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인사이트)'디지털 지수'를 아시나요…기업 성장의 좌표
인사·전략·조직문화 등 경영 역량 전반에 영향
2015-08-23 13:40:37 2015-08-23 13:40:37
한 남성이 수산시장에서 생선을 고르고 있다. 그는 휴대폰 카메라로 생선을 보여주며 아내에게 무엇이 좋느냐고 묻는다. 이를 바라보던 생선 가게 주인 할머니가 "그게 뭐여"라 묻고 남성은 환한 미소와 함께 "디지털 세상이잖아요"라 답한다. 할머니는 "뭐? 돼지털?"이라며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10여 년 전 한 전자회사 광고의 한 장면이다. 디지털이란 단어를 모르는 것이 더 이상한 지금 보기에는 낯설기 짝이 없다. 디지털이 세련된 것, 혁신적인 것 등으로 상징되는 탓에 기업들은 너나 할 것없이 '디지털 퍼스트'를 부르짖으며 트렌드를 주도함을 강조한다. 디지털의 홍수 속에 피로감을 느낀 대중들은 디지털의 상대적 개념인 아날로그에 '옛 것에 대한 향수'라는 의미를 부여해 열광하기도 한다.
 
◇한 기업의 경영 상황을 평가하는 지표로 '디지털지수'가 주목받고 있다. P&G는 디지털지수를 높이는 노력의 일환으로 근로자들을 구글에 파견하는 '교환 근무 프로그램'을 실시하기도 했다. (사진=뉴시스/AP)
 
그런데 우리는 디지털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나 사용하는 걸까. 사람들에게 디지털에 대해 물으면 어떤 이들은 '기술'을, 어떤 이들은 '제품'을 떠올린다. '0과 1의 두 가지 숫자로 모든 형상을 받아 읽어내는 것'이란 사전적 뜻을 살펴봐도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는 쉽지 않다. 디지털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기업인들에게 물어도 대답이 마땅치 않은 것은 비슷하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맥킨지앤컴퍼니의 조사 결과 '디지털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란 질문에 최고경영자(CEO)들은 '사업을 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법', '소비자와 만날 수 있는 새로운 방법' 등 다양한 답변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맥킨지는 "모두가 틀린 해석은 아니지만 일치되지 않은 여러 관점들은 자칫 조직을 잘못된 길로 인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디지털화=기업의 체질 변화
 
맥킨지가 말하는 한 기업의 '디지털화'는 사업을 하는 전반적인 방법과 새로운 영역에서의 가치를 모색하고 이해하는 모든 과정이다. 이에 따르면 기존 사업 분야에서 성장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가치를 찾는 것, 인접 분야에서 신사업 기회를 발굴하는 것이 모두 디지털화에 해당한다. 자동차 산업을 예로 들자면, 무선 인터넷을 활용해 차량 내 엔터테인먼트나 셀프 내비게이션 시스템 등으로 서비스 영역을 넓히는 것이 디지털화라는 설명이다. 구매에서 사용, 재구매에 이르는 '고객여정(customer journey)'의 단계별 특성을 파악해 고객에게 적절한 메세지를 전함으로써 브랜드와의 유대감을 높이는 것 역시 디지털화의 좋은 예라고 맥킨지는 언급했다. 센서, 애널리스틱, 빅데이터 등 디지털을 말할 때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일련의 기술은 도구가 될 뿐이라고 이들은 덧붙였다.
 
다시 말하자면 디지털화는 사업 영역에 단순히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 수립, 조직 문화 구축 등 경영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체질적 변화를 의미한다. 선제적인 의사결정과 빠른 피드백, 긴밀한 상호소통 등의 기능을 강화에 업무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 주된 목표다.
 
◇글로벌기업 평균 디지털지수 '33점'
 
'디지털지수(Digital Quotient)'가 주목을 받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출발한다. 디지털지수는 디지털에 대한 친숙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한 기업의 CEO가 디지털 경제를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는지를 측정하는 기준이다. 디지털 시대에 대한 비전이나 전략, 디지털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마음가짐, 디지털 전략 실행을 뒷받침할 수 있는 조직 구조와 기술적 재능들이 평가 기준이 된다.
 
맥킨지가 전세계 15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기업들의 디지털 성숙도는 아직까지는 비교적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절반 이상이 평균치인 33점에 못 미친 것이다. 디지털지수가 50을 상회하는 선도기업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디지털화가 기업들의 화두인 것은 분명했지만 실행 측면에서의 편차는 큰 상황이다. 디지털지수가 높은 기업들 중에서도 새로운 기준을 세워 높은 성과를 내는 순수 시장파괴자적 성향을 보인 곳은 스포티파이, 우버, 스퀘어 등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그 밖의 대부분은 기존 사업 영역에서의 변형을 유도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 대형은행 중 하나인 핑안은행의 다이렉트 뱅킹서비스 '오렌지뱅크'다. 오렌지뱅크의 주타겟은 젊은 고객들로 길고 복잡했던 기존 은행 서비스를 빠르고 간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계좌 개설 시간을 몇 분 정도로 대폭 단축했고 다소 어려웠던 금융 포트폴리오를 간소화하면서도 수익은 높였다.
 
 
그럼에도 디지털지수가 높은 기업들을 주목하는 이유는 비즈니스 모델의 효율을 향상시키고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월트디즈니는 리조트와 테마파크를 찾는 고객들을 위한 '매직밴드'를 개발했다. 이용객들은 매직밴드로 놀이기구 탑승 예약을 할 수 있어 지루하게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고, 디즈니는 이용객들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어 시설물 배치를 보다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다. 이 덕분에 2013~2014 연휴 시즌 디즈니 매직킹덤 방문객 수는 전년대비 3000명이나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명품 브랜드 버버리는 지난 2009년부터 '아트 오브 트렌치'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고객들이 버버리의 온라인 플랫폼에 트렌치 코트를 입은 모습의 사진을 올리도록 하고 패션 전문가와 회원들이 '좋아요'와 같은 평가를 내리도록 했다. 이메일이나 SNS로 공유도 가능하다. 일반 고객들은 마음에 드는 사진을 선택해 버버리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 해당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이 같은 접근법은 버버리의 지난해 매출이 6년만에 두 배로 늘어나게 하는데 높은 기여를 했다. 맥킨지는 "기업들은 자신들에게 적합한 디지털 전략이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해 차별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의사결정·조직문화와도 연관성 높아
 
디지털지수 상위 기업들은 디지털 정보를 활용한 선제적 대응에도 능했다. 소비자들의 구매이력이나 인구통계학적 데이터, 음성 정보 분석 등을 통합·연구해 발생 가능한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고 경쟁자들보다 한 발 앞서 트렌드를 선도했다. 영국의 종합생활용품 업체 레킷벤키저의 제약부문은 2012년 월간 방문자 수가 3200만명에 달하는 의학정보사이트 '웹MD'의 정보를 분석해 국가별 감기와 독감의 유형을 분류했다. 레킷벤키저는 이를 지역별 증상을 요약한 정보로 가공해 일반 가정에 무료로 배포하는 등 광고와 홍보에 활용했다. 이후 독감이 유행했을 때 레킷벤키저는 본격적인 이득을 누렸는데, 미국에서만 약 4주간 22%의 감기약 판매 증가 효과를 봤다.
 
기업들의 조직 문화도 디지털지수의 고저에 따라 달랐다. 디지털지수가 높은 기업은 빠르고 기민한 의사결정을 추구하는 반면 디지털지수가 낮은 기업은 리스크를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이는 직원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반영됐다. 디지털지수가 높은 기업들은 사업적 마인드를 겸비한 기술적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디지털 재능을 갖춘 중간관리자 양성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P&G의 경우 디지털 기업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구글과 교환 근무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P&G 직원들이 검색엔진 최적화 기능을 체득하기 위해 직접 구글로 출근하는 것이다. 반대로 구글 직원들은 P&G에서 마케팅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맥킨지는 "한 조직의 디지털 성숙도는 인적자원은 물론 기술, 문화적 변화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수반될 때 높아질 수 있다"며 "디지털 리더를 중심으로 구성원들의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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