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영삼 대통령의 유산
2015-11-22 13:19:18 2015-11-22 13:19:18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대한민국의 제14대 대통령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유명을 달리했다. 서거직전 여러 차례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결국 정치거인은 깊어진 병을 이겨내지 못했다.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는 고인의 말을 떠올리면 언제까지고 강철 체력으로 불같은 웅변을 토해낼 것 같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다.
 
평생 숙명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미 6년 전에 고인이 되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정치 입문시켰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7년 전에 세상과 이별했다. ‘삼김 시대’의 주역 중에서 이제는 김종필 전 총리만 남았다.
 
5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이후에 김 전 대통령은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다. 무엇보다 임기 막바지에 밀어닥친 IMF외환위기 사태로 퇴임 무렵 김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한자리 수에 그칠 정도로 곤두박질쳤다. 국민들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IMF 국가부도 사태에 대한 여파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서 김 전 대통령은 하위권을 면치 못한다.
리서치앤리서치가 지난해 12월 20~22일 실시한 조사(전국1000명 유무선RDD전화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에서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중 어느 대통령이 임기 중에 가장 많은 업적을 남겼는지’ 물어본 결과, 김 전 대통령은 채 1%조차 나오지 않았다. 더 나은 업적을 남긴 대통령을 우선 선택한 탓도 있겠지만 김 전 대통령에 대한 모든 평가를 임기 막바지에 터진 IMF 외환위기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국가 경제 위기가 초래된데 대한 잘잘못은 따져야겠지만 그의 전 생애를 한 부분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보다 더 체계적이고 객관적일 필요가 있다. 어떤 대통령이든 공과는 있게 마련이다. 어떤 대통령이라도 잘한 일만 있지 않고 어떤 대통령일지라도 잘 못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다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평가를 통해 더 나은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도록 전직 대통령의 성공한 사례와 실패한 사례가 함께 공유되어야 한다. 고인이 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 역시 시기별로 나누어 객관적인 재조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대통령이 되기 이전, 대통령 임기의 전반부와 후반부, 그리고 퇴임 이후로 나누게 된다. 박정희 정권하에서 오랜 시간동안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 온 공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1971년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평생의 라이벌이 된 김대중 후보가 지명되었음에도 흔쾌에 결과에 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김대중 당시 후보의 선거유세를 지원하는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멀어진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늘 함께였던 두 사람의 관계는 민주화라는 가시밭길에서 친구를 넘어 동지였다. 1978년 김 전 대통령은 YH 여공 사건을 빌미로 정권에 의해 의원직에서 제명되었다. 그러나 정권에 굴복하지 않았다.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기위해 일순간 죽는 길을 택하겠다.’ 며 ‘민주화’의 의지를 더 다져갔다. 1983년 전두환 정권하에서는 광주민주화 운동 3주기를 맞아 ‘민주화 5개항 수용’과 야당인사 석방을 요구하며 한국 정치사의 한 획을 그은 ‘23일 단식’ 농성에 들어가기도 했었다. 마침내 1987년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내며 정치 민주화의 중요한 다리를 놓는데 혁혁한 기여를 하였다.
 
이후 3당 합당으로 다소 정치적인 해석이 엇갈리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군사정권의 종식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 대목이다. 합당 명분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은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 호랑이굴로 들어간다.’고 설명했었다. 실제로 집권직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주도하여 만들어진 군의 특정인맥 조직인 ‘하나회’를 전격적으로 해체해 버린다. ‘역사바로세우기’를 통해 친일잔재를 청산하고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법의 심판대위에 세웠었다. 정경유착을 뿌리 뽑기 위해 전면적으로 ‘금융실명제’를 추진해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임기초반 90%에 육박하는 김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당시의 상황을 잘 설명한다.
 
임기후반 아들의 정치개입과 비리사태 연루로 국정 운영이 흔들렸고 임기 마지막 순간 IMF경제위기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여론은 급격히 냉각된 채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재임기간동안 미흡한 점이 있었더라도 김 전 대통령의 전 생애를 돌아보면 한국 사회와 한국 정치에 기여한 업적이 단언컨대 가볍지가 않다. 군부 통치의 서슬이 퍼런 시기에 개인적 희생과 민주화 열정은 그 누구보다 더 컸던 인물이었다. 정치적 혐오가 극에 달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가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야 하는 정치권에 그리고 우리 사회에 전직 대통령의 유산으로 ‘빛과 소금’이 되면 좋겠다.
 
배종찬(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