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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세이)스포츠인들의 기계적 '사과', 언제까지 통할까
2016-01-15 15:20:51 2016-01-15 17:35:23
[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위기관리가 주목받는 시대다. 관련 책들을 훑어보면 솔직함이 해법이다. 드러난 위기를 똑바로 쳐다보는 게 첫째다. 빠른 인정과 그에 따른 대처를 세우는 건 그 다음이다. 사안을 정확히 인지한 뒤 솔직하게 대응하는 게 최선이란 얘기다.
 
최악의 대처는 최선과 정확히 반대 지점에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안을 정확히 못 본 채 솔직하지 못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그렇다. 이럴 경우 해명을 해도 궁핍한 변명이 된다. 최근 스포츠에서 이런 일들이 발생해 씁쓸함을 안긴다. 사건 사고 이후 반복되는 궁핍한 변명에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변명이 변명을 낳았고 결국 비판 여론을 부추겼다.
 
스포츠계의 위기는 주로 사회적인 범법행위에서 비롯됐다. 잊을 만하면 승부조작과 폭행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금지 약물 사건도 나왔다. 입시 비리도 터졌다. 인기종목과 비인기종목 가릴 것도 없었다. 선수와 감독 모두가 그랬다. 체육단체 행정가들도 빠지지 않았다. 굳이 과거 당사자들의 실명을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때마다 스포츠 면은 사회 면으로 변했다. 법원과 검찰 같은 단어가 튀어나왔다. 뒤를 이어 변호사를 통해 반박과 해명이 전해졌다. 나중에는 구속과 징계라는 살벌한 조치가 어김없이 방점을 찍었다.
 
그러나 막판까지도 당사자는 없었다. 일이 터지면 해당 스포츠 인사들은 입을 다물었다. 팀과 팬들을 위해 열심히 뛰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이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개인 성적이 아닌 팀 성적을 위해 달리겠다는 이들의 발은 움직일 줄 몰랐다. 팬들에게 보답하겠다는 감독과 체육계의 발전을 위하겠다는 행정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온갖 추측이 난무할 때쯤 취재진과의 숨바꼭질이 끝났다. 뒤늦게 그들은 스포츠 현장에서 성숙한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앵무새처럼 말했다.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태도다. 운동장 밖에서 저지른 일을 운동장에서 해결하겠다니, 직장인이 회사 밖에서 물의를 일으킨 뒤 회사에서 성숙한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논리다.
 
그들은 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운운하곤 했다. 관심과 사랑을 먹고 사는 만큼 입 다물고 스포츠 현장에서 증명하겠다고 했다. 소통이 화두인 시대에 역행하는 태도다. 게다가 팬들도 이제는 알 만큼 안다. 여전히 선수들에게는 팬이 아닌 모기업과 구단이 먼저다. 기업의 지원이 없으면 스포츠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걸 다수가 안다.
 
늦게라도 팬을 끼워 넣고 싶었다면 방법은 하나였다. 위기에 빠진 당사자가 해당 잘못을 구체적으로 인정하는 게 먼저였다. 뭉뚱그려서 죄송하다고 할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제가 이러저러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입을 열어야 했다. 그 다음에 '어떠한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에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고 반성하는 모습이 필요했다. 특히 선수들의 경우 구단 홍보팀이나 에이전트 통해서 사과문 하나 달랑 발표하는 건 오히려 비판의 활시위를 당기는 짓이다.
 
덧붙이자면 그들의 사과 타이밍도 늘 최악이었다. 사건 사고의 당사자들은 처음부터 모르쇠로 일관하다 잘못이 밝혀지면 그제야 큰 잘못이었는지 몰랐다고 어설프게 사과했다. 하나 사과할 것을 두 개, 세 개로 늘렸다. 그마저도 이미 시간이 한참 지나서였다. 이런 게 반복되다 보니 비슷한 일만 터져도 대중이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가혹해지는 것도 당연지사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잘못은 일어나고 위기는 오기 마련이다. 스포츠라고 항상 공명정대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스포츠맨'다운 모습을 보고 싶다. 잘못을 인정한다고 해서 패배자가 되는 게 아니다. 스포츠인들이 사회 구석진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어설픈 변명과 모르쇠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임정혁 기자 komsy@etomato.com
 
지난 8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열린 해외 원정 도박 관련 상벌위원회에서 양해영 KBO사무총장(가운데)을 비롯한 상벌위원들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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