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경(법학박사·만민공회 호민관)
부장판사 출신의 어느 변호사가 의뢰인으로부터 50억원을 받았고, 보석에 실패하자 30억원을 돌려준 사건에 관해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한다. 검찰은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보석을 성사시키는데 이렇게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을까? 성공보수의 상한은 어디까지인가? 성공보수를 받아도 좋은가? 부당한 청탁이 없다면 거액의 수임료는 괜찮은가? 구속된 의뢰인은 마음대로 돈을 뿌릴 수 있으나 변호인이 마음대로 돈을 받을 수 있는가? 법리상 문제도 있지만 보통 사람들을 그 액수에 좌절·경악한다.
우선 변호사의 수임료는 과연 법으로부터 자유로운가? 1969년에 채택된 미국변호사회(ABA) 모범윤리장전을 보면 그렇지 않다. "변호사들이 당면한 의무는 최고수준의 윤리적 품행을 갖추는 것이다"(전문). "변호사는 법조직업에 대한 사회의 신뢰를 증진시켜야 한다"(EC9-1). "변호사는 합리적인 수임료 이상의 비용을 요구하여서는 아니된다. 과도한 비용은 일반인들의 법제를 활용함을 지연시키고 변호사와 의뢰인의 직업상 관계를 해치기 때문이다"(EC2-17). "변호사의 수임료는 소요시간, 고용특성, 숙련도, 평판, 경험, 관련책임 및 얻어진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EC2-18). 나아가 기회비용(변호사가 의뢰인의 고용을 수락함으로써 다른 의뢰인의 고용을 놓치게 될 경우의 가상손실) 및 유사비용(비슷한 법률용역에 관하여 그 지방에서 통상적으로 요구되는 수임료)을 고려하여야 한다(DR2-106B). 변호사는 이러한 기준을 넘어 불법적이거나 과도한 수임료를 요구·징수하는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다(DR2-106A).
형사사건에서 보석으로 빼내 주겠다는 등의 조건을 내건 성공보수가 가능할까? "민사소송과 행정소송에서 성공보수(contingent fee 불확정수임료)는 오랜 관행이다. 하지만 형사사건에서 성공보수는 공서양속에 반한다. 형사사건의 법률 서비스는 수임료를 염출할 만한 물적 기초(res)를 산출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EC2-20). 따라서 변호사는 형사사건의 피고인을 대리함에 있어 성공보수를 요구·징수하거나 그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지 못한다(DR2-106C).
미국은 변호사가 법원이나 행정기관을 상대로 하는 청탁은 정당하건 부당하건 간에 원천적으로 금지된다. "변호사는 그가 법원, 입법기관 또는 공무원에게 부당한 또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근거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하거나 암시하지 못한다”(DR9-101C).
영국은 미국보다 엄격하다. 영국의 법조는 두 개의 집단으로 구분된다. 준비서면 작성이나 일부 하급심 변론을 담당하는 일반 변호사(solicitor)와 보통의 법정변론을 전담하는 전문 변호사(barrister)가 그것이다. 일반 변호사의 보수 청구권은 <일반변호사보수령>의 적용을 받는다. 법원은 일반 변호사와 의뢰인이 보수에 관해 합의한 경우에도 그 적정 여부를 사정할 수 있다. "성공보수는 공서양속에 반하기 때문에 위법한 것으로 간주된다"(1975 Q.B.373 판례).
영국의 전문 변호사는 변론이라는 특수한 기능을 수행해 왔고 의뢰인과 직접적인 계약관계를 맺지 아니하고 일반 변호사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그의 보수는 명예금(honorarium)으로 간주되고 소송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 전문 변호사 보수는 일반 변호사와 직접 협의할 수도 있지만 대개는 전문 변호사 서기(clerk)와 일반 변호사 간의 협정에 의하여 정해진다. "전문 변호사도 일반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성공보수를 약속·수수할 수 없다"(법조윤리장전 §124~125).
이상의 사례들을 종합하면, 법정 변론을 전담하는 전문 변호사들은 성공보수는커녕 아예 의뢰인들과 접촉하지도 못한다. 일반 변호사들의 보수는 법원의 엄격한 감독을 받는다. 영국에서는 민사이건 형사이건 간에 불확정수임료(성공보수를 포함한다) 자체가 금지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민사사건이나 행정사건에서는 성공보수가 허용되지만 형사사건에서는 성공보수가 금지된다. 이러한 윤리들은 변호사 징계에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에도 물론 <변호사윤리장전>(1962)이 있다. "변호사는 공공성을 지닌 전문직이므로 그 보수는 절대로 과다하여서는 아니된다"(제39조). "변호사의 보수는 사안의 난이(難易), 소요되는 노력의 정도와 기간, 당사자의 이해관계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적정하게 결정되어야 한다"(제40조). 나아가 "변호사는 성공보수를 조건부로 미리 받아서는 아니된다"(제43조).
하지만 우리 변호사들은 수임료를 자유롭게 책정할 수 있으며 형사사건에서도 성공보수를 받을 수 있다. 우리 윤리장전을 반대해석하면 사후에 성공보수를 받을 수 있다. 실제 대부분의 성공보수는 형사사건에서도 사전에 약정된다. 이번에 문제 된 50억원 수임료 사건은 당사자들이 관련 규범들과 윤리망을 거침없이 비껴갔다. 우리나라는 헌법을 비롯하여 영미 법제를 많이 계수하였지만 변호사 보수나 징계 등 불편한 진실에 관해서는 외면한다.
전재경(법학박사·만민공회 호민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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