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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슬블로어'의 삶…고난과 시련, 그리고 희망
내부고발자들, 징계와 집단 따돌림으로 결국 조직 떠나
환호와 비난, 우리사회의 이중성…내부고발의 최대 난제
2016-01-13 07:00:00 2016-01-13 07:00:00
휘슬블로어(whistle-blower). 조직 내 부정행위를 호루라기를 불어 지적하는 사람으로, 흔히 ‘내부고발자’를 일컫는다. 기업이나 정부기관 등에서 벌어지는 부패·불법·비리 등 부정행위에 대해 감시하고, 이를 언론 등 제3의 기관에 제보함으로써 스스로 불법과 부정에 맞선 사람들이다. 최근에는 영화 '내부자들'을 통해 정치와 재벌, 언론에 대한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이 드러나기도 했다. 현실 속 휘슬블로어는 권선징악의 통쾌한 영화 결말과는 많이 다르다. 공익을 위해 자기희생적 고발을 했음에도 조직으로부터 배신자로 낙인 찍히면서 고난과 시련을 쓸쓸히 감내해야 한다. 손가락질 속에 동료로부터 버림 받고, 사회에서도 역할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종국에는 밀려드는 후회에 입을 다물게 되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현실이다. 내부고발자의 삶과 그들이 바로 잡으려 한 부정에 대해 추적하고, 법제도 등의 개선을 통해 그들의 인권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를 살폈다. (편집자)
 
사진/뉴스토마토
 
내부비리 폭로, 결과는 '해고'…만신창이가 된 삶
 
효성중공업에서 16년간 근무했던 K씨. 그는 회사에서 공공연히 자행되던 부정행위에 대해 회사 감사팀에 폭로했지만, 개선조치는커녕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만 싸늘해졌다고 말했다. 심지어 인사조치도 이어졌다. K씨는 효성중공업 PG장(부사장)이었던 조현문 변호사의 행동을 보고 용기를 냈다. 조 변호사는 조석래 회장의 차남으로, 총수 직계로서는 이례적으로 그룹의 비리를 폭로하는 내부고발자의 길을 걸었다.
 
형인 조현준 사장의 횡령 및 배임 혐의와 함께 이를 은폐, 조작하기 위한 부모의 그릇된 사랑도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검찰 고발 등 법정싸움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때로는 언론을 통해 진실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믿기 어려운 내용들이 그의 입을 타고 세상에 공개됐다. 일각에서는 조 변호사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주목, 그 저의를 따지는 데 주력했다. 효성 측 역시 그에게 '패륜아'라는 주홍글씨를 새기며 반격을 폈다.
 
K씨도 조 변호사의 길을 따라 걸었다. 그는 지난해 9월 가상수주로 실적을 부풀리고, 또 ERP(전사적 자원관리) 교체 때 이를 털어버리는 수법의 회계 부정 의혹과 함께 오랜 관행으로 치부되던 특약점 문제를 본지에 제보했다. 그가 갖고 있던 내부자료가 증빙됐다. 이를 계기로 그해 10월 말 금융감독원이 총수 일가의 분식회계 및 비자금 조성 의혹 등에 대한 회계감리에 나서는 등 사건은 일파만파 커졌다.
 
K씨는 끝내 지난해 11월26일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는 당시 심정을 사형선고를 받은 기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보다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동료들의 집단 따돌림이었다. 한 통의 이메일로 내부고발자의 길로 들어선 그를 지난달 서울 모처에서 어렵게 만났다. K씨는 "42개월 된 쌍둥이 딸을 둔 아빠로 비겁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며 "16년간 다닌 우리 회사가 멍들고, 상처받고, 아무런 치료를 받지 못하면서 방치된 모습을 더 이상 숨죽인 채 볼 수만은 없었다"고 말했다.
 
회사는 그를 버렸지만, 그는 여전히 '우리 회사'라고 했다. 그는 2000년 입사해 영업, 한 분야에서만 16년간 근속하며 5번의 포상을 받은 베테랑이었다. 해고사유는 '근무태만'과 '지시불이행'이었다. 그는 "제 소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싸워 소중한 일터로 복귀하겠다"고 다짐했다. K씨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부고발을 대하는 이중성…고발자 색출과 집단적 따돌림 
 
지난 2012년 8월 포스코와 계열사들이 동반성장 실적자료를 허위로 제출해 부당 인센티브를 지급받았다는 사실도 내부고발에 의해 세상에 드러났다. J씨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주관하는 '동반성장 실적평가'에서 포스코가 우수한 평가를 받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계열사 동반성장 담당직원들에게 무리한 조작을 유도했다고 폭로했다.
 
J씨는 공익신고자의 경우 제보자의 신분이 법으로 보호된다고 판단해 이 같은 내용의 내부 비리를 포스코가 시행하는 '신문고’에 신고했다. 그는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라 자신이 완벽한 보호가 될 것이라 여겼지만, 이는 너무나도 순진한 생각이었다. 오히려 자신의 정체가 탄로나면서 고초만 겪었다. 사무용 PC와 전화기가 없는 자리에서 반성문을 쓰듯 '직장예절'에 대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는 것이 일과의 전부였다.
 
동료 중에서도 누구도 그에게 선뜻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 그는 취재팀과 만나 “가족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과 고통을 보면서 가슴이 찢어졌지만, 불의를 보고도 나서는 동료가 없다는 점이 더 큰 상처가 됐다"고 말했다. J씨는 끝내 포스코를 그만뒀고, 호루라기재단 사무차장으로 근무하다 현재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J씨는 "공익제보에 대해 대다수 사람들은 동의하고 박수를 보내지만, 정작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내부고발이 나오면 손가락질을 한다"고 이중성을 지적한 뒤, "조직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고발자 색출과 집단 따돌림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라고 말했다.
 
박흥식 중앙대 교수와 이지문 호루라기재단 상임이사, 이재일 국책연구기관 연구원 등은 지난 2013년 미국과 영국의 내부고발자 NGO 단체인 'GAP'과 '직장과 공적 관심'(Public Concern at Work)의 도움을 받아 국내 내부고발자 33명과 지난 20년간 내부고발자 사회적 지원을 맡아왔던 7명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우선 응답자들은 내부 비리를 고발할 경우 받는 피해로 ▲직업·고용 상실(4점) ▲육체적·정신적 어려움(4점) 등을 가장 먼저 꼽았다. 이어 ▲재산·금전적 피해(3점) ▲가계 생활비 부담(2점) ▲가족 고통과 곤란(2점) 순이었다. 또 내부고발자가 제기한 비리 유형은 ▲부패(4점) ▲법위반(3점) ▲부당한 결정(1점) ▲심각한 정책·관리 실패(1점) ▲막대한 재정 낭비(1점) ▲권한 남용(1점) 순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내부고발은 예견된 고난으로, 육체적·경제적·정신적으로 극심한 고통이 뒤따른다. 신분이 노출될 경우 조직 내에서 심각한 보복이 이어지는 것도 부지기수. 여기에다 잠재적인 고발자에 대한 경계와 경고의 메시지로 제2, 제3의 피해를 양산한다. 
 
"그들이 있어 희망도 있다"…내부고발, 세상을 변화시키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Time)은 2002년 올해의 인물로 3명의 내부고발자를 선정했다. 월드컴의 회계부정을 폭로했던 내부감사역 ‘신시아 쿠퍼’, 9·11 테러 직전 지부의 수사 확대 요청을 본부가 묵살했다고 폭로한 전 FBI 요원 ‘콜린 롤리’, 엔론의 회계 부정을 폭로한 전 부회장 ‘셰런 왓킨스’가 그 주인공이다. 타임은 이들이 미국의 미래이자, 희망이라며 표지 모델로 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내부고발자의 제보를 통해 사회적 변화를 이끈 긍정적 변화가 많다.
 
현재 호루라기재단 상임이사로 있는 이지문씨는 지난 1992년 3월 육군 9사단 중위로 복무할 당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과정에서 공개투표, 대리투표, 여당 지지 정신교육 등 군 부재자투표 부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파문이 커지면서 그는 이등병으로 파면됐다. 3년간 법정투쟁을 벌인 끝에 1995년 2월 대법원으로부터 파면처분 취소 확정 판결을 받아 중위 신분으로 명예 전역했다.
 
그의 고발은 군 부재자투표를 개선하는 시발점이 됐다. 국방부는 군 부재자투표 장소를 영외로 바꾸고 1992년 12월 대통령선거부터 이를 시행하면서 군 부정선거 시비가 사라졌다.
 
또 2003년 9월에는 대한적십자사 중앙혈액원 운영과 김용환씨와 총무과 최덕수씨가 동료 2명과 함께 에이즈와 B형 C형 간염, 말라리아 바이러스에 감염된 혈액을 환자 수혈용과 의약품 제조용으로 공공연하게 유통한 사실을 언론에 제보했다.
 
당시 감사원 감사와 내부조사 결과, 오염된 혈액을 통해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이 6명, 간염 감염 10명, 말라리아에 감염된 사람 4명이 확인됐으며, 매독균에 감염된 혈액이 유통된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적십자가 비밀누설 혐의로 이들을 고소해 2003년 12월 긴급 체포된 뒤였다.
 
하지만 이들의 제보로 정부는 혈액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국무총리실 산하에 혈액안전관리개선기획단을 설치했고, 보건복지부에 혈액 안전 관리 전담 부서인 혈액정책과를 신설하는 등의 후속조치가 뒤따랐다. 이처럼 내부고발자를 통해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이뤄졌지만, 제보자에 대한 보호나 보상은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김용환 '공익제보자와 함께하는 모임' 대표는 “내부고발을 누가 했느냐가 아닌, 왜 했는지에 대해 먼저 의구심을 가지고 잘못된 것에 대해 개선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면서 “또 내부고발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촉구하기 이전에 나부터, 내 직장부터, 내 동료부터 청렴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택 기자 ykim98@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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