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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아래서
2015-10-15 18:49:59 2015-10-15 18:49:59
은행나무는 강하다. 사람은 느끼지 못하지만, 벌레가 싫어하는 기피물질을 뿜어내 은행나무 주변에는 벌레가 적다. 약을 칠 일이 적다. 30년생 은행나무 한 그루는 연간 14.2kg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참나무(10.8kg)와 소나무(6.6kg)보다 효율적이다. 도시의 유해기체를 흡수하는 한편 잘 견뎌낸다. 활짝 핀 잎은 여름에 그늘을 만든다. 은행나무는 빨리 자라고, 꽃가루가 날리지 않으며, 추위나 더위에 강해 가로수로 맞춤하다. 2012년 기준으로 서울의 가로수 중 은행나무는 11만 4,576그루, 전체 가로수 중 40.3%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언제부턴가 은행나무는 가을이면 원성을 산다. 보름 전만 해도 거기에 은행나무가 있었는지 모두 무심했다. 은행나무 아래서 사람들은 은행을 피하려 조심조심 걷는다.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로 나뉜다.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심을 때 수나무만 심으면 은행은 열리지 않는다. 나무가 충분히 자라기 전에는 암나무와 수나무를 구별하기 쉽지 않다. 그동안은 15년은 자라 은행이 맺히는지, 또는 그 모양을 보고 암수를 가릴 수 있었다. 지난 2011년, DNA 성 감별법이 개발됐다. 앞으로는 길에 수나무만 심을 테니 낫겠지만, 이미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자란 암나무들을 옮겨 심는 데에는 시간과 비용이 더 필요하다. 수나무는 거리에 남아서 가로수로 일하고, 옮겨진 암나무는 농가에서 은행을 맺는다.
 
몇 년 전부터 은행을 가져가면 법에 걸린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길가의 은행나무에 열린 은행에 중금속이 많다는 말도 퍼졌다. 그 뒤에는 미리 채취를 신고하고, 채취하다 발생할 수 있는 교통사고나 다른 시민의 피해 등에 주의하면 괜찮다는 안내가 나왔다. 서울에서 딴 은행의 납, 비소, 카드뮴 등의 중금속 수준은 설악산이나 지리산의 은행과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지만, 전보다 은행을 주워가는 이들은 줄었다. 찾는 이 없이 떨어진 은행은 빗자루에 쓸리느냐, 신발에 밟히느냐로 그 운명이 갈리지만, 도시에서 짐이 되긴 마찬가지. 사람이 태어나면 자라서 늙듯, 봄에는 잎이 나고 여름에는 자라 가을에는 은행이 떨어진다. 이리저리 치이고, 밟혀 터지며 욕먹는 은행을 보는 은행나무는 서글프다.
 
은행나무는 1971년 4월 3일에 서울시를 상징하는 나무로 정해졌다. 은행나무는 서울 곳곳에 심겼다. 은행나무는 산업화의 매연과 민주화의 최루가스를 마셔오며 묵묵히 그 자리에서 제 몫을 해왔다. 은행나무는 오래됐다. 고생대에 함께 나고 자란 동기(同期)들은 이미 모두 멸종했다. 야생의 은행나무 자생군락지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질적인 멸종 상태다. 수백 년 살아온 나무부터, 가로수까지 거의 모든 은행나무는 사람이 심고 돌봤다. 은행나무는 사람이 없으면 더는 번식하지 못하고 세상에서 사라진다. 
 
 
은행. 사진/바람아시아
 
‘꽈직’하는 소리와 함께 “아, 또 밟았어. 귀찮게…” 한 학생이 툴툴대며 지나간다. 그는 지팡이를 비스듬히 눕히며 천천히 몸을 굽힌다. 갖은 모양으로 짓이겨진 은행 사이에서 그나마 온전한 은행의 꼭지를 집어 든다. 새삼스럽게 은행을 쳐다본다. 살구색은 산뜻하지 않고 충충하다. 겉은 탱탱하지 않고 주름졌다. 은근하지만, 좋지 않은 냄새도 풍긴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9.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2.1%의 4배를 넘고, 보건복지부의 ‘2014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노인의 33.1%는 우울 증상을 보인다. 자기도 모르는 새 벌레로 ‘변신’당하는 요즘, 노인의 새로운 지칭은 ‘노인충蟲’, ‘틀딱충蟲(틀니딱딱충)’이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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