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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대만 정권교체의 교훈
2016-01-20 06:00:00 2016-01-20 06:00:00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대만에서 사상 최초의 여성 총통 당선과 8년만의 정권교체가 있었다. 차이잉원(蔡英文) 민진당 후보가 56.12%의 득표율로 31.04%에 머문 여당(국민당) 주리룬(朱立倫) 후보에게 압승을 거두었다. 함께 치러진 총선에서도 민진당은 113석 가운데 68석을 차지해 과반을 훌쩍 넘었다. 국민당은 64석에서 35석으로 줄었다.
 
선거 전부터 정권교체를 확실시하는 예측이 많았다. 집권 국민당의 ‘3대 경제실정’, 즉 부동산 가격 폭등과 경제양극화, 용두사미가 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경제교류 때문이다. 어디서 많이 듣던 문제다. 그런데 과거 박정희 정권과 혈맹의 우의를 표방하며 반공을 내세우고 부자세습까지 했던 대만 국민당 정권은 이렇게 다시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총선을 석 달 앞둔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박 대통령은 1월 13일 발표한 신년 대국민 담화에서 “안보와 경제는 국가를 지탱하는 두 축인데 지금 우리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위기를 맞는 비상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회를 탓하고 북한을 책망하며 중국과 미국의 도움을 구했다. 원인과 해법에 대한 이견에도 불구하고 진단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책무가 동시에 위기를 맞아 비상상황에 빠졌다는 자백은 자기성찰과 사과를 위한 것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분노와 책망의 전제였을 뿐이다.
 
오래 전부터 유행한 ‘유체이탈’과 ‘불통’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잘못한 것 하나 없이 나라 걱정에 여념이 없다는 대통령의 독선은 무슨 까닭일까. 경기침체와 전세난, 청년실업과 양극화, 해법 없이 표류하는 남북관계와 어떠한 성과도 이루지 못한 외교문제 등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대만의 그것에 비추어 결코 가볍지 않은데도, 여당의 선거 패배를 예상하는 견해는 드물다. 대체 우린 중국과 미국에서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할까.
 
중국의 사상가 후스(胡適)는 “권한을 쥐고 있다 보면 개인의 지식이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망각하기 쉽다. 남들이 상상도 못했던 일을 한다며 함부로 결정하고 시행하는 것은 강도보다 더 위험하다.”고 일갈한 적이 있다. 중국의 정치격언, “문신은 윗사람에게 잘못을 고치라고 간언하다 죽어야 하고, 군인은 전쟁터에서 죽어야 한다.(文死諫 武死戰)”는 말에 담긴 지혜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오로지 “진실한 사람”으로 인정받고자 곡학아세와 지록위마를 일삼는 무리들만이 득세하는 현실을 마주한다.
 
현대 중국인들의 정신적 스승이라는 지셴린(季羨林)은 “국가를 찬양하는 것만 애국이 아니다. 불만을 표출하는 것도 애국”이라고 설파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선 정권이나 국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면 이를 지체없이 ‘종북’으로 몰아가며 “북한으로 가서 살라”고 억지를 쓰는 자칭 ‘애국세력’이 창궐한다. 반인도적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종군위안부 문제를 세계에 알린 정대협을 향하여도 종북을 운운하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러니 「중국인 이야기」를 쓴 김명호 선생은 진리는 권위에 의존해야만 빛을 발한다고 한탄했다. 권위가 약한 진리는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둔갑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진리를 숭상한다면서 실상은 권위를 숭배한다. 공주님을 대하는 신민(臣民)의 자세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이들이 아직도 우리 주위엔 허다하다. 그러니 루신(魯迅)의 풍자가 예사롭지 않다. 자손이 귀한 집에 태어난 손자에게 쇄도하는 덕담, 신이 나서 극진한 대접을 하는 할아버지에게 “이 아이도 언젠가는 죽겠군요”라고 말한 이가 쫓겨났다는 이야기 말이다. 결국 불확실한 찬사를 늘어놓은 사람은 극진한 대접을 받고, 진실을 말한 사람은 쫓겨난다는 현실을 지적한 이 우화는 로마의 개선장군 행진에서 늘 외쳤다는 ‘Memento mori’와도 통한다.
 
유명한 미국 드라마 뉴스룸(The Newsroom)과 웨스트윙(The West Wing)도 새겨야 한 다. 공화당 지지자인 뉴스룸의 앵커 윌 매커보이와 민주당으로 당선된 제드 바틀렛 대통령의 당당한 모습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힘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미국 언론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뉴스란 누군가 밝혀지길 꺼려하는 정보다. 아무도 막으려 하지 않는다면 그냥 광고다.”라고 지적했다. 오늘 우리가 접하는 언론은, 특히 공영방송은 과연 뉴스를 전달하는 매체인가?
 
이번에는 짜고 하지 않는다 장담하고서 질문을 미리 전달하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연출하는 대통령 기자회견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여러 질문을 모두 기억한다며 고개를 숙인 채 답변을 읽은 우리 대통령은 앞서 살핀 중국과 미국의 사례를 과연 도움이라 여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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