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공천권은 당원들의 몫이다
2016-04-08 07:00:00 2016-04-08 07:00:00
◇전재경 만민공회 호민관
선거철만 되면 정치권은 공천으로 몸살을 앓는다. 이번 총선도 예외가 아니다. '새정치'를 표방하는 국민의당 여수갑도 이 과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전언에 따르면, 당초 공천심사위원회는 서류전형과 면접을 통해 경선 후보 2명을 선정했다. 유력한 경쟁자 1명이 이 과정에서 떨어졌다. 그러자 당내 중진인 여수 출신 현역 의원이 중앙당 최고위원회에 출석, 탈락 후보자를 여론조사를 거쳐 경선에 넣도록 요청했다. 우여곡절 끝에 탈락 후보자가 공천을 받았다. 국민의당은 공천과정에서 여론조사와 배심제, 전략공천을 오락가락했다.
 
 
국민의당을 일례로 들었지만, 따져보면 공천에서 적법절차를 지키는 정당은 거의 없다. 모든 정당들이 개혁을 내세우지만, 아직은 구호나 기대만큼 개혁적이지 못하다. 개혁을 지향하는 정당이라면, 전략공천이나 여론조사에 따른 공천을 피해야 한다. 대중이 아닌 당원들에게 공천권을 주어야 마땅하다. 당원들이 모여 예비후보들의 경력을 파악하고 후보들의 공개토론을 본 다음에 투표를 통해 후보를 공천하는 것이 정도다. 국민의당은 여수에서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공천심사위원회의 결정을 최고위원회가 번복함으로써 적법절차를 위반했다. 적법절차(due process of the law) 원칙은 행정기관뿐만 아니라 국고 보조를 받는 정당도 지켜야 하는 헌법이다.

두 어린아이가 놀아도 놀이의 규칙이 필요하다. 심판은 없어도 좋다. 그러나 규칙 없는 게임은 있을 수 없다. 공천은 권력게임이다. 게임의 규칙이 필요하다. 헌법과 정당법은 당내 민주주의를 명시적으로 요구한다. 개혁으로 국민을 선도하겠다는 지도자들이 국민의 의식 수준을 넘지 못한다면 무엇으로 국민을 지도할 것인가. "양치기는 양보다 우수하기 때문에 양을 친다"는 칼리귤라의 추론이 오류라면 양치기가 언제나 양보다 우수하다는 주장은 있을 수 없다. 말끝마다 국민의 뜻을 내세우는 지도자들이 정작 국민으로부터 비웃음을 살만한 행동을 일삼는다. 8년 전에도 그랬고 16년 전에도 그랬다.

공직 후보자들에게 적법절차는 더욱 중요하다. 그들은 공천 규칙을 사전에 알고 있어야 한다. 경기규칙이 공정하지 못하면 게임에 참가할 수 없다. 국민의당은 여수갑 후보들이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했다. 운동선수들이 경기규칙을 몰랐다면 결과에 승복할 수 없듯이, 공천의 규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불공정한 절차를 거친 후보들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 여우는 여우를 낳고 독수의 과실은 독을 품고 있듯이 올바르지 못한 규칙에서 올바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할 수 없다.

공천은 어디까지나 당원들의 몫이다. 중앙당은 지구당에 대하여 권고와 지도를 할 수는 있으나 공천권 자체를 대행할 수는 없다. 각 선거구의 입후보자 공천을 중앙당에 맡긴 정당들의 당헌과 당규는 가부장적 온정주의의 유습(遺習)이다. 민주적 규칙의 성장을 가로막는 비민주적 규칙은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 스스로 낡은 관행을 되풀이하는 정당은 정부와 기업에 대해 개혁을 요구할 수 없다. 내부 민주주의조차 확립되지 못한 정당은 선진 정치질서를 구현하기 어렵다.

어떤 정당의 지도자는 개방형 경선(오픈 프라이머리)을 주장한다. 당원이 아닌 일반 시민들의 여론을 물어 공천 후보자를 결정하겠다는 취지다. 인지도와 지지도가 높은 후보를 고르겠다는 것으로, 일면 여론조사와 비슷한 맥락을 보인다. 오픈 프라이머리나 여론조사는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 훌륭한 후보, 즉 '구관이 명관'이라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다. 하지만 정치신인이 어떻게 높은 인지도를 누릴 수 있겠는가.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명성을 얻거나 인지도를 쌓지 않으면 경쟁력이 뒤진다. 참신한 인물을 뽑겠다면서 오픈 프라이머리나 여론조사를 실시함은 자가당착이다.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를 외면하면서 전략공천을 감행하거나, 오픈 프라이머리나 여론조사에 의존하여 공직 후보를 선출함은 본선에서 승리하겠다는 의욕이 모든 절차를 합리화시키기 때문에 빚어진다. 하지만 헌법과 정당법은 정당으로 하여금 ‘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킬 것을 요구한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고 권력을 추구하여야 하는 정당들이 오로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민주적 기본질서를 외면함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키는' 전제정치와 꼭 닮았다. 민주적 법치국가의 정당이라면, 말로는 민주정치를 외치면서 행동으로는 전제정치를 지향하는 앞뒤 다른 모습을 그치고, 당원의 몫을 당원에게 돌려주어야 할 것이다.
전재경 만민공회 호민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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