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미니멀리즘 음악의 대가 필립 글래스가 13년 만에 내한했습니다. 대표작 중 하나인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1994년작)'로 한국을 찾았는데요. 필립 글래스가 창안해낸 필름 오페라는 영화를 상영하면서 음악은 라이브 연주로 진행하는 오페라 공연을 뜻합니다.
필립 글래스라는 이름이 다소 낯설게 여겨지신다고요. 작곡가의 이름은 모르더라도 아마 필립 글래스의 음악을 접한 분들은 많으실 겁니다. '쿤둔', '트루먼쇼', '디 아워스', '일루셔니스트'를 비롯해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화에 그의 음악이 쓰였는데요. 이런 영화음악을 만들기 이전부터 필립 글래스는 60~70년대에 단순한 프레이즈의 반복과 변주를 통해 강력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자신만의 미학을 구축하며 오페라, 극음악, 심포니, 실내악 등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런 필립 글래스를 두고 "우리 시대의 모차르트 같은 사람"이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필립 글래스의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 사진/LG아트센터
필립 글래스가 자신의 필름 오페라를 위해 선택한 영화는 바로 장 콕토의 흑백영화 '미녀와 야수'입니다. 시, 소설, 극작, 회화, 영화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보였던 프랑스의 대표적 예술가인 장 콕토의 대표작인데요. 동화 '미녀와 야수'와 같은 듯 다른 내용을 담은 이 작품은 장 콕토가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상징을 몽환적인 이미지로 담아낸 수작입니다. 필립 글래스는 이 영화의 대사와 음악 등 소리를 지운 채 영상만을 무대 위 스크린에 투사하고 그 위에 자신이 작곡한 음악을 라이브로 덧씌웁니다. 소프라노, 메조 소프라노, 테너, 바리톤 등 성악가 4명, 필립 글래스 앙상블이 무대에 올라 마이클 리스만의 지휘에 맞춰 스크린 속 배우들의 연기에 맞춰 노래하는 식인데요.
LG아트센터에서 24일과 25일 공연된 이 작품은 두 거장 예술가의 개성이 그대로 객석까지 전달되면서도 마치 원래 하나의 작품이었던 것처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감탄을 자아냅니다. 음악이 단순한 배경에 머무르지 않으면서도, 또 원작 영화를 무례하게 침범하지도 않습니다. 예술적 영감이 가득한 흑백영상과 세련미 넘치는 현대음악이 만나, 마치 대화하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데요. 특히 무한반복되는 듯한 필립 글래스의 음계는 장 콕토의 영화가 상징하는 예술가의 기나긴 여정을 탁월하게 묘사하는 듯합니다. 눈과 귀의 호사를 마음껏 누리다보면 95분이라는 상연시간이 아쉬우리만큼 빠르게 지나가버립니다. 현대음악을 어렵게 느끼는 일반 관객들마저 매료시킬 만한 공연인데요.
아쉽게도 서울에서의 공연은 이제 끝났지만 아직 기회는 남아 있습니다. 필립 글래스의 '미녀와 야수'는 통영국제음악제에도 초청받았습니다. 음악과 함께 즐기는 관능적인 미녀와 잔혹한 야수의 사랑이야기는 3월25일과 26일 통영국제음악당 블랙박스에서 이어집니다.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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