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누구를 위한 교과서 전쟁인가
2015-10-12 08:55:16 2015-10-12 08:56:17
우리 국민들에게 역사 교과서 문제하면 주로 떠오르는 기억은 일본 역사 교과서의 왜곡문제였다. 일본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받는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주도한 ‘후소샤’ 역사 교과서는 한국 국민들의 공적이 되었다. 2001년 과거사 왜곡 교과서의 출현과 함께 한일 관계는 더욱 냉랭해졌다.
 
전반적인 과거사를 일본 우익의 시각에서 다루었고 한반도 침략과 위안부 관련 내용을 사실과 다르게 기술한 것으로 지적받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후소샤’ 교과서가 발행 당시 많은 학교에서 채택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일본 사회가 교과서 시장에서 문제 많은 역사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는 합리적인 상식을 보여준 대목이었다. 그러나 아베 정권 들어 군국화, 우경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과거사 왜곡 가능성은 다시 재점화 되었다. 가장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할 교과서 문제가 정치적 판단에 놀아나는 아찔한 현상이다. 미국 역사교과서까지 마수의 손을 뻗치려는 작태에 대해 양심적인 세계 역사학자들의 심각한 반발을 초래하지 않았는가.
 
남의 일처럼 여겨졌던 교과서 문제가 최근 우리의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단순한 고민거리가 아닌 진영간의 전쟁 양상이다. 총부리만 겨누지 않았을 뿐 서로간의 격한 대립은 이미 임계선을 넘어선 상황이다. 갈등 조정자가 되어야할 정치권과 정부, 그리고 시민사회는 이념적 입장에 따라 오히려 갈등 유발자가 되고 있는 상태로 발전되었다. 한발 양보도 한 치의 타협도 없다.
 
교과서와 관련된 본질적인 문제는 가려진 체 관련된 모든 이슈는 ‘국정교과서’와 ‘검정교과서’의 문제로 변질되어 버렸다. 국민들은 역사와 함께 하고 역사에 관심 많은 대중이지 학문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전문가 집단은 아니다. 한국사 교과서와 관련된 갈등 요인이 있다면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판단하고 조정하면 될 일이다. 한국사 교과서 전체에서 초래되는 갈등을 단 한단어로 표현하긴 어렵겠지만 ‘인식 차이’가 결정적이다. 보수적인 사관에서 역사를 바라본다면 진보적 사관으로 비쳐지는 역사 기술에 상당한 불만을 내재하고 있을 것이다. 반대로 진보적인 사관에서 교과서 내용을 본다면 수구적 입장으로 느껴지는 역사 기술에 당연히 문제 제기를 하게 될 것이다.
 
이런 차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예상 가능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접근은 다양한 입장을 상호 이해하고 존중하는 인식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충분한 시간과 순차적 실행이 가능하다면 학계에서의 이성적인 연구가 불가능하지 않으리라 본다. 적어도 성급한 정치권의 개입과 영향이 철저히 차단된다면 말이다. 일본에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교과서 문제에 정치권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 모습은 꼴불견이다. 정치권에서 ‘한국사 교과서’ 문제와 관련해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며 다투는 동안 우리 국민들 또한 난데없는 교과서 문제를 놓고 서로간 갈등은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 2일 실시한 조사(전국500명 유무선RDD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4.4%P)에서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계에 대해 무엇을 더 선호하는지’ 물어본 결과, ‘국정교과서를 선호한다’는 의견인 42.8%였고 ‘검정교과서를 선호한다’는 응답은 43.1%였다. 모세가 홍해바다를 갈라놓듯 국민여론은 반분된 상태로 나타났다.
 
이념적으로 보수적이고 정치성향은 새누리당이며 50대와 60세 이상에서는 ‘국정교과서를 선호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이와는 달리 진보적이고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층이며 2030세대에서는 ‘검정교과서를 선호한다’는 의견이 절대 다수였다. 과연 국민들이 교과서의 내용이나 국정교과서와 검정교과서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어 판단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념 대결을 펼치고 있는 정치권의 전략에 편승한 결과로 해석된다. 교과서는 단순히 이념 문제로 판단될 수도 없고 국민대다수는 논란의 배경이 되고 있는 문제에 대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정보가 없는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주도하는 전쟁에 휘말려있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다. 대통령도 정치권도 이념적 시민단체들도 교과서 문제를 학생들과 학교와 학계에 순순히 돌려주어야 한다. 발행 체계를 어느 하나로 정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내년에 수능필수로 한국사 시험을 치러야 하는 학생들의 혼란은 누가 해결할 것인가. 앞으로 교과서 집필에 있어 이념적 객관성은 누가 검정하고 누가 조정할 것인가. 한국사 교과서 문제로 촉발된 이념 전쟁의 골은 누가 메울 것인가. 교과서 문제가 확산될 2018년 교육감 선거 홍역의 후유증은 누가 치유할 것인가. 교과서 문제를 논하기 전에 장차 후손들이 지금의 역사를 돌아볼 때 우리 선조들은 ‘한국사 교과서 문제’로 많은 국가적 과제들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는 원망을 누가 답할 지부터 먼저 정해야 한다.
 
 배종찬(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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