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춘 시즌을 맞이하기 전 조금은 아쉬웠던 설풍경도 보고, 눈 속에 매화가 핀다는 깊은 산숲길을 찾아간다. 하얀 설경을 바라보며 눈길을 따라 오르는 마지막 설행으로 양평 설매재 숲길을 걷는 여정이다. 설매재는 숲이 깊고 볕이 드물어 초봄까지 눈이 남아있는 산으로 3월 중순까지 새하얀 설경의 수묵풍경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산 정상에 오르면 넓게 펼쳐진 억새군락지에 초가 하나가 아주 오래 전에 그려두었던 빛바랜 수묵화처럼 펼쳐진다. 억새의 금빛 일렁임과 순백의 설경은 서로 대조를 이루며 화폭을 완성하고 만다. 겨우내 무거웠던 몸을 추스리고 봄을 맞는 마음의 채비로 좋은 여정이다. 이내 바빠질 마음은 잠시 내려 두고, 서붓서붓 산길을 걷다보면 설중 매화 한 떨기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설매재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이강
이제 상춘의 3월이다. 2월의 끝을 붙잡고 있던 겨울은 마지막 눈벼락으로 봄을 열며 떠남을 고했다. 예부터 음력 정월의 순백 눈발은 풍년의 기원이자 약속이 되었다. 동풍의 위력과 한파의 맹위를 다하고 아쉬웠던 설풍경까지 마침내 제 몫을 다하고 떠나는 겨울이여, 안녕. 봄이 피고 여름 놀고 가을 훌쩍 지나 또 보자. 안녕, 잘 가라. 이제 봄이 왔다.
눈 속에 붉은 매화 피는 설매재로 설춘곡
양평 용문산은 아름다운 자연의 숲과 산세로 이미 등산애호가들에게는 이름이 난 대표적인 명산이다. 설매재로 오르는 숲길은 경기도권에서 가장 늦게까지 눈이 남아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며칠 전 춘설까지 내렸으니, 산중의 숲은 순백으로 눈부실 것이다.
양평 설매재는 해발 743미터의 대부산 정상을 중심으로 용문산, 유명산에 이르기까지의 고개를 일컫는다. 대부산은 산세가 완만하고 경치가 빼어나 겨울 산행지로도 제격이다. 정상에 서면 용문산(1157m)·장군봉(1065m) 등 주변의 산이 병풍을 치고, 남한강과 양평 시내까지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설매는 눈 설(雪)에 매화 매(梅)자를 쓴다. 예부터 '눈이 많이 내리고 초봄까지 눈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눈밭에 붉은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린다'고 하여 그렇게 불리워졌다. 흰 눈밭의 붉은 매화는 그 의미가 각별하다. 눈이 채 녹지 않은 산에 피어난 매화는 엄동설한과 싸우며 고고하게 피어난 꽃이다. 때문에 옛 선인들은 그 고결함을 칭송하며 사군자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여겨 마음에 두었다. 모진 추위와 바람을 이겨내고 꽃을 피워내는 홍매화 꽃 한 떨기를 마음에 두고 눈이 푹푹 빠지는 산길을 오른다.
설매재 등산로. 사진/이강
설매재로 가기 위해서는 차를 이용해 해발 600미터 가까이 올라야 한다. 설매재 자연휴양림의 입구다. 아직 산그늘에는 눈이 많이 쌓여있고, 몇몇 마을주민들이 눈을 치우기에 한창이다.
"차는 더 못 올라 갈 것이고, 걸어서 오르면 갓바치 고개가 있어 고생 좀 할 것이요. 그래도 대부산 능선에 오르면 제대로 설경을 만날 수 있을 것이오." 산행출발점을 설매재자연휴양림으로 삼아 채비를 단단히 한다. 느닷없는 봄눈으로 더 깊어진 산중에 인기척은 드물다. "혼자 오를 것이요? 천천히 오르고 해질 무렵되면 일찍 하산을 해야할 것이요. 저녁 때는 아주 깜깜하니 위험도 하고."
산행객들은 사시사철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설매재를 작은 설악이라고도 부르는데, 늦은 봄까지 잔설이 남아 있는 풍경과 초여름 한들거리는 개망초 군락, 또 억새 물결치는 가을의 초원, 눈이 그려낸 겨울의 설산 풍경이 설악의 변화무쌍함과 견줄 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매재를 올라본 사람은 그 중 으뜸이 바로 봄눈 내린 설산을 오르는 춘설행이라 손꼽는다. 휴양림을 출발해 30여분을 오르니 좌우로 양평의 산자락와 두물머리, 도심시가지까지 한눈에 조망된다.
눈 덮힌 설산과 억새밭이 어우러진 수묵풍경
해발 600미터의 배넘이 고개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정상을 오르는 길목으로 이 숲길 역시 휴양림에 포함된 개인소유지이기 때문에, 휴양림 매표소에서 구입한 이용권을 확인하거나 ATV체험을 해야만 산행이 가능하다. 간이매점이 있고, ATV 오프로드체험장이 조성되어 있다. 산행에 자신이 없는 경우, 이곳에서 바이크를 빌리면 산마루까지 비교적 수월하게 오를 수도 있다. 배넘이 고개에서 대부산 정상까지의 산행은 천천히 오를 경우, 대략 40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배넘이 고개를 오르니 갑자기 확 트인 고원이 나타난다.
억새가 어우러진 설산 풍경. 사진/이강
눈이 쌓인 울창한 숲길을 따라 20여분 남짓 오르면 다소 가파른 산비탈이 나타난다. 그렇게 순한 길과 조금은 가파른 길을 몇 차례 지나 8부능선 쯤에 이르면 어느 순간 시야가 확 트인다. 넓게 펼쳐진 초원지대와 산 아래 전망은 한없이 아름답다. 눈이 그려낸 엷은 채색의 풍경은 한 폭의 수묵화와 다름 아니다. 멀리 산풍경은 흑백의 윤곽선을 연하게 두르며 산세를 도드라지게 그려낸다. 하단 등성이를 채우는 것은 황금빛의 억새들판이다. 산길을 오르는 산행객의 실루엣 역시 멋진 풍경을 살아나게 하는 하나의 오브제다. 하늘 아래 넓게 펼쳐진 초원의 풍광은 광막하고도 평화롭다. 그 들판에 오롯이 자리한 초가 하나와 길을 걷는 사람은 그대로 오브제가 되어 하나로 어우러진 풍경을 빚어낸다.
이 곳 설매재가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각광을 받으면서부터다. 길을 따라 오르니 산 중 오지의 때 묻지 않은 풍경이 연이어 펼쳐진다. 정상에 오르니 조망감이 시원하고 주변의 높고 낮은 산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며 남쪽으로는 남한강 너머까지 스카이라인을 이룬다. 촬영지의 주요배경이 된 억새밭 역시 황금빛 물결을 일렁인다. 이 억새밭에서 영화 '왕의 남자'에서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공길의 소경놀이 장면이 촬영되었다. 또한 영화 '관상' 속 억새밭 군락지와 초가집의 촬영지기도 하다. 영화 '협녀, 칼의 기억'은 가장 아름다운 겨울 풍경을 바로 이곳에서 쵤영하였다. 영화 에필로그에서 월소(전도연)와 홍이(김고은)는 그림 같은 설산 위를 하염없이 걷는다. 오래전 드라마 '다모'를 필두로 '홍길동', '대조영', '황진이', '바람의 화원', '이산', '주몽', '추노', '선덕여왕'까지 수많은 드라마 역시 이곳에서 명장면을 담아내었다. 이곳에는 아직도 '관상'에서 내경(송강호)의 집으로 쓰였던 초가가 남아 있다.
설매재에는 드넓게 펼쳐진 억새군락지 사이로 바람이 거세게 불어 겨울산행뿐 아니라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대부산 정상에서 유명산 패러글라이딩 활공장 방면으로 15분쯤 더 올라야 한다. 활공장으로 이어진 길을 오른다. 고개 하나를 넘거나 산길을 휘돌아갈 때마다 변화무쌍하게 펼쳐지는 풍경이 아름답다. 해가 질 무렵에는 금빛억새가 작은 바람에 물결치듯 군무를 펼치고, 산마루 작은 송림의 실루엣과 멀리 산풍경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바빠질 봄을 맞기 전 추천할 만한 산행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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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이강의 풍경읽기 - 봄 맞이 트레킹, 남한강 여주 여강길 걷기
경기도에는 봄이 맞이해 걸을 수 있는 트레킹 코스가 다양하게 구비돼 있다. 그 중 경기 여주의 여강길 코스는 봄이면 철쭉 흐드러지는 산그늘 아래 옛 나루터를 지나 강 건너 저 편 강마을까지 이어지는 옛길이다. 강가에는 황포돛배가 봄빛을 머금은 물안개를 아스라힌 풍경을 그려낸다. 특히 본격적인 봄날이면 다시 높이곰 돛을 올리고 강으로 흐르는데 가히 절경이다. 또 여주의 관문으로 일컬어지는 기좌제일루(畿左第一)의 누각인 영월루에 오르면, 발 아래로 여주를 관통하는 남한강이 유유히 흐르고, 먼 발치로 천년 고찰 신륵사 강월헌과 다층전탑의 모습도 바라볼 수 있다.
여주 여강길. 사진/이강
신륵사 아래 강변둔치가 바로 '여강길'의 기점이다. 봉미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신륵사를 내려와 본격적으로 길을 걸을 채비를 한다. 여강길에서는 역사의 흔적을 더듬으며 자연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명소들을 둘러볼 수 있다. 옛나루터길, 세물머리길, 바위늪구비길 등 테마에 따라 다양한 코스로 나뉘어지는데, 각 코스당 대략 7시간 내외가 소요되어 하루 산행코스로 알맞다. 그 중 탐방객들의 발걸음이 늘고 있는 1코스는 일명 '옛나루터길'이라 불리는 코스로 16.5km의 길로 대략 약 6시간 남짓이 소요된다. 옛나루터길은 영월루를 시작으로 금은모래 강변공원을 지나 부라우나루터, 우만리나루터를 거쳐 흔암리를 따라 아홉사리과거길의 종점인 도리마을까지 이르는 길이다. 강변길을 따라 걷는 동안 아름다운 강변나루의 풍치와 고스넉한 산길의 운치를 즐길 수 있고, 봄안개가 아스라히 피어오르는 강변과 봄꽃의 향내를 밟으며 걷기에 그만이어서 봄트레킹 코스로 알맞다.
특히 아홉사리과거길은 흔암리에서 시작해 여흥 민씨 집성촌인 도리마을 사이의 남한강변을 따라 걷는 길로 우뚝한 아홉 굽이 모롱이길을 굽이굽이 돌아간다. 인공적으로 꾸미지 않은 천연상태의 오솔길이 그대로이고, 탁 트인 시야로 여강의 물줄기가 흐른다. 일부러 꾸민 길과는 달리 때 묻지 않은 옛길 그대로의 울창한 숲속 풍경, 남한강 줄기를 따라 걷는 길맛이 절묘하게 어루러진다. 이래저래 여강길은 봄이면 트레킹족의 발길이 늘어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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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봅시다 - 설매재자연휴양림과 주변 맛집
캠핑장시설을 갖춘 설매재자연휴양림은 수도권에서 한 시간 남짓의 거리에 있다.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휴양림으로 때 묻지 않은 숲속에서 자연의 채취를 온전히 느끼며 하룻밤을 머무르거나 산행을 즐길 수 있다. 휴양림은 숲속의 집, 구름의 집, 단체를 위한 수련원, 황토방, 물놀이장, 자연산책로, 야영장 등을 갖추고 있어 피서철이면 많은 휴양객들이 머무른다. 다양한 레포츠 체험도 가능하다. 서바이벌 게임장과 패러글라이딩, ATV 등 레포츠를 즐기며 스트레스를 날리기에 안성맞춤이다. 숙박은 사전 예약이 필수다.
설매재자연휴양림. 사진/이강
흥청골곰탕의 곰탕. 사진/이강
겨울 산행으로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에는 따끈한 국물의 곰탕이 적격이다. 양평역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흥청골곰탕(031-772-4973)은 소갈비찜과 진국 곰탕으로 입소문 난 양평의 대표적인 맛집이다. 또 옥천면의 맛을 대표하는 옥천냉면도 별미다. 옥천면사무소 옆에 자리한 옥천면옥(031-772-5187)은 40여년의 황해도식 냉면을 만드는데 한 겨울에도 생각나는 쨍한 맛이 일품이다. 시원한 국물 맛과 편육과 완자를 곁들이면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
-숙박예약 및 문의: 설매재자연휴양림(031-774-6959, www.SNR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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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 여행작가, 뉴스토마토 여행문화전문위원 gh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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