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대한민국 만큼이나 역사적 수난이 많았던 나라가 프랑스다. 영국과의 100년 전쟁으로 국토가 유린되기도 했고, 2차 대전 중에는 독일 나치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프랑스는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전 분야에서 강대국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많은 역사적 혼란과 사회적 혼돈의 시기가 있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이민자에 대한 유연한 정책을 갖추고 있을 정도로 지금은 경쟁력 있는 국가로 성장했다. 이런 프랑스에서 국민통합의 상징이 되는 것은 국기와 국가다. 국기는 파란색, 하얀색, 빨간색 세 가지 색깔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 자유, 평등, 형제애를 상징한다. 국기를 놓고 보더라도 자유와 평등의 기초적 인권을 목적으로 하지만 ‘피’를 의미하는 빨강은 가장 중요한 형제애를 가리킨다. 무엇보다 ‘하나의 프랑스’ 즉 통합된 프랑스를 꿈꾸고 있다.
프랑스 축구팀의 경기가 있을 때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국가는 ‘라 마르세예즈’이다. 대단한 작곡가나 작사가에 의해 탄생된 곡이 아니다. 프랑스의 역사만큼이나 극적이고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프랑스의 혁명정부가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를 했을 때 주둔하고 있던 공병대 대위 클로드 조제프 루제 드 릴에 의해 만들어졌다. 출정부대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만들었고, 하룻밤 만에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정규군 대위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궁을 습격하기 위해 파리에 입성했던 마르세유 의용군이 부르면서 ‘라 마르세예즈’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 노래의 운명은 기구했는데, 나폴레옹과 부르봉 왕조에서는 부르지 못하게 하였다. 가장 큰 이유는 ‘폭군을 무너뜨리는'이라는 가사 때문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가사의 내용에 적의가 가득 차 있어 가사를 바꾸어야 한다거나 다른 노래로 국가를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1879년 이후 프랑스의 얼굴이 되고 있다.
'놀라운 자비'라는 의미의 찬송가인 ‘어메이징 그레이스’ 또한 파란만장한 역사를 품고 있다. 얼마 전 총기 사고가 발생한 미국의 한 교회 추모식에 참석한 오바마 대통령이 이 노래를 불러 전 세계적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역사적 근원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이 곡이 흑인 노예 무역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백인들에게는 매우 예민하게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격동의 시기였던 1960년 미국에서 이 노래는 흑인시민권 운동과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운동 현장에 어김없이 등장했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으로 떠들썩하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은 점차 커져가고 주력 업종이던 조선과 해운에서 균열이 생기고 있는 와중에도 정치권의 이념적 공방은 끝 간 데를 모르고 있다. 논란의 내용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하느냐 제창하느냐에 대한 대결로 번져 있다. 국민 여론은 대체로 제창 쪽에 호의적이다. 리얼미터가 CBS의 의뢰를 받아 지난 10일 실시한 조사(전국 551명. 유무선 RDD 자동응답 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4.2%P. 응답률 5.7%. 전체 질문내용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에 대한 의견을 물어본 결과 찬성이 절반이 넘는 55.2%였고, 반대는 26.2%로 나타났다.
한편 논란의 핵심은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의 내용이 북한 인사를 암시하고 있고 북한에서 불렸던 노래라 국가기념식의 제창곡으로는 부적절하다는 근거 없는 주장도 나온다. 프랑스의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나 오바마 대통령이 참석자의 심금을 울렸던 ‘어메이징 그레이스’도 논란이 되는 배경과 가사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들이 프랑스와 미국 사회를 현재 시점에 극심한 갈등에 빠뜨렸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말 그대로 군부독재의 폭압을 시민들이 온몸으로 저항한 역사적 사건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한마디 한마디를 뜯어보면 광주에서 희생된 윤상원과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넋을 기리는 의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노래란 듣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언제 그것을 듣느냐에 따라 가사도 멜로디도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희생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위로의 자리가 되어야할 기념식이 논란의 늪에 빠져버렸다. 이 문제를 충분히 공론화하지 못하고 이해와 설득의 다리를 놓지 못한 정부의 태도는 매우 실망스럽다. 정부와 정치권이 ‘협치의 세레나데’를 선물해주기는커녕 ‘분열과 불통의 전주곡’만 울린 셈이다. 온 국민이 학수고대하고 있는 ‘국민을 위한 행진곡’은 언제쯤 들을 수 있는 것인가.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선영 아이비토마토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