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고통 분담하자고 하는데, 유럽에 '살찐 고양이법'이라고 있어요. 살찐 고양이들(배부른 자본가) 살 들어내는 게 고통 분담입니다. 200만원도 못 받는 940만 노동자들은 졸라맬 허리띠도 없어요."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지난 9월11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쓴소리를 쏟아냈다. '노동개혁' 과제에 포함된 임금피크제 때문이었다. 장관은 1억2000만원씩 받고, 고액 임금 받는 사람들은 그대로 두면서 노동자에겐 왜 임금 상한제를 시행하느냐는 얘기였다. 심 대표가 발언하는 영상은 인터넷에서 200만 건에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했다. 살찐 고양이법, 이른바 최고임금제를 둘러싼 논의도 야권에서 활기를 띠고 있다.
정의당은 1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학계·시민단체와 '대기업 고위 임원 최고임금제 도입 방안' 토론회를 연다고 15일 밝혔다. 정의당 김용신 정책위의장은 "노동시장 양극화, 청년 실업, 고용 없는 성장 문제의 해결은 재벌개혁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며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높이는 방안의 하나로 최고경영자(CEO) 등 고위 임원에 대한 최고임금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 정책위의장은 "최고임금제는 1760개 상장 기업의 등기 임원 1만929명은 물론 비상장 기업을 포함한 모든 고위 임원을 대상으로 평균 임금의 20배 수준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원과 직원 사이의 임금 격차는 상식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경제개혁연구소가 지난해 '임원 보수 공시'를 분석한 결과, 삼성전자에서 최고 보수를 받은 임원(145억7300만원)과 일반 직원(1억200만원)의 보수 차이는 143배에 달했다. 격차가 큰 상위 10개 기업에서 임원과 직원의 보수는 63.5배나 차이가 났다. 연구소는 "100배가 넘게 보수 격차가 나는 사례만 5건이었다"며 "성과·기여도에서 비롯되지 않은 격차는 회사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위화감이 생길 우려가 있으므로 합리적인 보수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원 보수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미 야권과 노동계를 중심으로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8월11일 "총수 일가 재벌은 별다른 사유 없이 미등기 임원으로 전환해서 지배주주의 책임을 행하지 않고 고액 보수를 수령하는 경우도 많다"며 "기업 임원의 보수를 제한하는 사례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올해 초 성명을 내고 "노동시장 양극화를 해소하고, 청년일자리를 만들려면 최저임금의 12배가 넘지 않도록 하는 최고임금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도 지난 5월 30대 그룹과의 간담회에서 "일부 대기업 CEO의 고액 연봉은 지나친 감이 있다. 고액 임금을 받는 상위 10%가 임금 인상을 1% 정도 자제하면 6만 명의 청년이 취업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임원 보수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전세계적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살찐 고양이법'을 제정한 스위스가 대표적이다. 스위스는 지난 2013년 국민투표에서 기업 임원 연봉과 보너스를 제한하는 헌법 개정안을 67.9%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미국도 '도드-프랭크법'으로 경영진 보수에 대해 주주의 의견을 묻도록 했다. 프랑스와 독일에선 공기업이나 금융기관에 임금 상한을 두려는 움직임이 있다. 반면 한국은 2013년에야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5억원 이상의 임원 보수를 공개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5월 '한국의 노동시장 진단과 과제' 보고서에서 "한국의 임금 불평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 다음으로 심하다"며 "최저임금제만으로는 이를 해소하기가 역부족이라는 점에서 최고임금제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순민 기자 soonza00@etomato.com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5월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대기업 인사 최고책임자 간담회에서 "고액 연봉으로 여론의 비판을 받는 최고경영자의 연봉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말하고 있다. 임원 보수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정의당은 16일 '최고임금제 도입' 토론회를 연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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