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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속으로)가산·광명·판교, 유통전쟁에 원조상인만 '피바람'
상권활성화 등 낙수효과 전무…상생 대책도 '허울' 뿐
2016-01-21 16:47:55 2016-01-21 17:05:02
"주변에 대기업 쇼핑몰이 들어서면서 심할 때는 매출이 반토막 났어요. 망해가는 구로공단에 영세상인들이 피땀 흘려 단지를 일궈놨는데 한순간에 빼앗겼습니다"(가산디지털단지 상인 장복순씨). "불황이라 해도 이케아 개장 전까지만 해도 주말에는 방문 고객이 심심찮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한산하다 못해, 찾는 발길이 뚝 끊겼습니다."(광명 상인 손승우씨).
 
대기업의 거대 쇼핑몰이 들어선 가산, 광명, 판교지역에서 들을 수 있는 소상공인들의 푸념이다. 쇼핑몰 입점으로 지역상권이 살고, 중소 상인들에게도 낙수효과가 있을 것이란 희망은 잿빛으로 변했다. 아웃렛, 가구 특화 거리로 입소문이 나면서 근근이 이어졌던 소비자들의 발걸음마저 뚝 끊겼다. 기업 입주와 함께 지역 내 내수효과를 기대했던 신흥 도심 판교상인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방문손님 자체가 주니 매출이 많게는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상생'이라는 이름으로 대기업들이 내놓은 일부 대책들도 실효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대형 아웃렛, 지역상권 삼키다…원조 상인들은 '울상'
 
지난 19일 찾은 가산디지털단지는 현대아웃렛, W몰, 마리오아웃렛이 모여있는 아웃렛 중심권과 최근 들어선 롯데 팩토리아웃렛을 제외하고는 적막감이 엄습했다. 평일이라는 점과 추워진 날씨 탓도 있지만 쇼핑 특수는 사라진 지 오래다. 현대아웃렛에서 가리봉 오거리까지 이어진 가두점(길거리 단독매장)들은 상당 부분 폐업하거나, 폐업을 준비 중이었다.
 
20년째 남성복을 팔고 있는 A씨는 "백화점 온라인몰로 타격을 입은 데 이어 대형 유통업체들이 아웃렛에 사활을 걸면서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같은 브랜드가 아웃렛에 입점해 있다 보니 경쟁 자체가 역부족이다. 할인율을 높이고, 매장 인테리어를 바꾸는 등 맞서봤지만 출혈경쟁만 부추길 뿐이었다. 매출은 한창때에 비하면 30% 이상 줄어들었다.
 
의류 판매업을 하는 B씨는 "아웃렛 거리로 유명했던 2000년 중반과 비교하면 매출이 반토막 났다"며 "지난해 현대아웃렛 입점 이후 대형 아웃렛끼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매출이 40% 정도 빠졌다"고 말했다. 고래싸움에 감히 낄 틈이 없다고 했다. 매출이 계속해서 주니 재고회전율이 더뎌지고, 경쟁할 여력이 없다는 한숨소리도 들렸다.
 
 
가산디지털단지 주변 의류 가두점들. 사진/뉴스토마토
 
지금의 가산 아웃렛 지역은 외환위기(IMF) 이후 폐허나 마찬가지였다. 공장지대였던 구로2공단의 섬유·봉제 공장들이 해외로 이전하던 중 IMF를 맞았다. 이때 일부 공장들이 살기 위해 할인매장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했다. 공장형 아웃렛 1세대인 셈이다. 이들이 규모를 키워 2000년 초반 아웃렛 거리를 만들며 대규모 타운으로 자리 잡았다. 영세 상인들이 모여 하나의 상권을 만든, 협동조합 형태다. 로드샵 거리 활성화에서 대형 아웃렛 매장 건립으로 이어지는 다른 지역상권과는 태동부터 다르다. 가산동 아웃렛 시장 규모는 이미 1조원에 육박하게 커졌다.
 
박재영 금천패션아웃렛단지연합회 사무총장은 "가산동 패션 아웃렛 단지는 우리 소상공인들이 피와 땀을 흘려가며 이룬 상권인 만큼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하지만 현대, 롯데 등 대기업이 우리 삶의 터전을 빼앗으려 한다. 지역상권을 초토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산 롯데 팩토리아울렛 앞에 롯데 진출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상생은 허울뿐"…광명·판교도 시무룩
 
이케아, 백화점 등이 들어선 광명과 판교 상황도 다르지 않다. 대형쇼핑몰 등장으로 유동인구 증가와 이에 따른 상권 활성화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이들이 상생이라고 내놓은 대책조차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의견이다.
 
가산과 마찬가지로 광명도 지난해 이후 홍역을 치렀다. 광명사거리를 기준으로 이케아, 롯데아웃렛 등 대형 쇼핑몰이 자리 잡으면서 7㎞ 떨어진 가구거리와 시청 방향으로 형성된 패션문화거리가 큰 타격을 받았다.
 
 
이케아 광명점은 가구를 구매하기 위한 고객들로 붐비고 있는 가운데 같은날 오후 경기도 광명시 광명가구단지 내 매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들은 특히 상생으로 내놓는 대책이 실효성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케아는 지역상권과 상생방안으로 주차장 일정공간에 영업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지만, 무용지물이다.
 
이상봉 광명가구거리 이사장은 "가구만 놓고 장사를 할 수 없지 않느냐"며 "최소 1~2억원의 인테리어 비용과 향후 운영비 소요가 예상되지만 투자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케아는 가구거리의 손님들을 다 가져갔지만, 그들이 내놓은 상생은 보여주기식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판교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8월 개점한 현대백화점 판교점 영향으로 주변 음식점들의 매출이 뚝 떨어졌다. 이 백화점은 지하 1층에 국내 최대 면적의 식품관(1만3860㎡)을 갖추고 있다. 뉴욕 컵케이크 전문점 '매그놀리아', 이태원 경리단길 맛집 '마스터키친', 대구의 명물 제과점 '삼송빵집' 등 108개의 식음료 브랜드가 들어섰다. 지상 5층과 9층에도 식당가가 있다. 식음료에 특화돼 있다 보니 주변 음식점들이 타격을 받았다. 넓게는 경기 이남, 강남 이남, 성남 등에도 매출 감소 영향을 미쳤다.
 
판교 현대백화점 지하1층 식품관에 많은 소비자들로 가득하다. 사진/뉴스토마토
 
이를 위한 해결책으로 현대백화점과 판교 상인들은 현대백화점 측이 일정기간 판교 상권활성화 기금을 지원하고, 백화점과 상인들이 바자회를 개최해 지역상권 알리기에 동참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에 대해 판교 음식점 관계자 C씨는 "주거단지가 형성되면서 4~5년 전부터 시장에 활기가 돌았지만, 지금은 백화점 문을 닫는 9시 이후 야간장사를 하는 곳이나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라며 "이미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는데 무슨 광고냐"고 말했다. 상인 D씨는 "백화점이 들어오는 순간 소규모 음식점들은 백화점 식품관인 6000평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며 "단기간에 진행되는 지역상권 알리기가 장기간 경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판교 주변 음식점 모습. 같은 시간 백화점에 손님이 가득한 것과는 달리 한적한 모습니다. 사진/뉴스토마토
 
대기업 진출에 따른 상권 활성화는 미미
 
대기업들이 아웃렛 등 대형유통몰을 출점하며 이점으로 내세우는 것은 '상권 활성화'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대기업 쇼핑몰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수도권, 지방 등 해당 지역을 중소업체들만으로 상권을 확장해 나가기는 무리"라고 말했다.
 
하지만 가산, 광명, 판교 사례에서 살펴봤든 실제로 대기업들이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상권 활성화라는 순기능을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반대되는 양상이 벌어졌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가 전국 패션업종 중소기업 202개를 대상으로 대기업 아웃렛 입점에 따른 지역상권 영향 실태조사를 한 결과, 아웃렛 인근 패션업종 관련 중소기업의 84.2%가 매출 감소를 겪었다. 매출 변화가 없다는 응답은 14.8%, 증가했다는 응답은 단 1%에 불과했다. 아웃렛 입점 이후 매출이 감소한 중소기업의 평균 매출 감소량은 43.5%였다. 이로 인해 대기업 아웃렛 입점이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은 85.2%에 달했다.
 
이달 14일 발표된 판교 현대백화점 인근 외식업과 소매업 영위 사업장 300개를 대상으로 한 지역상권 영향 실태조사 결과도 92%가 '대기업 쇼핑몰 입점이 지역상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인식한 것으로 나타났다. 판교점이 문을 연 지난해 8월 이후 17.2%가 매출 하락이 이어졌다.
 
이처럼 대기업들의 잇단 대형 쇼핑몰 출점이 지역상권과의 상생과도 거리가 멀고, 활성화와도 동상이몽인 결과를 초래했지만, 현재로서는 이들을 막을 방법이 없다.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면서 확장정책은 오히려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케아는 2020년까지 1조2000억원을 투자해 전국에 5개 매장을 더 여는 것이 목표다. 2017년 하반기 개점하는 경기 고양점을 비롯해 서울 강동과 그외 수도권에도 매장을 추가로 낼 예정이다. 대전·충청권과 부산·경남권에도 각각 1곳 매장 오픈을 계획하고 있다.
 
롯데·현대·신세계 등 유통 빅 3가 운영하는 대형 아웃렛도 증가 추세다. 지난 2008년 광주 월드컵점을 시작으로 도심형 9개, 교외형 6개 아웃렛을 개장한 롯데는 수원과 광교신도시에도 문을 열었다. 신세계는 파주, 부산에 이어 내년 상반기 시흥점을 선보인다. 2014년 아웃렛 시장 진출을 선언한 현대도 가산점, 김포점을 선보였고, 오는 4월 송도점을 개장한다. 현재 20여곳에 이르지만, 출점 준비 중인 신규 대형 아웃렛 수는 수도권 6곳, 지방 2곳을 포함하면 향후 3년 안에 30개를 넘어설 전망이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대형 유통몰을 통해 소상공인 영역을 침탈하고 있으며, 이는 대기업에 의존하는 구조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며 "대기업에게는 돈을 조금 더 벌어다 주는 문제지만, 소상공인들에게는 생존권의 문제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고 일침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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