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원수경기자] "2~3년 전부터 진짜 해보고 싶은 출판을 찾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 말을 한 김중현 지식노마드 대표는 출판계에서 2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낸 출판 베테랑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와 '설득의 심리학' 등 다수의 히트작을 내고, 베스트셀러 저자인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를 발굴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도대체 '진짜 해보고 싶은 출판'이 뭐기에 이제야 찾았다는 걸까.
대형 출판사 대표에서 '1인출판사'로
김중현 대표는 올해로 지식노마드를 꼭 10년째 이끌고 있다. 그보다 앞서서는 경제·경영분야의 대형 출판사인 21세기북스에서 13년을 보냈고 대표 자리까지 올랐었다. 후배들에게 자리를 비켜줄 때가 됐다는 생각과 조직에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해보자는 꿈이 맞물려 지식노마드를 차리게 됐다. 그러나 작은 규모에 편안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사진/지식노마드
"큰 조직에서 편안하게 의자에 앉아서 일하던 습관을 벗는데 1년이 걸렸어요. 그 이후에도 마음 속에 남아 있던 관성을 벗는 데 몇 년이 걸렸죠. 다 버리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라는 생각으로 책을 잘 만드는 데 집중하니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지식노마드 본연의 색깔, 애초의 의도대로 책을 낼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콘텐츠)에 집중해야 하는 것은 특히 1인출판사에는 숙명 같은 일이다. "계약금을 많이 줄 수도, 마케팅을 화려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책의 본질에서 확실한 경쟁우위를 확보하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남 눈치 안보고 직원 월급 걱정 없이 정신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점, 그래서 온전히 콘텐츠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은 가장 큰 장점이죠."
김 대표는 반대로 혼자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틀에 갇히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틀에 갇히지 않도록 사람을 많이 만나는 데에 의식적으로 노력해야한다"며 "출판은 아이디어가 필요한데 그렇지 않으면 아이디어가 금방 고갈되고 뻔한 것이 나온다"고 경고했다.
"책도 디지털콘텐츠 소비방식 소화해야"
김 대표는 지식노마드에서 색다른 실험도 여러차례 시도했다. 첫번째는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한 공동집필이었다. '내 책 쓰기 클럽'이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10여명의 저자들이 함께 한 권의 책을 쓰도록 하는 프로젝트였다. "커뮤니티 시샵(운영자)를 몇 년 하면서 단행본을 내기도 했지만 책으로서 완성도가 떨어지고 맞추기도 힘들었어요. 공동으로 집필하거나 짤막한 글을 내는 것에 적합한 형식과 방법이 있을수 있겠지만 종이책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다음은 페이스북 콘텐츠를 그대로 책으로 옮기는 실험이었다. 바로 지난 2012년 출간했던 엘리엇 부의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잔 할까'다. 건축가 출신의 저자는 고전을 읽고 책 속 한 문장과 그에 대한 자신의 한 문장을 답글 식으로 달아 페이스북에 1년 이상 써왔는데 이것을 엮은 책이다.
"거의 책 전체 내용이 인용으로 구성된 책이라 고민 끝에 시도했던 책입니다. 대부분 왼쪽 페이지에는 인물 사진이, 오른편에는 인용된 문구가 있는데 줄수만 따지면 5~6줄 들어가는 구조죠. 재미있다는 사람이 반, 이게 책이냐는 사람이 반이었습니다. 책은 페이스북 문법에 익숙해진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생각했습니다. 아주 많이 팔린 책은 아니었지만 재미있게 만든 책이었죠."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잔 할까' 중. 사진/지식노마드
독자를 위해 책으로 애프터서비스(A/S)도 한다. 미래학자 최윤식 박사의 책 '대담한 미래' 독자들을 위한 서비스로 지난해 초 90쪽짜리 얇은 책인 '최윤식의 퓨처 리포트 2015'를 발간했다. 짧게 읽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을 위한 틈새 책이기도 하다. '대담한 미래' 1·2권은 모두 600쪽 안팎의 묵직한 책이었다.
"책은 A/S가 없는 거의 유일한 상품이라 일종의 서비스 개념으로 낸 책이었습니다. '대담한 미래'가 20년 단위의 미래예측이라면 1년 단위로 보는 상세한 내용을 통해 빈 틈을 채워주는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본거죠. 꼭 두꺼운 책만 책이 아닙니다. 작은 책도 나름의 가치가 있을 수 있어요. 50~100페이지 분량의 책을 계속 시도해볼 생각입니다."
김 대표는 종이책이 전자책으로 가공·확산되는 흐름도 중요하지만 디지털의 영향으로 달라진 콘텐츠 소비 방식을 책은 어떻게 소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LP에서 CD로 넘어갈 때에는 제작방식은 달라졌어도 시장이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CD에서 음원으로 가면서 완전히 시장이 달라졌죠. 결국 (책도) 거기까지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미래? 어둡죠"
지식노마드가 최근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미래학'이다. 2030년을 전망한 최윤식 박사의 '대담한' 시리즈가 벌써 세권째고, 지난해에는 서울대 공대 교수 26인이 던지는 한국 산업의 미래를 위한 제언을 엮은 '축적의 시간'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들 책을 만든 김 대표는 "대한민국 앞으로 10년은 어둡다"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10년 후에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여러 문제가) 중첩돼 있는데 기본적으로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인구문제입니다. 우리가 많이 모방한 일본은 20년 넘게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헤매고 있는데 우리는 그 속도가 더 빠르고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적 지원이나 역량은 더 떨어집니다. 일본보다 나아지려면 상황을 혁신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이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데 이게 또 참 어렵다는거죠. 문제에 대한 노력은 이제껏처럼 남 따라하는 게 아니니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이것 때문에도 어렵습니다."
미래학 책은 김 대표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대담한 미래'를 처음 낼 당시 삼성의 몰락, 외환위기 등 충격적인 미래 전망에 김 대표는 저자에게 "박사님, 이렇게 막 쓰셔도 돼요? 책임질 수 있어요?" 라고 묻기도 했다. "보통 저자는 조심하고 출판사는 임팩트를 강조하는데 이건 제가 겁나더라구요. 하지만 사회적으로 중요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출판의 재미죠."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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