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보스포럼'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세계경제포럼(WEF)은 최근 '2016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를 통해 올해 전 세계가 지난해보다 더 위험한 상황에 노출돼 있다고 경고했다. 환경·정치·사회·경제 등 거의 모든 분야의 리스크가 터지기 직전의 상황인 '티핑포인트'에 도달했다는 지적이다.
불안감을 키우는 것은 리스크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가 충분치 않을 수 있다는 우려다. 미외교협회(CFR)는 최근 올해 경제리스크를 분석한 보고서에서 "충격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제대로 대응할 능력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고 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도 10대 지정학적 리스크를 제시하면서 '힘의 공백'을 최대 위험으로 지목했다.
글로벌 증시 불안과 유가 급락, 중동지역의 분쟁, 북한의 핵실험까지. 2016년이 시작된 지 채 한달도 지나지 않았지만 국제사회 곳곳에서 경고음이 들리고 있다. 연초부터 각종 사고가 터지고 있는 것은 우선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는 리스크 자체가 곪아있기 때문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뽑은 올해의 주요 리스크에는 기후변화 등 환경문제를 비롯해 이민 및 난민 문제, 에너지 가격 쇼크, 국가 간 분쟁 등이 있었다. 새로운 리스크는 거의 없는 대신 기존 리스크들이 악화되는 양상이다. 중국의 경기둔화와 저물가, 국가 간 동맹 약화 등 다른 기관이 제시한 위험들도 지난해부터 이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더 큰 문제는 리스크 사이의 연관성이 커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곪아버린 상처가 합쳐지며 더 큰 질병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WEF는 "주요 리스크 사이의 연관성은 지난해보다 더 높아졌으며 핵심 리스크 몇 가지만 결합되더라도 예측 불가능한 큰 파장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대 경제리스크는 '중국·유가·실업'
지난 19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6%에서 3.4%로 낮춰 잡았다. 위험 요인으로 꼽은 것은 역시 중국의 경기둔화와 국제 원자재 가격 약세, 정치 불안 등이었다. 같은 날 발표된 중국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5년만에 최저치인 6.9%를 기록했다. 올해 전망은 더 암울하다. 세계은행(WB)이 제시한 중국의 예상 성장률은 6.7%, IMF는 6.3%에 불과했다.
중국 증시는 이미 연초 주가급락으로 두 차례나 거래정지를 겪었고 이는 글로벌 금융 불안으로 번졌다. 미국과 영국, 독일의 주요 주가지수가 10% 안팎으로 하락했으며 한국의 코스피지수도 연일 휘청이고 있다. 유가도 바닥을 모르고 추락중이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브렌트유, 두바이유는 모두 배럴당 20달러대로 떨어졌다. 이미 공급이 넘쳐나는 가운데 경제재제가 풀린 이란까지 원유증산에 나서며 유가 반등은 요원해 보인다. 최근에는 각각 수니파와 시아파 종주국임을 자처하는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의 종파적 갈등까지 심화되며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위험성까지 커지고 있다.
올 초 중국의 증시 급락은 전 세계 금융시장 불안으로 번졌다. 사진은 중국 허베이성의 증권사에 있는 투자자 모습. 사진/뉴시스·AP
서로 맞물려 나타나는 중국발 경기둔화와 저유가 전 세계 경제에 연쇄충격을 낳는다. 원자재 수출국이 많은 신흥국은 이미 경제위기에 처했다. 베네수엘라는 지난 15일 국가경제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며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한 브라질에서는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탄핵됐으며 최대 축제인 카니발도 취소·축소되고 있다. 중국에 대한 기계설비 수출을 하던 유럽과 일본 등 선진국도 수출 감소로 고전하고 있다.
중국의 세계경제성장 공헌도가 30%에 이른다는 IMF의 분석이 과장이 아닌 것이다. 물가 관리도 힘들어지고 있다. 저유가는 에너지 소비 가격을 떨어뜨리고 중국 위안화 가치 하락은 중국산 생필품 가격을 낮춘다. 저물가 탈피를 위해 애쓰고 있는 미국과 일본, 유로존 등에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특히 통화정책 정상화에 나사고 있는 미국에게는 물가가 큰 걸림돌이다. 금리인상의 주요 전제조건 중 하나는 물가상승이기 때문이다. 저물가가 지속될 경우 미국의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커지고 이는 신흥국의 금융 불안을 낳을 수 있다.
실업 역시 중요한 리스크다. WEF가 사업 환경에서 가장 큰 리스크를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 140개국 중 41개국에서 '실업 및 불완전 고용'이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됐다. 실업이 사회의 안정성을 해쳐 경제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 구조가 변화하면서 새로운 기술에 대한 수요가 늘고 이는 장기적으로 고용시장의 미스매치를 심화시킬 것으로 분석됐다.
미-유럽 동맹 약화로 지정학적 불안 심화
지정학적 측면에서는 약화되고 있는 미국과 유로존의 협력 및 동맹이 큰 리스크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 정치리스크 컨설팅업체인 유라시아그룹은 이를 '속 빈 동맹(The Hollow Alliance)'이라 칭하며 올해 가장 위험한 지정학적 리스크로 진단했다. 지난 70년간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유럽과 미국의 동맹은 국제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행사해 왔다.
하지만 러시아가 계속해서 우크라이나 내부 상황에 개입하고 시리아 등에서의 분쟁이 지속되면서 두 세력의 분열을 낳았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유럽이 각자의 길을 걸어가게 됨에 따라 중동 등 국제사외에서 분쟁이 발생했을 때 중간에서 소방관 역할을 해 줄 국가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난민 문제도 이어지고 있다. WEF는 '대규모 비자발적 이주 문제'가 발생가능성 기준으로 올해 최대 리스크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여기에는 전쟁 등으로 인한 난민을 비롯해 환경·경제적 문제에 따른 이주까지 포함된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금까지 595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지난해 유럽에 발을 디딘 난민만 100만명이 넘는다.
유라시아그룹은 특히 난민 문제와 함께 테러 위험, 지역별 불평등 등이 유럽을 폐쇄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난민 및 테러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는 이슬람국가(IS)는 올해에도 계속 악명을 떨칠 전망이다. IS 격퇴를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동조가 필수적이지만 각국이 서로 다른 셈법과 방향성을 가지고 의견을 쉽게 모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IS가 테러 대상 국가로 지목한 프랑스와 러시아,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미국을 비롯해 수니파 이슬람교도가 많은 이라크와 레바논 등의 테러 위협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
지난해에 이어 난민 문제도 지속될 전망이다. 특히 난민의 유입이 많은 유럽에서는 사회분열 및 폐쇄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사진은 지난 20일 그리스 해안에 도착한 난민들의 모습. 사진/뉴시스·AP
이 밖에도 러시아와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우크라이나가 지정학적 리스크 관점에서 요주의 국가로 꼽혔다. 서로 인접해있는 이들 4개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등 지도자들의 행동이 예측불가능 하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유라시아그룹은 "이들 국가들은 여러 분쟁에 함께 엮여있다"며 "한 곳의 지도자가 돌출행동으로 문제를 일으키면 국제사회에 큰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구온난화·물부족 등 환경문제도 심각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와 물 부족 문제 등 환경문제도 심화되고 있다. WEF는 올해 가장 큰 영향을 줄 리스크로 기후변화(1위)와 물 위기(3위)를 제시하는 등 환경문제에 주목했다. 환경 관련 리스크가 WEF의 조사에서 1위에 오른 것은 지난 2006년 집계를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현재 지구 온도는 1950년대에 비해 1℃ 가량 높은 상태다. 이산화탄소 농도도 1990년 이후 13%나 높아졌다. 지구 온난화로 사용 가능한 담수도 계속 줄고 있다. 세계 인구의 40%에 해당하는 27억명이 1년에 한달 이상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오는 2050년이면 40억명 이상이 물 부족을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중동과 북아프리카, 남아시아 지역이 물 부족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으며 북미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은 극심한 기후변화의 위험에 처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기후변화 등 환경문제는 다른 리스크를 더 악화시킬 수 있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세실리아 레예스 취리히보험그룹 최고위험관리자(CRO)는 "기후변화는 물문제와 식량난, 경제성장, 안보리스크 등 모든 문제의 심각성을 키울 수 있다"며 "그러나 지정학적 분쟁이 심화되면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정치적 협력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열렸던 파리기후협약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각국 정부의 대응에 법적 구속력을 부과했지만 아직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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