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표현(Hate Speech)은 인종, 종교, 젠더, 연령, 장애, 성적 지향 등을 근거로 하여,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선동적, 모욕적, 조롱하는, 위협하는 표현이다. 2013년,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 베스트’의 등장으로 혐오 표현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었다. ‘일베’ 에서는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가 주류를 이루고, 이를 유머의 소재로 삼아 조롱하고 비꼰다. 대표적인 예로 ‘김치녀’ 라는 표현은 주로 일베 유저들이 한국 여성들을 통틀어 비하할 때 사용되는 용어인데, 여기서 여성은 허영심이 많고 물질적으로 남성을 이용하려 하면서 매사에 피해의식을 갖는 위선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이러한 혐오표현은 ‘일베’를 넘어서 인터넷 사이트에 만연해 있다. 포털 사이트 댓글 창이나 SNS에서는 여성과 장애인,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과, 특정 지역, 민주화운동에 대해 비하하고, 조롱하는 표현들이 난무한다. 혐오표현은 단순한 의견을 넘어서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위협으로 작용하며, 그들을 고립시키고 사회에서 배제시킨다.
출처 : JTBC
혐오는 단순히 표현에서 그치지 않고 집단적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재작년 9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유가족들의 단식 농성 현장인 광화문에서, 일베 회원들은 피자, 치킨과 같은 음식물을 먹으며 소위 ‘폭식 투쟁’을 벌였다. 소수자 집단에 대한 혐오가 집단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면 그것은 나아가 증오 범죄(Hate Crime)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증오범죄는 혐오가 표현을 넘어서 사회적 소수자 집단에 대해 범죄 행위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지난 18일 강남역 부근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18일 새벽 1시 남성인 김모씨(34)가 강남역 부근 주점 화장실에 들어가는 여성 A씨(23)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강남역 묻지마 범죄’로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김모씨는 경찰 조사에서 “화장실에 미리 숨어 있다가 들어오는 피해자를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증언했으며,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그랬다. (피해자와) 알지 못하는 사이”라고 진술했다.
출처 ; YTN
이 사건을 두고 서울 서초경찰서는 19일 “여성 혐오 살인으로 보기 어렵다” 며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피의자가 심각한 수준의 조현증을 앓고 있기 때문에, 범행의 동기가 여성 혐오 살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SNS 여론에서는 ‘이 사건은 여성혐오범죄가 아니며, 성별 간 대립구도를 만들어 내지 마라’는 주장이 나왔다. 일부 언론에서도 ‘여성들 때문에 꿈이 좌절된 신학도’ 라는 식의 제목을 썼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젠더 상황을 배제한 채,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묻지마 범죄’로 보아야 하는가? 경찰이 발표한 CCTV 결과에 따르면, 피의자는 오후 11시 42분쯤 사고현장에 나타나 화장실 앞을 50여 분간 서성였다. 12시 33분 김씨가 화장실에 들어가고 여섯 명의 남성이 화장실을 이용했으나, 이후 1시 7분에 화장실에 들어간 ‘최초의 여성’이 피해를 입었다. 만약 이 사건에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묻지마 범죄라면, 왜 화장실을 이용한 여섯 명의 남성은 살아남았나. 여성에 의해 무시 받았다고 주장하며 사회적 소수자 집단인 여성 중 불특정 한 명을 죽인 것이 과연 묻지마 범죄인가?
출처 : 이송희일 감독 페이스북
이 사안에 대해 영화감독 이송희일은 페이스북에 글을 게재했다. 그는 “여자라서 살해된 것이 아니다. 우발적인 게 아니라, 만만해서 살해된 것” 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페미사이드(femicide 여성살해)이며, 명백한 젠더 살인” 이라고 말한다. 그는 “범죄자를 ‘사이코패스’화 하고 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건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극명한 정치적 모순을 가리기 위해 선택하는 뻔뻔한 위장술이다.”고 주장했다.
법학자 홍성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사건을 ‘여성혐오범죄’라고 보는데 별 무리가 없다”고 게재했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여성혐오가 만연해 있고, 사회적 ‘힘’을 가지고 있으며, 여성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강남역 사건은 그 결과이거나, 문제를 더욱 증폭시킨 것일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범죄자가 “여자들에게 항상 무시당했다”고 언급했고, 그 언급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으며, 이는 전형적인 혐오범죄의 양태인 대상 집단의 공포와 분노라는 것이다.
사진 : 바람아시아
20일 저녁 다섯 시, 강남역 10번 출구를 찾았다. 희생자를 추모하는 내용의 포스트잇들이 지하철 역 출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운 좋게 살아남았다.’, ‘여자이기에 다음 타겟은 나와 내 친구다.’라고 적힌 문구들이 눈에 밟혔다. 사람들은 국화꽃을 두거나 포스트잇에 추모의 메시지를 적는 방식으로 희생자를 애도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추모 현장에서 눈에 띤 것은 분홍 코끼리 탈을 쓴 사람이었다. 그는 추모 현장을 맴돌며 다음과 같이 쓴 피켓을 들고 있었다. “육식 동물이 나쁜 것이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는 동물이 나쁜 겁니다. 편견 없는 주토피아 대한민국.” 이러한 피켓의 내용은 ‘모든 남성이 여성혐오를 하는 것이 아니고 혐오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닌데, 왜 남성을 공격하냐’는 식의 주장을 빗댄 표현이다.
출처 : 채널A
이 분홍 코끼리는 일베 유저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일간 베스트 게시판에 “코끼리 인형탈 입고 강남역 가서 피켓들 예정” 이라는 게시글을 올렸고, “모든 남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행동이다. 모든 남자가 나쁜 게 아닌데 슬프다.”는 글을 올렸다. “응원한다” 는 식의 댓글, 여성들에 대한 혐오적 표현인 ‘김치녀’를 언급하는 댓글이 주를 이뤘다. 추모현장에서 피켓을 들고 한참을 돌아다니던 코끼리는 곧 시민들에 의해 쫓겨났다.
추모 포스트잇들 가운데 혐오표현을 담은 포스트잇도 트위터 상에서 논란이 일었다. 트위터 사용자 공겁스님(@karakou212)은 자신이 붙인 포스트잇 사진을 게재했는데, “이런 걸 계기로 여혐을 일반화 하지 마라 메퇘지들아”라는 내용이었다. ‘메퇘지’ 라는 표현은 여성혐오에 반대하는 인터넷 사이트 ‘메갈리아’ 유저들을 희화화하는 말이다.
이외에도 ‘일베’ 사이트에서는 집단행동에 나서자는 게시글들이 지속적으로 올라왔다. 닉네임 ‘하이젠버그’ 이용자는 “일당 준다. 강남역 10번 출구 같이 갈 덩치 좋은 일게이들 구함” 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으며, “너무 화가 나서 그런다. 무리 모아서 가는데도 XXX(여성을 비하하는 표현)들이 깝치는지 한번 보자.”는 내용이었다.
사진 : 바람아시아
여성혐오범죄가 일어났지만, 혐오는 계속되고 있다. ‘일베’ 이용자들은 여전히 혐오가 담긴 표현들을 쓰며, 집단행동을 하자고 말한다. 몇몇 대중들에게는 이미 ‘혐오범죄’가 아닌 ‘묻지마’ 범죄이다. ‘여성이 밤늦게 돌아다녔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주장하며, 우리 모두 이른 시각에 귀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이 언제부터 낮에 안전했는가? 여성들은 대중교통을 탈 때도, 한낮에 거리를 지나다닐 때도 언제 일어날지 모를 몰카, 성추행, 성폭행의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 이것은 밤낮을 불문하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현존하고 명백한 공포이다.
어떤 이들은 ‘여성혐오를 인정한다. 그렇다고 남성혐오는 하지 말아달라’ 고 이야기한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남성혐오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는가? 여성학자 정희진은 “남성혐오는 가능하지 않다”주장한다. “한국 사회의 여성에 대한 혐오는 사회적 약자 전반에 대한 멸시와 비하이고, 남성에 대한 혐오는 이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의 표현” 이라고 이야기하며, 이를 대칭적으로, 동일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진중권은 19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인지 따지는 것이 쓸데없는 논쟁” 이라고 밝혔다. 경찰이 어떻게 사건을 분류하든 “여성혐오가 그 행위의 배경을 이루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이라고 이야기했다. 몇 천년 동안 지속된 여성 차별과 종속의 역사는 여성을 제2의 성으로 분류했으며, 여성은 ‘사람’ 이기 이전에 ‘여성’으로 규정되었다.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여성차별은, 그대로 우리 생활세계에 반영되어, 우리는 차별과 폭력이 당연한 곳에서 숨 쉬며 살아가고 있다.
물고기는 자신이 젖어있는지 모른다. 여성혐오 현상에 대한 문제제기가 '예민'하고 '민감'하게 여겨지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가 너무도 당연하게 소수자를 '혐오'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사회적 소수자들을 향한 혐오표현과, 그 혐오표현이 범죄의 양상으로 나타나는 증오 범죄를 바라볼 수 없다. 우리는 앞으로 소수자들을 향한 일상적인 폭력, 숨 쉬듯 당연한 차별에 대해 더 예민해지고, 더 민감해져야 할 것이다.
사진 : 바람아시아
이우진 바람저널리스트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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