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누가 대중의 ‘진짜 분노’에 반응할 것인가
2016-10-20 14:41:39 2016-10-20 20:39:32
 
선거분석가인 네이트 실버는 이 글을 쓰는 동안 자신의 블로그에 힐러리가 승리할 확률이 87.3%라고 예측했다. 힐러리가 미국 대선의 대의원 수인 538명의 과반수를 훨씬 넘는 344석을 얻어 무난히 당선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힐러리의 당선확률은 점점 올라간다. 하지만 4년 전이라면 이 예측에 강한 신뢰를 보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데이터와 상관없이 여전히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을 완전히 내려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론조사로는 잡아낼 수 없는 대중들의 도저한 흐름은 또 무엇일까?
 
미국 대선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여전히 강력한 트럼프 현상에 당황한 많은 지식인들이 ‘포퓰리즘’의 원인을 분석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많은 논란이 있지만 브렉시트, 이탈리아 오성당, 트럼프 현상, 남미의 정당, 필리핀 두테르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포퓰리즘의 득세는 불평등과 실업, 4차산업혁명 등으로 인해 생긴 위기감과 불안에서 비롯된 현상이라는데 대체적으로 동의한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대전환기의 구조적인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월2일엔 미국에서 ‘미국, 유럽, 남미에서의 포퓰리스트 정치’를 주제로 RATM(Rage Against The Machine)이라는 제목의 원탁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발표된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보고서는 “포퓰리즘 정당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서구사회의 정치를 붕괴시키고 있다”며 가장 큰 원인으로 경제적 불안정을 꼽고 있다. 여기에 문화적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기존 다수 국민의 반발이 맞물려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포퓰리즘 현상이 때로는 진보, 때로는 복고의 옷을 입고 나타나는 이유다.
 
<포린 폴리시>의 최근호 특집도 ‘포퓰리즘의 힘’이다. 조지타운대학의 마이클 카진 교수는 이 특집 안에 실린 ‘트럼프와 미국 포퓰리즘’이라는 글에서 “정치인이 가난한 사람들의 고충을 설명하고 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반드시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살아야 하거나 그런 사람들의 소득을 늘려주겠다고 주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기든 지든, 트럼프는 수백만의 백인 노동자, 그리고 중산층 미국인들의 고통과 억울함의 정맥에 다가갔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백인 노동자와 몰락해 가는 중산층들이 기득권체제의 상징인 힐러리의 국정운영능력보다 대중의 분노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 있는 아웃사이더 트럼프를 지지하게 됐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로저 코언도 트럼프 현상의 이유에 대해 “백악관을 8년간 차지했던 클린턴 부부가 지난 25년간 부유층과 결탁하면서 기득권 정치세력의 정점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제왕적 특권에 치를 떠는 미국인들 눈에는 클린턴이 부패 정치인의 전형으로 보이기 때문이다”라고 일갈했다.
 
대중의 불안과 분노가 미국이나 유럽, 남미만의 일일까? 최근 한국 국민들의 불안과 분노도 점점 증폭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최순실’로 상징되는 권력의 사유화가 도를 넘었고, 제도의 공정성을 바라던 국민들의 기대는 산산조각난 상태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후퇴하고 끔찍한 제왕적 통치와 줄서기가 만연하고 있다. 예전엔 잘못을 하면 수오지심이라도 있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뻔뻔함을 자랑으로 여긴다. 여기저기서 ‘해도 너무 한다’는 말이 들려온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철지난 안보논쟁으로 국민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등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한 국민들의 삶은 안중에도 없이 칠흑같은 폐허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한 대선후보의 입에서 “지금 국민들은 솔직히 어떤 놈이 대통령 되든 무슨 상관이냐고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난쟁이들의 격투장으로 전락한 한국정치를 보면서 우리 국민들도 어쩌면 강력한 포퓰리스트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이 지긋지긋한 싸움판의 물꼬를 틀어야 한다. 그것은 재벌대기업이 독점한 경제구조를 공정하게 바꾸고, 사유화된 권력시스템을 공적으로 되돌려놓는 방향이어야 한다. 진보, 보수를 넘어 더 이상의 추진력을 잃어버린 이 낡아빠진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말할 수 있을까? 구차한 현실론을 들어 가장 긴급한 혁명적 변화를 외면한다면 정치판 자체가 혁명적 변화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마이클 카진 교수는 “포퓰리스트의 부상은 무작위적이지 않다. 이들은 진짜 분노에 대한 반응으로서 출현한다”고 주장한다. 2017년 한국 대선의 향방 역시 지금의 여론조사가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단 하나, 누가 대중의 ‘진짜 분노’에 반응할 것인가가 결정적인 변수다. 부자들을 위한 경제시스템, 소수 특권층을 위한 권력시스템을 송두리째 바꿔낼 진정한 아웃사이더가 새로운 영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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