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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국정교과서와 긴급조치의 세 가지 공통점
2015-11-05 06:00:00 2015-11-05 06:00:00
김인회 인하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이 거침이 없다.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이어 국무총리까지 나섰다. 2017년 사용을 목적으로 한 국정교과서 추진은 속도전을 연상하게 한다. 4대강 사업처럼 건설공사를 하듯 밀어붙이고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국정체제의 역사교과서는 우리 역사에서 정상적인 체제가 아니었다. 역사교과서는 1946년부터 1973년까지, 그리고 2003년부터 현재까지 40년 동안 검정제로 운영되어 왔다. 이에 비해 국정제는 1974년부터 2002년까지 28년 동안 운영되었다. 역사교과서가 국정제로 바뀐 것은 유신시대였고 검정제로 바뀐 것은 민주정부 시대였다. 역사를 보면 검정제가 정상임을 알 수 있다.
 
교육적으로 보아도 학생들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다양성과 창의성을 함양한다는 점에서 검정제가 더 우수한 체제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에는 여야의 구분,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없다. 국정제를 추진하다 최근 경질된 김재춘 교육부 차관도 2009년 자신의 논문에서 “국가가 개발하는 국정교과서보다는 민간인이 개발하는 검·인정 교과서가 교과서 개발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더 많이 지닐 것”이며 "국정교과서는 독재 국가나 후진국에서만 주로 사용되는 제도"라고 밝힌 바 있다. 여권의 싱크태크인 여의도 연구원도 2013년 국정제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맞지 않고 다양성과 창의성 시대와 양립할 수 없다고 보아 국정제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 놓았다.
 
이처럼 역사적, 교육적, 논리적 관점에서 아무리 보아도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퇴행적이다. 철학적으로 보면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판단하고, 비판하고, 행동하는 자주적인 주체임을 인정하지 않고 조작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는 반인권적인 조치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국정화 추진은 거침이 없다. 최소한의 논리도 없이 반대하는 야당과 다수 시민을 설득하는 절차도 거치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집필기간도 1년이라는 초단기이다. 최근의 국정화 추진은 민주사회에서 정책을 추진하는 방식이 아니다. 독재시대에나 가능한 방식이다. 많은 시민들이 독재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번 국정화 조치는 법률가인 나에게 유신시대의 긴급조치를 연상시킨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단행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복원하려고 한다는 점도 근거 중의 하나이지만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긴급조치와 세 가지 측면에서 공통된다. 첫째는 독점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역사에 대한 해석권을 국가가 독점한다. 긴급조치는 헌법과 관련한 견해의 발표를 봉쇄하고 헌법 해석권을 국가가 독점했다. 독점 과정 역시 비슷하다. 광장에서 경쟁해 자연스럽게 우위를 점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힘으로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두 번째 공통점은 문제해결 방식이다. 민주사회에서는 문제가 발생하면 토론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한다.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PD수첩의 사례가 있다. PD수첩이 FTA 문제로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자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토론을 하자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그런데 PD수첩이 광우병 보도를 하자 이명박 정부는 PD를 수사하고 기소해 버렸다. 민주정부와 독재정부의 문제해결방식 차이다. 긴급조치는 헌법 문제, 민주주의 문제에 대한 토론을 봉쇄하고 비판을 원천적으로 배제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역사에 대한 비판을 원천적으로 배제한다. 집필, 검수, 평가의 모든 과정을 국가가 독점한다.
 
세 번째 공통점은 논리의 부족이다. 긴급조치는 북한의 남침 가능성 증대라는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상황인식만으로 발령되었다. 이것만으로는 긴급조치를 발령할 만한 국가적 위기상황이라고 보기는 부족하다.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긴급조치를 위헌으로 선언한 헌법재판소의 표현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역시 같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역사 교육을 통해서 올바른 국가관과 균형 잡힌 역사의식을 길러 주기 위해서”라는 명분은 너무 추상적이고 주관적이다. 이것만으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정당화할 수 없다. 나아가 정부 여당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일은 사회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사회의 다수가 국정화를 반대하는 것은 수용하지 않으면서 사회가 친일과 독재 미화를 막는 것은 허용하겠다니 도대체 앞뒤의 말이 맞지 않는다.
 
이 시대는 유신시대, 구체적으로는 긴급조치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긴급조치와 동일한 논리를 가진 이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직 대통령 임기는 남아있고 새누리당은 건재하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후에 등장할 긴급조치와 같은 괴물을 막기 위해서도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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