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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블록딜' 범죄, 직무 관련성 따라 유무죄 갈려
증권사 개설계좌 주식 처분시만 직무 관련성 인정, 개인 지위에서 처분은 무죄
2015-11-17 06:00:00 2015-11-17 09:28:54
'불법 블록딜' 방식으로 거액의 뒷돈을 챙긴 외국계 기관투자자 등 세력 일당이 무더기로 기소된 데 이어 검찰 수사가 국내 기관투자자들을 향해 빠르게 번지고 있다.
 
KDB대우증권 김모 팀장과 KB투자증권 김모 팀장, 박모 이사 등 지난달 구속된 증권사 관계자들이 최근 기소됐거나 조만간 기소될 예정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코스닥상장사 전 대표 문모(55)씨로부터 6억9000만원을 받고 문씨의 주식 45만주를 블록딜 거래로 팔아치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일단 이들 임직원의 범죄가 회사와는 관련이 없는 개인 범죄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은 금융기관 임·직원으로서 그 직무에 관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확인되면 특경가법상 수재 등 혐의로 기소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불법 블록딜' 수사 확대
 
검찰은 이들 외에도 불법 블록딜 수법으로 거액을 챙긴 국내기관투자자들에 대한 수사범위를 넓히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대상을 한정하지 않고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본시장법 영역에서의 증권범죄는 크게 시세조종, 미공개중요정보이용행위, 부정거래 등 3가지로 나뉜다. 불법 블록딜은 금융기관 임·직원이 직무와 관련해 돈을 받고 부실기업 대주주의 주식을 불법으로 처분해주는 수법으로 자본시장법 위반 보다는 특경가법 위반사항이라는 것이 검찰과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 관계자의 설명이다. 때문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의 불법 블록딜 범죄도 자본시장조사단과의 공조 없이 검찰이 독자적으로 진행 중이다.
 
 
블록딜은 시간외 대량매매 방식이다. 매도자나 매수자가 대량으로 거래할 경우 장 중 거래가 이뤄진다면 해당 주식의 시장가격이 급등락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 허용된 합법적 거래다. 그러나 대량거래의 특성상 과거부터 불법 수수료 등 대가를 수반한 불법 블록딜이 있어왔다.
 
2013년 서울중앙지검에서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을 역임한 문찬석 서울남부지검 2차장은 "불법 블록딜 사건은 과거에도 있었다. 주가조작 사범을 대량으로 검거하느라 여력이 없어 수사를 못했을 뿐"이라며 검찰이 불법 블록딜 범행을 그동안 예의주시해왔음을 내비쳤다.
 
검찰이 불법 블록딜 범행을 집중 수사 중인 배경에는 최근 들어 블록딜 범행이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 관계자는 "과거에는 불법 블록딜 관련 첩보나 인지사건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며 "시장에는 꾼들이 많이 모인다. 그때그때 유행하는 수법이 다르다"고 말해 이 같은 분석에 무게를 실었다.
 
◇금융거래질서 교란 등 죄질 나빠
 
검찰이 불법 블록딜로 주가조작에 개입한 혐의로 최근 외국계 기관투자자 임직원과 브로커들을 무더기로 기소하면서 법원 판단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불법 블록딜의 위법성은 금융거래질서를 교란하고 금육기관 임직원 직무수행의 공정성과 첨령성, 그리고 그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했다는 데 있다.
 
최근까지의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단장 김형준 부장검사) 수사결과나 법원 판결을 분석한 결과 불법 블록딜의 대표적인 범죄 유형은 불법 브로커들이 개입된 알선·수재 행위로 집약된다. 브로커 역할은 대개 현직 고위 증권업계 관계자들이 맡았다. 이들은 자신들의 직무와 관련해 오랫동안 쌓아온 인맥을 이용해 매수자와 매도자를 이어주고 불법적으로 대가를 챙겼다.
 
이들이 얻은 대가는 중개 상인이나 증권업자가 고객의 위탁을 받아서 물건이나 증권을 매매하고 얻는 수익으로서의 합법적인 '브로커리지(brokerage)'와는 다르다. 매도자가 대량의 주식을 급히 처분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 사건의 시발점이 된다.
 
법원 판결에 따르면, 블록딜 과정에서 오간 '뒷돈'의 성격에 따라 유·무죄가 갈린다. ‘직무와 관련이 없는 개인적인 친분'에 의해 주어진 경우는 처벌하지 않지만 '직무와 관련해 대가성’이 인정되는 경우는 처벌 대상이다.
 
블록딜 관련 알선·수재 행위는 특경가법 5조(수재 등의 죄)에 의거해 처벌된다. 금융회사 등의 임직원이 그 직무에 관해 금품이나 그 밖의 이익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하였을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금융기관은 특별법령에 의해 설립돼 그 사업 내지 업무가 공공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금융기관 임·직원에게 일반 공무원과 비슷한 수준의 청렴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지난 2000년 2월 처벌대상이 되는 금융기관 임·직원의 업무 범위를 규정하는 선고를 한 바 있다. 대법원은 “특경가법 5조의 ‘금융기관 임·직원이 직무에 관하여’라 함은 금융기관의 임·직원이 그 지위에 수반해 취급하는 일체의 사무를 말하는 것으로서, 그 권한에 속하는 직무행위 뿐만 아니라 그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무 및 그와 관련해 사실상 처리하고 있는 사무도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그렇다고 해서 금융기관 임·직원이 개인적인 지위에서 취급하는 사무까지는 포함된다고 할 수 없다"고 처벌대상에 제한을 뒀다.
 
◇대법원, "개인적 지위 사무는 제외"
 
이 때문에 블록딜의 경우도 해당 '브로커 행위'가 금융회사 등의 임직원 직무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 대가성 있는 금품을 수수한 것인지, 아니면 직무와는 관련이 없는 순수한 개인적인 지위에서 취급된 것인지 여부가 블록딜 거래의 유·무죄를 가르는 주요 쟁점이다.
 
최근 사실관계가 비슷해 보이지만, 이 같은 기준에 따라 유·무죄가 확고하게 갈린 사건들이 있었다.
 
먼저 블록딜 관련 알선·수재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A증권사의 국제영업부장 정모씨의 사건이다. 정씨는 지난 2009년 10월 다른 증권사 직원 유모씨로부터 "W사 보통주 400만주 블록딜 매수자를 물색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현금 5000만원을 받고 이를 실행에 옮긴 혐의(특경가법 수재 등)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 6월에 벌금 5000만원, 추징 5000만원을 선고받았다.
 
매도자측으로부터 이 돈을 받아 정씨에게 건넨 혐의(특경가법상 증재)로 기소된 유씨에게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정씨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와 상고를 거듭했지만 결국 형이 확정됐다.
 
이 사건 1심 법원인 서울남부지법 형사12부(재판장 박종택)는 "정씨가 유씨에게 블록딜 매수자를 물색해주는 대가로 현금 5000만원을 먼저 요구해 수수했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정씨와 유씨가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기는 했으나 서로 다른 회사였고, 정씨가 매도인측과 친분이 있었을 뿐 유씨와는 별다른 친분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씨가 유씨와의 개인적 친분에 의한 사례였다고 주장하면서 직무 대가성을 부정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또 유죄의 근거로 당시 "W사가 적자 상태였고, 거래량도 많지 않아 보통주 400만주를 매수하려는 자 적었다"는 점 등을 들었다. 이어 "W사의 블록딜 할인율 15%에 이를 정도로 컸고, 블록딜 매도인측은 유씨가 블록딜 체결을 위해 5000만원 필요하다고 하자 바로 제공할 정도로 W사의 주식을 급히 매도해야 하는 상황에 있었다"면서 "매도인측에서 거래 성사 전 매수인측에 돈을 제공할 유인이 컸다고 보인다"고 판단했다.
 
반면, B투자증권사 서초지점장 김모씨의 경우는 직무관련성이 인정되지 않아 무죄를 선고 받았다. 김씨는 같은 지점 부장 송모씨로부터 "지점 가장 큰 고객인 신모씨가 금감원에서 시세조종 등 혐의로 조사받고 있어 보유주식에 대한 처분 필요하다"며 "신속한 처분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후 서초지점 고객 이모씨를 주선해 2011년 11월 블록딜 방식으로 부탁 받은 주식 20만주를 19억원에 매도했다. 이후 김씨는 신씨가 송씨를 통해 준 5000만원을 대가로 받은 혐의(알선수재)로 기소됐다.
 
1심은 “김씨는 근무지점 고객인 신씨의 주식 처분과 관련해 돈을 받은 이상 이 돈은 금융회사 등의 임직원 직무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 수수된 것”이라며 징역 3년 6개월에 벌금 5000만원, 5000만원 몰수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항소심은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이승련)는 최근 “김씨가 받은 돈은 임직원 직무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 수수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도 “신씨와 이씨의 주식거래는 B투자증권 서초지점장의 지위에서 취급한 사무가 아니라 B투자증권과는 무관하게 송씨와의 사적인 친분 등에 의해 기초해 취급한 사무”라고 판결했다.
 
◇"증권사 계좌 주식 처분반 '직무상 처분'"
 
재판부는 또 “이 사건 주식 거래는 거래행위자, 거래장소, 거래된 주식의 보관처, 거래방법 등에 비춰 성질에서나 외형상으로도 B투자증권이 취급한 주식거래로 보기 어렵고 이씨와 신씨가 개인적으로 처리한 블록딜 매매계약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씨의 형사책임 역시 B투자증권 서초지점장으로서 직무에 관해 금품을 수수한 경우에만 발생하는 것이지 B투자증권 직무와 무관한 다른 증권사의 직무나 사적 거래와 관련해 금품을 수수하는 경우까지 확장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김씨가 블록딜 거래를 성사시켜준 신씨와 이씨가 해당 증권사의 고객이라고 해서, 고객이 보유한 모든 주식의 처분이 해당 증권사, 즉 김씨의 업무가 되는 것이 아니다"며 "고객이 해당 증권사에 개설한 계좌에 보관하던 주식을 처분하거나 그 계좌로 주식을 매수한 경우에만 B투자증권 서초지점장으로서 김씨의 업무"라고 밝혔다.
 
한편 검찰의 불법 블록딜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증권가에서는 블록딜 거래가 눈에 띄게 줄고 있어 건전한 블록딜 시장의 위축도 우려되고 있다.
 
여의도의 한 증권사 관계자는 "합수단이 수사를 집중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은 당분간 조용할 것"이라며 "블록딜을 주선하는 사람들도 불똥이 튈까봐 지금은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투자사 관계자도 "블록딜은 합법적인 법인영업이고 오랫동안 진행되어온 방식이라서 개인투자 등은 크게 영향을 받을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때가 때이니만큼 엮이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는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우찬·방글아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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