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알파고 이후의 대한민국
2016-03-23 07:00:00 2016-03-23 07:00:00
◇윤석천 경제평론가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이 끝났다. 인간의 승리를 기원한 모두의 응원도 부질없었다. 충격은 있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우린 이미 기계에게 지고 있다. 기계는 인간의 육체를 뛰어넘었다. 지게차와 굴삭기의 생산성은 인간의 팔다리를 초라하게 만든 지 오래다. 기계의 생산성은 산업혁명 이전부터 인간을 앞질러 왔다.
 
그런데, 왜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에 이처럼 호들갑을 떠는 걸까. 두뇌 싸움에서 졌기 때문이다. 지능은 인간의 최후 보루였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자부심은 큰 상처를 받았다. 이는 분명 인류사적 의미를 갖는다. 기계가 감히 넘볼 수 없을 거라 믿었던 지능마저 기계가 인간을 앞서게 됐다. 기계를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흔들리고 있다.
 
이는 우리에게 상반된 미래를 보여준다. 하나는 유토피아다.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기계를 이용해 인간은 과거에 누려보지 못한 풍요와 여유를 누릴 거란 희망이다. 다른 하나는 디스토피아다. 공상과학 영화에서 보듯 기계의 진화는 마침내 인간을 노예로 부리거나 말살시킬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다.
 
그것이 어느 쪽이든 시간은 흐른다. 멀다고 생각하는 미래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오늘의 알파고는 두뇌는 있되 팔다리 등 형체가 없다. 몇 년 후면 팔다리를 자유롭게 쓰는 알파고를 보게 될 것이다. 알파고의 진화가 인류에게 축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팽팽한 주장만 있을 뿐 미래는 안개 속이다.
 
확신도 있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속도가 훨씬 빨라질 거란 사실이다. 대부분은 신기술이 일자리를 만들어낸다고 믿는다. 맞는 말이다. 단, 그 일자리를 채우는 건 인간이 아닌 기계다. 기계는 이미 산업현장에서 인간을 밀어내고 있다. 조립라인에 서있는 건 인간이 아니다. 로봇이다. 이에 그치진 않을 것이다. 현대의 기계는 알파고에서 보듯 단순한 금속덩어리가 아니다. 논리적 사고를 하는 인간에 가깝다. 고급 일자리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 인간의 뇌로만 가능했던 일을 이제부턴 기계가 맡게 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은 생산성이 높은 쪽을 선호하게 되어 있다. 때문에 자본이 생산성이 뛰어난 기계를 쓰는 것은 자연스런 흐름이다. 마르크스가 얘기한 자본으로의 생산력 집중은 필연적으로 인간을 일자리에서 몰아낼 것이 틀림없다.
 
한국은 이번 대결을 보면서 무엇을 배웠을까. 불에 덴 듯 놀라 정부가 서둘러 발표한 것이 인공지능에 대한 투자다.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절대 투자액도 문제지만 근본적 대응책이 빠져있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계층 간 불평등의 골이 깊어간다는 데 있다. 정부의 성장방식은 기업, 즉 자본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것에 초점이 모아져 있다. 이는 잘못된 정책임이 입증됐다. 지난 10여년간 정부는 기업, 특히 재벌에 퍼주기식 정책을 펼쳤다. 결과는 저성장의 늪에 한국경제를 가둔 것으로 나타났다. 올 2월 청년실업률은 12.5%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 실업률도 악화일로다.
 
알파고로 대변되는 기계의 진화를 보면서 한국 경제가 준비해야 할 것은 명확하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첨단기술에 대한 투자는 분명 필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게 있다. 기술혁신으로 인한 생산성 성장이 자본에 집중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기술혁신의 과실이 개개인의 소득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고질적인 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
 
산업혁명의 교훈을 새길 필요가 있다. 그 과실이 일반 대중에게 나눠지기까지 자그마치 100년 이상이 걸렸다. 그것도 산업혁명 자체가 노동자의 삶을 개선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인 건 정치적 개혁이었다.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며 계급투쟁이 가열되자 그에 비례해 임금 성장의 속도가 빨라지고 산업화의 이익이 전 계층으로 확산된 것이다.
 
현재를 '제4차 산업화 시대'라고 한다. 산업혁명에 준할 정도로 혁신이 눈부시다는 얘기다. 그런데 시스템은 기술의 발전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신기술이 자본가만을 살찌우고 있다. 반면, 그것에 적응하지 못한 수많은 보통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낙오한다.
 
기술 진보는 두 얼굴을 갖는다. 삶의 질을 높여주는 천사일 수도, 보통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악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결정하는 건 기술이 아니다. 인간이다. 알파고를 천사로 만드는 건 분명 인간의 몫이다.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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