 양조장에서 직접 만들어 신선하고 뛰어난 맛의 수제맥주가 등장하면서 수제맥주전문점을 찾는 이들도 증가했다. 하지만 풀지 못한 고민도 있다. '수입맥주'의 공세가 걸림돌이 되고 있어서다. '만원에 4캔'을 전면에 걸고 가격경쟁으로 밀어붙이는 수입맥주의 공세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게 업계 목소리다. 한국수제맥주협회의 임성빈 회장을 만나 수제맥주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임성빈 한국수제맥주협회 회장. 사진/한국수제맥주협회
  
 
한국수제맥주협회는 어떻게 결성하게 됐나
 
한국수제맥주협회의 전신인 (사)한국마이크로브루어리협회가 2002년 설립허가를 받아 2003년 소규모양조업체들이 모여 결성된 것이 시초다. 지금은 전국의 유명브루어리 32곳이 포함돼 있고 2017년 소비자들에게 좀 더 익숙한 '수제맥주'라는 용어를 협회이름에 담아 (사)한국수제맥주협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최근 신촌맥주축제, 협회맥주프로젝트 등을 진행하면서 소비자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수제맥주 문화 확산 사업과 주세법 개정을 위한 수제맥주 업계의 대변단체로 자리 잡는 중이다.
 
협회 회장직을 맡게 된 계기는
 
협회장 선거가 있었던 지난해 3월 정기총회 시 협회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주세법 개정이라는 수제맥주 시장의 변곡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이기도 했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회사 직원들의 반대도 있었고 협회의 재정적인 문제와 주세법 개정 등 산적한 문제들이 부담이 될수 있어 고민도 했다. 하지만 수제맥주업체들의 대변단체로서 협회 존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사업들을 통해 협회의 수익모델을 재정비하고 수제맥주시장의 중심축으로 키워나가겠다는 각오로 회장직을 수락하게 됐다. 협회장을 맡은 후 직원을 채용하고 2017년에 수제맥주 문화 확산과 협회의 자립을 위한 다양한 수익사업과 문화사업을 추진 중이다.
 
협회가 출범한 뒤 회원사들의 반응은 어떤가
 
이전 마이크로브루어리협회 시절에는 몰트 등 재료의 수입과 관련된 업무를 주로 했으나 현재는 수제맥주 시장 전반을 관할하는 다양한 활동들을 해서 회원사들의 만족도도 높고 지속적으로 신규회원사들이 늘고 있다. 회원사들은 협회가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수제맥주 문화 확산에 기여하고 지속적인 성장에 기여하는 점과 주세법 개정을 통한 수제맥주 업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부분에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협회장 외에도 바이젠하우스 대표를 맡고 있다. 수제맥주 사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예전에 독일에서 '바이스(Weiss)'라는 맥주를 마신 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던 차에 국내에서 브루펍 형태의 맥주 제조가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2003년 대전에서 수제맥주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맥주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몰라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다년간 축적한 경험과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한 노하우 축적으로 바이젠하우스는 현재 전국 300개의 펍과 취급점에 납품을 하는 국내 수제맥주시장을 리드하는 업체가 됐다.
 
대기업 중심의 일반 맥주시장은 내리막길인 반면 수제맥주시장은 쑥쑥 크고 있다. 배경이 무엇이라고 보나
 
가장 중요한 성장 배경은 '다양성'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에 획일화 돼 있는 라이트라거 위주의 국내맥주 시장에 수제맥주는 다양한 맛과 향으로 소비자들을 사로잡으며 확산되고 있다. '소확행'의 트렌드와 더불어 소비자들은 자신을 위한 가치있는 일에 소비를 하기 시작하며 '수제맥주'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 앞으로 소비자들은 좀 더 다양하고 개인화된 '나’ 중심의 소비'를 이어갈 것이고 수제맥주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질 것이라 판단한다.
 
주류시장은 정부의 규제에 민감하다. 수제맥주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 정책지원은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보나
 
정부의 규제는 최근 들어 협회와 정부기관의 협조로 많은 부분 개선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개선돼 갈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국내 주류시장에서 최근 중요한 이슈인 '수입맥주' 문제가 수제맥주 시장의 활성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는 걸 간과해선 안된다. 수입맥주는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맛으로 국내 수제맥주업체가 가지고 가야 할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며 급속도로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국내기업들의 역차별로 인한 수입맥주의 공세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맥주들마저도 점유율이 폭락하고 있지 않나. 발포주 형태의 맥주 아닌 맥주를 만들어 이 시장을 타개하려는 모습까지 있다. 정부 관계자들도 타주류의 가격 인상, 무역협정 등의 얽혀있는 많은 문제들로 이 문제를 풀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국내맥주가 역차별 받는 상황이 수년간 지속된다면 국내맥주산업의 기반이 무너지고 수입맥주로 채워지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시장 환경 조성을 위한 정부차원의 정책적 배려와 각종 지원이 절실하다.
 
최근 협회 차원에서 공식 출시한 수제맥주 '깻잎한잔'이 화제였다.
 
협회의 회원사들이 모여 새로운 맥주를 출시해 국내맥주의 다양성을 높이고 브루어들의 기술 공유 및 친목 도모를 위해 협회맥주 프로젝트를 1차로 진행하고 있고 '깻잎한잔'이 그 첫 결과물이다. 첫 번째 프로젝트를 맡은 '더핸드앤몰트'라는 업체가 제작한 '깻잎한잔 세종'은 '홉'을 대신해 국산 깻잎을 사용해 맥주를 만들었다. 기본 베이스인 '세종'이라는 맥주 종류가 국내에서는 좀 생소한 감이 있으나 바디감이 가볍고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세종을 베이스로 한 맥주에 알싸한 깻잎향이 더해져 풍미를 더한다. 이 맥주를 계기로 각 수제맥주 업체에서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고 국내의 수제맥주 시장도 보다 새로운 시도를 통해 성장했면 한다. 또 생각보다 소비자들의 반응이 뜨겁고 참여사들의 만족도가 높아 지속적으로 협회맥주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신세계 등 대기업의 수제맥주 시장 진출은 어떻게 바라보나
 
미국의 경우 AB인베브 같은 거대자본들이 막대한 자본력을 무기로 수제맥주 브루어리들을 사들이고 시장을 혼란시키며 미국양조협회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 대기업들의 수제맥주 시장 진입이 오히려 시장의 다양성과 활성화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 대기업들이 수제맥주 시장에 진출해도 생산시설, 출고량 제한과 국내시장의 성숙도가 낮아 시장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해외와 다르게 국내맥주시장에 진입한 대기업들은 수제맥주시장에 자연스럽게 융화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대기업들의 투자가 있어야 시장이 조금씩 확대되고 다양해질 것이다. 다만 대기업들이 막대한 자본력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국내맥주시장을 혼란시킨다면 미국의 사례처럼 협회에서 대응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수제맥주 창업을 희망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최근 들어 수제맥주를 창업하려는 사람들의 문의가 협회에 많이 온다. 상담을 해보면 수제맥주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 관심 수준의 창업희망자들이 많다. 수제맥주는 단순하게 재료를 넣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재료의 특성과 온도, 습도 등 주변 환경에 따라 맛과 향이 다양하게 변해 세밀하게 관리해야 한다. 기초적인 홈브루잉부터 시작해서 상업양조와 실습까지 배워야 할 부분이 많아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초기에 많은 비용과 인력이 드는 사업이라 기본적인 인프라 없이는 할 수 없는 사업이다. 무턱대고 창업을 하게 되면 그에 따른 많은 기회비용을 지출하게 된다. "계속 갈망하라 여전히 우직하게(Stay Hungry Stay Foolish)" 라는 스티브잡스의 연설처럼 꾸준히 준비하고 인프라를 만든 후에 창업을 시작해야 실패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협회장으로서, 수제맥주 시장 리더로서 향후 계획이 있다면
 
우선 협회장으로서 '깻잎한잔' 맥주와 같은 크래프트적인 프로젝트와 다양한 행사, 축제들을 통해 대중에게 가까이 가고 수제맥주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수제맥주를 만들기 위한 각종 인증 제도와 수제맥주 관련 인프라 조성을 위한 자격증, 교육 등의 사업을 준비할 예정이다. 수제맥주는 단순한 주류가 아니라 문화다. 수제맥주를 사랑해주는 많은 분들과 함께 수제맥주만의 문화를 만들어 갈 생각이다.
 
지난해 6월 열렸던 대전수제맥주페스티벌 전경. 사진/한국수제맥주협회

 
이광표 기자 pyoyo8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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