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한국은 완전히 구제불능의 가망이 없는 사회다. 이 가망 없는 사회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것이 바로 리셋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쌓은 업적은 모두 실패했고 모두가 폭삭 망했기 때문에 ‘공평하게’ 가난했던 백지 상태의 원점으로 돌아가자는 게 바로 리셋이다.”(21쪽)
문화학자 엄기호가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에서 진단하는 현재의 한국 사회는 어두움의 세기가 절정에 달한 상태다. 국민들은 희망을 완전히 상실했고 이 사회에서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고 여기게 됐다. 그 속에서 그들의 분노와 혐오는 비등점을 넘어서고 있다. 청장년층부터 노년층까지 이제는 이렇게 외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싸그리 망해버려라”
“싸그리 망해버려라”는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연구하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그의 관찰에 따르면 이 말을 하는 주체는 남녀도 노소도 지역의 차이도 없다. 특권층은 아랑곳 않고 ‘해쳐먹고’ 있고 대중들은 ‘노오력(스스로 한계를 초과하는 노력)’하면 할수록 삶이 더 비참해지고 파괴될 거라 생각할 뿐이다.
이에 차라리 리셋 버튼을 눌러 싹 다 망하는 상태로 세계를 날려버리고 싶어한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가장 ‘공평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이는 바뀌지 않는 현실 세계에서 분노에 넘쳐 이르게 되는 ‘허무주의적 종말론’에 가깝다.
“무기력이 깊어질수록 세상을 리셋하는 것이 차라리 유일한 길처럼 보인다. 그것이 현실적이어서가 아니라 유일하게 상상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마치 왕따를 당하는 학생들이 그 현실에 굴욕감과 모욕감을 느끼면서 머릿속으로는 그 현실을 날려버리는 상상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처럼 말이다.”(20쪽)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까지 왔나. 저자는 박근혜 정권 이후 한국이 근대사회의 가장 중요한 요건을 상실해 버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바로 국민들의 ‘안전’에 관한 것이다.
중세까지는 사람들의 생명이 우연에 가까웠다. 외적의 침입이나 자연 재해, 시장의 변덕 세 조건으로부터 국가가 ‘안전’을 담보해줄 수 없었다. 개인의 운명은 오로지 신과 같은 절대자에게 달려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근대사회부터 국민들의 삶은 필연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국가는 스스로 예방할 수 있는 것과 예방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기 시작했고 위험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위험에 즉각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갔다.
대신 ‘안전’을 지켜주는 대가로 국가는 개인을 자본주의 사회에 충실한 노동자로 엮는다. 미셀 푸코의 생명권력론에 따르면 바로 이 지점에서 근대 사회의 국가는 지배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이후의 한국은 이 같은 기능이 완벽히 무너졌다. 세월호 참사는 ‘아이들은 우선 보호해야 한다’는 근대 사회의 최소 합의점도 지키지 못한 사건이었다. 메르스 사태, 강남역 살인사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보호라는 명분 아래 개인의 자유와 주체성을 제한했던 국가는 최소한의 역할을 방기함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정당성을 잃게 됐다.
하지만 저자는 그럼에도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잘’ 굴러갔다고 한다. 세월호 사건 이후 “국가가 사라졌다”, “이게 나라냐”는 말들이 넘쳤지만 국가는 유언비어 통제, 추모행진 도중 민주노총 간부 구속, 추모 현수막 강제 철거를 일삼았다. 국민 보호란 제 구실도 못하면서 통제를 넘어 인간을 억압하고 존엄을 짓밟으려 했다.
더군다나 지배 엘리트들은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회피하려 했다. 능력주의와 성과주의라는 미명 아래 개인의 책임론을 운운하며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개인은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원한과 복수의 정념을 갖고 이 상황의 순수 파괴에 몰두하게 된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상상 속에서라도 ‘리셋’을 꿈꾸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이미 외국에서는 이슬람국가(IS)의 태동이나 트럼프 현상 등 강렬한 리셋 욕구가 정치 전면으로 옮겨 붙은 사례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책 말미에 우리 사회가 이 같은 리셋 요구를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해답은 1987년 이후 멈춰버린 민주주의를 다시 시작하는 데 있다. 투표소 밖의 공간에서 모든 시민이 서로를 평등한 ‘동료 시민’으로 대할 때 그는 비로소 혐오와 분노를 넘어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최근 열린 촛불집회에서 구체적 가능성을 본다. 그곳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동등한 힘과 목소리로 나라의 변화에 힘을 보탠 ‘동료 시민’이었다는 점에서다. 그 자리에 선 이들은 청소년이든, 장애인이든, 성소수자든 상관이 없었다. 모두가 서로의 말을 경청했고 박수를 쳤다. 저자는 이러한 협력과 존엄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 모습을 발견했다”며 “이날(11월12일)을 기억하는 것이 리셋을 넘어 사회를 꿈꾸는 기초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책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사진/창작과비평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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