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기자] 은행권이 해마다 발생하는 대출 관련 사기, 비리사건으로 수백 수천억원의 손실을 감당하는 등 속앓이를 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005930) 1차 협력업체였던 디지텍시스템스가 은행권의 대출을 받기 위해 불법 로비한 정황이 드러나자 은행들은 직원 개인의 비리, 거래처의 사기행각이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과거 모뉴엘, KT ENS 협력업체의 사기대출과 판박이라는 해석이다. 부실한 대출심사와 내부감사시스템의 폐해가 여전하다는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는 돈을 받고 디지텍시스템스가 900억원대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알선한 혐의로 브로커 최모씨, 이모씨를 구속했다. 또 2000여만원을 받고 디지텍시스템스에 대출을 해준 이모 산업은행 팀장을 뇌물수수 협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2012년 말 디지텍시스템스 남모 이사로부터 10억여원을 받은 뒤 수출입은행 300억원, 국민은행 280억원, 산업은행 250억원, 농협 50억원 등 대출을 알선해 주고 무역보험공사가 50억원어치 지급보증서를 발급해주도록 주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은행들은 "대출 취급 당시 대출서류에 따르면 취급 절차에서는 문제가 없었다"며 "대출 심사의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한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지난 2014년을 기점으로 디지텍시스템스가 기소되면서 부실한 재무 현황이 드러나자 해당 대출을 부실채권으로 분류, 시장에 매각해 손실처리를 했다.
문제는 이런 사기 대출이 매년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는 점이다. 지난 2014년에는 전 금융권을 뒤흔든 '모뉴엘 사태'가 터졌다. 모뉴엘은 수조원의 허위 수출채권을 만든 뒤 이를 이용해 무역보험공사의 보증을 받았다. 그 후 허위 채권과 무역보험공사 보증을 앞세워 은행들로부터 수천억원의 사기대출을 받았다.
은행권 피해액은 기업은행이 1508억원, 산업은행 1253억원, 수출입은행 1135억원, 구 외환은행 1098억원, 국민은행 760억원, 농협은행 753억원 등 총 6768억원에 달한다.
같은 해 KT ENS 협력업체가 허위 매출채권으로 사기대출을 받은 사건도 있었다. 은행들은 KT라는 대기업의 자회사라는 간판에만 시선이 쏠려 KT ENS 직원이 협력업체와 짜고 위조한 외상매출채권이 가짜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매출채권을 담보로 대출을 해줬다.
이들 대출사기 일당들은 지난 2008년 5월부터 2014년 1월까지 KT ENS 대표이사 명의 사문서 등을 위조하는 수법으로 16개 은행으로부터 463차례에 걸쳐 모두 1조8000억원을 부정 대출 받았다. 피해 은행들은 2900억원에 가까운 금액을 회수하지 못하는 등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디지텍시스템즈의 경우에도 삼성전자 1차 하청업체이자 코스닥 상장사였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우량해 보이는 기업은 은행이 서로 돈을 빌려주고 싶어한다"며 "디지텍시스템스의 경우에도 코스닥 상장사였는데, 그런 탓에 분식회계에 대한 위험을 간과한 면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대출심사 절차 기준이 아무리 까다롭더라도 직원 개인이 사기나 비리 행각을 벌이는 것은 막지 못한다며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디지텍시스템스 건의 경우에는 브로커 최씨 등은 지난 2012년말 디지텍시스템스 남모 이사로부터 10억원을 받은 뒤 대출을 알선해줬다. 그들은 이 돈으로 로비를 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무역보험공사의 보증서를 발급받았다. 특히 산업은행 팀장 이씨는 2000만원의 뇌물을 받았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이 팀장은 해당 기업을 직접 담당하는 여신담당자는 아니었지만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산업은행 영업점에 소개해 준 대가로 뒷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모뉴엘 사태에서도 전 무역보험공사 간부가 모뉴엘로부터 총 6000만원의 뒷돈을 받기도 했다. 그는 수출가격을 부풀린 허위 수출채권을 만들고, 이에 대한 무역보험공사의 보증을 받는 데 일조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해마다 발생하는 대규모 대출사기사건의 공통점은 은행원들이 대기업이나 상장사라는 타이틀에 현혹돼 대출심사를 제대로 안 한데다 비리 직원까지 가담하면서 벌어지는 예고된 인재"라며 "은행들은 대출 절차에 문제가 없고 직원 개인 비리라고 항변하지만 수천억원대 피해는 고스란히 떠앉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그래픽/뉴스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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