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건기자]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 '재심'(감독 김태윤)의 언론·배급 시사회를 지난 2일 서울 왕십리CGV에서 열렸다. '재심'은 지난 2000년 발생한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피살사건'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한 작품이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은 2000년 8월 전라북도 익산시 약촌 오거리에서 택시기사 유모 씨가 범인에게 흉기로 12군데를 찔려 과다출혈로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목격자였던 청소년 최모 군을 용의자로 특정했다. 최 군은 1심에서 징역 15년, 2심에서 징역 10년형을 받아 지난 2010년 출소했다.
최 씨는 출소 3년 후인 2013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대법원은 2016년11월17일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발생 3년만인 2003년, 진범으로 추정되는 김모 씨와 임모 씨가 체포되면서 상황이 바뀌는 것처럼 보였지만 검찰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후 김 씨와 임 씨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심신미약'을 주장했으며, 임 씨는 2011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영화 '재심'은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취재한 SBS 이대욱 기자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SBS 탐사보도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 898회(2013년6월15일 방영)와 994회(2015년7월18일 방영)를 통해 두 차례 다뤄진 이 사건은 '증거 없는 자백'만으로 목격자를 살인자로 둔갑시켰던 경찰과 검찰, 법원이 3년 후 체포된 용의자에게는 '증거 없는 자백'이라는 이유를 들어 사회에 풀어주었던 믿기 힘든 사건의 전말을 다루었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세가지 요소를 기자의 시각으로 풀어봤다.
돈(錢, Money)
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힘이자, 권력이며, 상징이다.
영화에서 준영은 로펌 대표인 구필호(이경영)에게 현우(강하늘)를 변호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구필호는 준영에게 "현우가 정말로 살인범이라면 어떡할거냐"고 묻자 준영은 한바탕 웃더니 이내 대표에게 말한다. "대표님. 언제부터 의뢰인이 범죄자인지 아닌지 따지셨습니까"
준영을 포함한 영화 속 변호사들은 돈에 의해 움직인다. 상대가 선하냐, 악하냐의 기준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돈이 되면 사건을 수임하고, 돈이 되지 않으면 사건을 수임하지 않는다. 겉보기에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행동이지만, 그 이면에는 돈이 결부되어 있음을 영화는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실제로 몇몇 사건에서 사회적 지탄을 받는 재력가가 수천억원을 횡령하고도 재판에서는 무죄 또는 가벼운 형량의 판결을 받거나,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서민이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범죄를 저지른 액수에 관계없이 처벌을 받아야 함은 마땅하지만 그 사람이 가진 재력으로 벌의 무게가 달라진다면, 그것이 공평한 법집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영화가 현실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겁고, 발가벗겨진 것처럼 불편하다.
법(法, Law)
극 중 현우는 순백의 청년이다. 그는 법에 대해 알지는 못하지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은 안다. 자신의 기분 내키는대로 행동하는 모습은 마치 어린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반면 백철기(한재영) 형사는 법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는 폭력과 끼워맞추기 수사로 죄가 없는 사람을 피의자로 만드는 데 능숙하며, 모든 행동은 '법'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고 있다.
여러분이 영화를 보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 중 한 가지는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이 1980년대가 아닌 2000년대 초반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과거 군사정권 당시와 문민정부가 들어선 지금도 법의 사각지대는 존재하고 있다. 일부 '법조인'과 그들에게 법률 서비스를 받는 '재력가'들은 그 사이로 유유히 빠져나가지만, 현우와 같은 서민들은 그 틈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법을 아는 누군가는 법 위에 군림하고, 법을 모르는 누군가는 법이라는 이름 아래 핍박받는다. 인간의 만든 법의 테두리에서 과연 모든 인간은 평등할 수 있는가. 영화는 아주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질문을 던지고있다.
사람(人, Human)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가볍게 들리지만은 않는 요즘, 영화는 인물의 변화를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출세를 위해 법을 공부한 변호사는 훗날 재심 전문 변호사가 되었으며, 억울한 일로 세상에 등을 돌렸던 10대 소년은 이제 두 아이의 평범한 아버지가 됐다.
영화 속 준영과 현우, 둘 중 한 사람이 먼저 손 내밀지 않았다면 또는 누군가가 포기해버렸다면 이 둘의 운명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 등장인물 중 누군가는 변하고, 누군가는 변하지 않는다. 이들의 심경 변화를 살펴보며, 운명을 바꿔나가는 모습을 관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김태윤 감독은 "'재심'을 통해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영화는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으로 치유해가는 캐릭터들의 모습을 그리며, 관객에게 공감과 감동의 순간을 안겨준다.
김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기 전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 번째는 실제 인물과의 인간적 유대를 중요시 할 것. 두 번째는 최대한 디테일하게 캐릭터와 사건의 경위를 파악할 것. 마지막 세 번째는 영화의 결과물이 실제 인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재심'은 실화를 모티브로 했지만, 극적 재미를 위해 각색된 부분이 존재한다. 때문에 영화 내용 모두를 '사실'이라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게다가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은 현재까지도 재판이 진행중이기 때문에 여론의 지나친 관심이 판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감독의 바램처럼 실제 사건의 내용보다는 영화 자체가 주는 메시지에 집중해주기 바란다.
신건 기자 helloge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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