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다시 시가 읽히는 세상을 꿈꾸며
2016-07-29 06:00:00 2016-07-29 06:00:00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불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 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후략)
-도종환 접시꽃 당신일부, 접시꽃 당신(1986) 수록.
 
이 시를 읽었을 때를 되돌아본다. 그 때는 뜨거웠다. 1980년대 대한민국의 독자들은 뜨거웠다. 시를 읽었기에 뜨거웠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시집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것은 1980년대였다. 아니 그것은 우리 역사상 처음 있는 사건이었는지도 모른다. 도종환 시인의 시집 접시꽃 당신을 비롯하여, 서정윤 시인의 홀로서기, 이해인 시인의 오늘도 낮달로 떠서, 그리고 대학가 화장실과 문학회 서클룸의 낙서장, 찻집 등에 학생들이 적어놓은 낙서들을 모아 엮은 책 슬픈 우리 젊은 날은 모두가 1980년대에 출간되어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시집들이었다.
 
그리고 그 열기는 식지 않아, 1990년대에도 밀리언셀러의 바람은 그치지 않았다. 사랑을 노래하는 시인 이정하의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가 바로 그것이었다. 애달픈 사랑의 시가 독자들의 가슴을 달구며, 시집이라도 얼마든지 밀리언셀러를 이룰 수 있다는 힘을 보여주었다. 또한 밀리언셀러는 아니었지만,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당당히 베스트셀러로 읽힌 것도 이 무렵이었고, 우리에게 친숙한 시인 안도현이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일갈한 너에게 묻는다라는 작품이 나온 것도 1994년의 일이었다.
 
다시 이 시절처럼 시가 읽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그나마 최근에 윤동주 시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읽히고, 그를 기리는 영화 동주가 제작되어 독자들의 그리움을 메워주고 있다. 또한 백석 시인의 초판본 시집 사슴의 재출간과 소월의 진달래꽃초판의 경매 최고가 기록 등은 우리들의 가슴에 시의 불씨가 살아 있다는 더없이 좋은 소식들이다. 더불어 맨 부커상 수상에 힘입어 소설가인 한강 씨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와 최승자 시인의 빈 배처럼 텅 비어의 선전도 다시 시가 읽힐 수 있고, 다시 시집의 인기가 복원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조짐들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 시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커다란 이유 중의 하나는 불경기 탓이리라. 소주가 많이 팔리고 있다는 통계는 그러한 세태를 대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시집은 잘 사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에 커피 판매점은 호황을 이루고 있다는 기사가 우리들 가슴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커피 두, 세 잔이면 시집 한 권 사볼 수 있는데, 라는 아쉬움이 커지지만, 동시에, 커피 마시면서 시를 음미하면 어떨까, 하는 낭만도 그 어느 때보다 짙어지고 있다.
 
경제가 어렵고 마음이 궁할수록 시를 읽어야 한다. 1980년대는 정치적으로 어려운 사건들이 많았다. 시가 우리를 달래주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읽고 싶고, 우리의 삶을 읽고 싶을 때, 시만큼 우리를 편안하게 위로해 준 것이 있었는가. 세상살이가 힘들고 삶에 지쳐갈 때, 시를 쓰고 시를 읽었다. 그것이 시가 존재하는 중요한 이유다. 문학의 본령은 시다. 우리 민족이 문화의 민족이라는 전제에는 시가 튼튼하게 자리 잡고 있다. 시가 죽어가는 세상은 상상하기조차도 하기 싫다. 향기를 잃어가는 삶에 꽃을 피워야 한다면 시를 읽어야 한다.
 
시가 읽히는 사회는 건강한 유전자를 가진 집단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1928-2016), “미래는 예측 아닌 상상하는 것.”이라 했다. 시 역시 상상의 창고이고, 상상의 창조물이 아닌가. 시집이 밀리언셀러의 귀환을 이끌고 있다는 뉴스를 꿈꾸어 본다. 최근 유희경 시인이 문을 연 시집 전문 서점 위트 앤 시니컬에도 사시사철 꽃이 피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한다.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일본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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