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맥주 시장에 공룡 탄생이 임박했다. 주인공은 글로벌 1위 맥주 생산업체 '안호이저-부시 인베브(AB인베브)'. 브라질의 작은 투자 회사로 시작해 여러 차례의 인수합병(M&A)을 통해 암베브, 인베브, AB인베브로 점차 몸집을 불려왔던 것에 이어 이번에는 2위 기업인 사브밀러를 690억파운드에 인수키로 한 것이다. 이들이 한 몸이 될 경우 버드와이저, 스텔라, 밀러 등 400여 개의 브랜드를 아우르는 거대 기업이 된다. 시장 점유율도 30%에 이를 전망이다. AB인베브는 아프리카와 중국 등 신흥 시장에서 강점을 갖고 있는 사브밀러를 품어 새로운 고객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미국과 유럽 등 규제 당국의 반독점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AB인베브와 사브밀러의 계약은 무효가 되지만 성사될 경우 사상 세번째로 큰 규모의 합병으로 기록된다.
◇세계 최대 맥주 기업 AB인베브와 2위 업체 사브밀러의 빅딜이 성사되면 글로벌 맥주 시장의 30%를 점유하게 된다. 사진은 AB인베브의 맥주 브랜드가 새겨진 맥주잔과 병맥주의 모습. (사진/뉴시스)
글로벌 M&A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앞서 설명한 AB인베브와 사브밀러의 빅딜은 시장의 활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글로벌 석유 메이저인 로열더치셀과 영국 브리티시가스 그룹, 미국 케이블 업체인 차터커뮤니케이션스와 타임워너케이블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기업들의 연합 소식이 여느때 보다도 자주 들려왔다. 9월 말 기준 톰슨 로이터가 집계한 올해의 글로벌 M&A 총 규모는 3조4000억달러에 근접했다. 작년 한 해 동안의 3조3530억달러를 이미 훌쩍 뛰어넘고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던 2007년(4조1200억달러)의 기록도 넘보고 있다. 로이터의 조사 결과가 PC 제조업체 델이 데이터스토리지 업체 EMC를 670억달러에, 미국의 반도체 제조업체 웨스턴디지털이 경쟁사인 샌디스크를 190억에 각각 인수키로 한 것을 포함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사상 최고치 달성은 보다 가까워졌다.
◇투자대신 M&A로 성장 전략 변경
올해의 글로벌 M&A는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우선 업종별로는 앞서 M&A 붐이 일었던 1999년과 2007년 각각 IT 업종과 금융업이 두각을 보였던 것과 달리 올해는 에너지, 헬스케어, IT,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지역별로도 미국과 아태지역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유럽이 2008년 이후 가장 양호한 모습을 보이는 등 고루 성과를 내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50억달러가 넘는 거래 건 수가 54건에 달한 것으로 집계된 미국의 경우 경기 회복과 달러 강세가 촉매제가 됐다. M&A 규모가 전년 대비 80% 가까이 늘어나며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운 일본에서도 엔화 약세로 이익이 늘어난 기업들이 사내유보금을 늘려 활발한 M&A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상대적으로 성장 속도가 둔화된 신흥국에서의 수요 확대가 불투명해지자 설비 투자보다는 M&A로 덩치를 키워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수익성을 유지하려는 전략적인 선택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 밖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금리 인상 이전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실탄을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대형 M&A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M&A 시장의 뜨거운 분위기가 당분간 지속될 지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각이 다소 우세하는 편이다. 다양한 업종에 M&A가 분산돼 있기 때문에 과열이라 보기 어렵고, 지금의 추세가 이어지기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의 조사 결과에서 유추한 상황도 비슷했다. 전세계 700여 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약 60%는 "과거 12개월간의 추세가 지속되거나 더 나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거래 규모에서도 75%가 "현재의 흐름 이상일 것"이라 답했다. 향후 5년간의 계획을 보더라도 대부분이 M&A에 대한 시각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조사가 글로벌 경제 환경이 비교적 양호했던 지난 5월에 실시됐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분위기가 급격히 악화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일각에서는 "유럽 투자 등급 기업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2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 신용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며 "미국 기업의 CDS도 상승 추세인 만큼 자금 조달 비용 상승 여부가 관건"이라는 경계감을 보이기도 했다.
◇빠른 성장의 지름길…실패 리스크도 적지 않아
기업들이 M&A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외형을 키울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컨설팅 기업 캐피탈쇼어스는 M&A로 얻을 수 있는 긍정적 효과로 시장 점유율 확대, 생산비용 절감, 기업 경쟁력 향상, 연구개발(R&D) 노하우 습득 및 특허 취득을 꼽았다.
맥킨지가 분석한 장점도 비슷했다. 우선은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기업의 인수를 통해 고객층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과 같은데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고객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여행 전문 웹사이트인 익스피디아, 호텔스닷컴, 핫와이어, 트립어드바이저 등이 모두 IAC 그룹 산하에서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각각의 가치를 높이고 있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또한 고객층의 확대는 자연스레 시장 점유율 확대로 이어지고 새로운 시장 진입의 발판으로도 삼을 수 있다. 보통 기업들은 핵심 사업군과 인접한 시장에서 기회를 찾는 경향이 강한데,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는 것보다 해당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는 기업을 인수하는 편이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소프트웨어 개발 전문업체 시놉시스가 소프트웨어 테스트 마켓으로 영역을 넓히기 위해 코베리티를 인수한 것이 전형적인 사례다. 이 외에 M&A를 통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도 있다. 피인수 기업의 핵심 기술이나 인재, 특허권과 같은 지적재산권 등이 인수 기업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M&A의 과실을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베스토피디아의 조사에 따르면 66% 정도의 기업 합병은 실패로 끝난다. 인수 결정 단계에서부터 피인수 기업의 가치를 잘못 평가하는 등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순조롭게 인수가 완료되더라도 조직 문화의 충돌이나 재무 상태 악화 등 예기치 못한 암초에 대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상 최악의 M&A로 평가되는 뱅크오브아메리카와 메릴린치의 사례에 이 모든 내용이 녹아 있다.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문화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물리적 합병으로 "직원 복장만 보더라도 그가 어느 조직 출신인지를 알 수 있다"는 농담이 나올 만큼 집단 간 이질감이 강했고, 부채는 예상보다 크게 증가했다. 합병이 완료되기까지 상원 은행위원회의 조사를 거치는 등 외부적인 리스크도 적지 않았다.
◇검토는 신중하게 행동은 빠르게
맥킨지에 따르면 M&A를 성공적으로 이행한 기업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됐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자사의 경쟁력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를 위해 대안 모색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전세계 700여 개 기업을 고성과 기업과 저성과 기업으로 나눠 비교 분석한 결과, 고성과 기업의 경우 인수나 조인트벤처 설립, 기업 분할을 위한 포트폴리오 검토를 일년에 한 차례 이상 수행했지만 저성과 기업은 2~3년에 한 번 정도만 겨우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공 확률이 높은 기업일 수록 잘못된 의사 결정으로 인한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신중한 태도로 자신과 상대방을 면밀히 탐색하는 것이다.
다만 고성과 기업들은 행동에 나서기로 결정하고 나서는 보다 재빠르게 움직이는 경향을 보였다. 기업 실사나 협상 테이블에 앉을 때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비교했을 때 6개월 이내까지의 비율은 비슷하게 나타났지만 그 이후부터는 고성과 기업과 저성과 기업의 답변이 갈렸다. 6개월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저성과 기업의 비율이 고성과 기업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경쟁사인 리오틴토를 인수하기 위해 장기간의 협상을 진행하다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결국 무산된 BHP빌리턴의 사례에서 보듯 굼뜬 행동은 성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와 함께 맥킨지는 고성과 기업도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을 지적했다. 첫 번째는 보수와 연관된 부분인데, 피인수 기업의 직원들 뿐 아니라 M&A 과정에 참여했던 자사 직원에 대한 인센티브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성과를 평가하기 애매할 수는 있찌만 전략적인 목표에 따라 지급돼야 한다고 맥킨지는 지적했다. 또 다른 점은 인수를 고려하고 있는 타겟 기업과 평소에도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라는 점이다. 조사 결과 저성과 기업은 물론 M&A 가능성을 항상 염두해 두고 있는 고성과 기업들도 타겟 기업과 친분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정기적인 로드쇼나 미팅 등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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