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전환 '열풍'…"고용안정에 처우개선까지는 무리"
전문가들 한목소리 "고용안정 대원칙 하에 노동계도 양보해야"
2017-05-30 18:29:41 2017-05-30 18:29:41
[뉴스토마토 구태우 기자]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공공·민간부문 가릴 것 없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도미노처럼 확산되면서 암울했던 노동계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인천공항공사를 시작으로 산업통상자원부는 산하기관 비정규직 3만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롯데 등 민간기업의 동참도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 정부의 핵심 정책 기조를 '일자리'로 못 박으면서 정규직 전환은 허니문의 요건이 됐다.
 
수년 동안 답보상태에 놓였던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던 민주노총마저 "(새 정부의) 노동 존중 행보는 노동자의 박수를 받을만 하다"고 호평,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를 거치면서 냉각됐던 노정 관계는 모처럼 해빙 모드로 접어들었다.
 
관건은 두 가지로 모아진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직접고용을 통한 정규직 전환에 따른 부작용과 노사갈등을 최소화하고, 정규직 전환 사례가 늘어나는 현 기조를 새 정부 임기 끝까지 이어갈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정규직 전환 흐름에 반발하는 등 경제계와의 대립이 격화될 경우 비정규직 전환 동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규직 전환이라는 대원칙과 함께 노사 모두의 양보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쉽지 않은 행보인 만큼 이상 조짐도 있다. 30일 민주노총 등에 따르면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일부 사업장에서 벌써부터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 노조는 고용안정과 처우개선 모두 요구하고 있는 반면 사용자는 고용안정만 고려해 양측의 논리가 팽팽하게 맞선다.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조는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조합원들 간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이들을 고용하는 협력업체는 2년 단위로 원청과 위탁계약을 갱신하는데 하청의 영업·기술점수가 낮을 경우 계약이 해지된다. 때문에 1~2년마다 고용불안에 시달렸다. SK브로드밴드는 협력업체와의 업무 위탁 계약이 만료되는 대로 이들을 자회사인 '홈앤서비스'에 직접고용할 계획이다. 조합원들은 이른바 'SK맨'이 되는 만큼 처우개선도 이뤄지지 않겠냐는 기대가 크다. 현재 직원들의 임금체계는 성과급제로, 기본급 130만원에 업무를 포인트로 책정해 성과급을 더한다. 노조 집행부는 고민이다. 처우개선 없이 고용만 안정되는 이른바 '중규직'이 될 경우 노조는 투쟁을 통해 처우개선을 이끌어 낼 수밖에 없게 된다. 처우개선이 기대만큼 이뤄지지 않을 경우 조합원들의 반발에 부딪힐 수도 있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지금보다 복지는 단연 좋아지겠지만 임금이 어느 정도 오를지는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노동계의 불안감을 키우는 사례도 있다. 2013년 노조 사찰과 불법파견으로 논란이 된 이마트는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1만여명의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했다. 전국 146개 점포에서 상품진열 업무를 하던 협력업체 직원들은 이마트 소속이 됐다. 지난해 7월 이마트 수원점 의류코너 등에서 일하던 직원 20여명은 무기계약직 전환을 하루 앞두고 계약해지됐다. 점포 경영사정이 나빠졌다는 이유에서다.
 
모범 사례도 있다. 최근 서울대는 비학생조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비학생조교는 교무·학사업무 등 행정업무를 하는 직원인데, 조교 신분이었던 점을 이용해 학교는 2년 이상 고용해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지 않았다. 비학생조교의 계약기간은 5년이다. 서울대는 노조와 협의 끝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지만 임금은 오히려 낮아졌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 이후 비학생조교의 임금은 최대 40%가량 낮아질 예정이다. 임금 삭감에도 고용안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가능한 결정이었다.
 
이전 정부가 비정규직 차별 해소에 중점을 둔 것과 달리 새 정부는 비정규직 규모 축소에 방점을 찍었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비정규직을 과다 사용하는 대기업에는 부담금을 물리겠다고 공약했다. 644만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규모(지난해 8월 통계청 기준)를 축소하지 않고서는 비정규직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정부 출범 초기인 데다, 경제민주화 기조가 확고한 만큼 재계의 눈치도 치열해졌다. 기업들의 자발적 움직임과 달리 경총은 지난 25일 공공·민간부문의 정규직 전환과 직접고용 움직임에 대해 비판하면서 정부의 의지를 살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경총의 작심발언이 재계의 속내"라고 말했다. 국정운영 지지도가 낮아지고 야당이 제 자리를 찾으면 재계의 반발도 본격화될 공산이 크다. 민주노총은 노정 교섭을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해 노동현안을 논의하자고 제안, 정부 초기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심산이다.
 
정규직 전환으로 인한 인건비 상승이 불가피한 만큼 노동계도 한 발 물러서는 타협의 정신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한국노동환경연구소에 따르면 2012년 서울시의 청소 분야 외주화 비용(658억원)과 직접고용시 인건비를 비교한 결과, 직접고용(765억원)의 인건비가 16.3%가량 더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청소용역을 직접고용했을 때도 3%(14억원)가량 비용부담이 늘었다.
 
때문에 고용안정과 처우개선 '두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기 위해 또 다시 지루한 힘겨루기를 하기보다 향후 임단협 교섭을 통해 단계적으로 임금상승을 유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정규직 전환 형태도 정규직·중규직·무기계약직 등 다양해 노조가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어떻게 할 건지 대원칙을 잡고 가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비정규직의 최대 문제는 고용불안이었는데 자회사 또는 무기계약직을 통해 고용불안은 일정 부분 해소됐다"며 "노동계도 현실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는 "이전 정부에서도 초창기 기업이 정규직 전환하는 척하다가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아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노사정이 협력해야 한다"며 "노조의 양보도 필요하고, 기업들은 고용을 안정시키는 대신 근로시간, 임금체계 변화를 통해 다른 방식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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