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의학 전문지 '더 란셋'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홍수, 가뭄, 폭염 등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후의 피해가 갈 수록 더 심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2100년을 기준으로 전세계에서 극심한 가뭄의 피해를 입는 사람은 10억명, 홍수 피해는 20억명으로 1990년 대비 각각 3배와 4배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다. 기온 변화에 상대적으로 민감한 노년층의 경우에는 폭염에 노출되는 사람이 30억명이나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고령화로 노년층의 절대 규모가 늘어났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심각한 상황임은 분명하다. 보고서는 "불과 6년전에 가정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모두 현실이 되고 있다"며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절제하는 것은 기술적·경제적 범위를 넘어 정치적인 문제가 됐다"고 진단했다. 각국 정부의 노력이 시급하다는 판단이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에펠탑이 지난 3월 '어스 아워(Earth Hour)'에 참여한 전후의 모습. 어스아워는 전 세계 개인, 사업장, 도시, 주요 건물이 지구온난화에 대한 의식을 고양하기 위해 1시간 동안 전등을 끄는 행사다. (사진=뉴시스/AP)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은 오래전에 시작됐다. 대표적인 것이 1994년 발효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인데, 당사국들은 기후변화협약의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매년 대륙별로 돌아가며 회의(COP)를 개최한다. 온실가스의 구체적인 감축 목표를 처음으로 설정했던 '교토의정서'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 감축 의무를 이행하도록 규정한 '발리로드맵' 등이 당사국 총회에서 결정된 사항들이다.
◇COP21, '포스트 교토의정서' 위한 역사적 합의 기대
올해의 당사국 총회는 11월30일부터 12월11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다. 기후변화협약 이후 21번째 회의이자 교토의정서 발효 후 11번째 회의라 'COP21' 혹은 'CMP11'이라고도 부른다. 이번 회의가 주목을 받는 배경은 포스트 교토의정서 시대를 위한 법적 구속력을 갖는 보편적 원칙 결정 여부다. 교토의정서 발효 직후인 2006년 나이로비 회의때부터 교토의정서에 대한 주기적 검토와 자발적 감축 목표 설정과 같은 후속 조치들을 논의해 왔지만 선진국과 개도국의 의견 차이로 번번이 원론적인 수준에서의 합의에 그쳤다.
2009년 코펜하겐 회의는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폭을 산업혁명 이전보다 2℃ 이내로 제한하고 이를 위해 감축 목표치를 제시하는 '코펜하겐 협정'을 도출했지만 승인 대신 유의 형식으로 인정돼 대체안이 되지 못했다. 2010년 칸쿤 회의는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 측정·보고·검증(MRV) 시스템 구축과 개도국에 대한 선진국의 자금 원조를 규정했으나 미완의 합의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2년 도하 회의에서는 2013~2020년을 온실가스 감축 2차 이행기간으로 설정하고 배출량을 1990년 대비 25~40% 줄이는데 합의했지만 정부 차원의 약속이라 법적 구속력이 없다. 미국, 러시아, 일본, 캐나다 등 전세계 배출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국이 불참했다는 것도 한계점이었다. 로렌스 투비아나 프랑스 기후변화협약 수석 대표는 "엄밀히 말해 협상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당사국들은 이번 회의에서 만큼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역사적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총력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20~21일 파리에서 열린 비공식 장관급 회의도 그 일환이다. COP21 주최측이 공개한 문건에서는 법적 구속력을 갖는 회의 결과물을 '파리 합의(Paris agreement)'로 칭하고 이를 위한 정치적 지침을 꼽았다. 파리 합의의 핵심은 기본적인 내용을 짧고 간결한 형태로 담아낸다는 것이다. 이 문건에서는 '공통의 이해(common understanding)', '인식 공유(shared recognition)' 등의 표현이 수 차례 반복됐는데, 이는 모두 장기적으로 적용가능하고 유연한 내용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수렴된다. 5년이나 10년에 한 번씩 새로운 협약을 이끌어내기 위해 복잡하고 어려운 협상을 반복할 필요 없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돕기 위해 2020년까지 매년 1000억달러가 지원되는 녹색기후기금(GCF)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여 선진국과 개도국의 이견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와 관련해 미구엘 카네테 유럽연합(EU) 기후변화 담당 집행위원은 가디언과의 인터뷰를 통해 "파리는 기후변화 대응을 논의하기 위한 마지막 자리"라며 "총회가 실패로 끝날 경우 우리에게 플랜비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충분한 조치들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거부할 것"이라며 실효성 있는 내용을 도출하기 위한 의지도 보였다. 이어 "현재로서는 합의안 도출 가능성을 85%로 본다"며 "높은 수준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만 협상의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당사국들은 연말 회의에 앞서 오는 8월 합의문 초안에 대한 기술적 협상을 진행하며 9월에는 또 한 차례의 장관급 만남을 예정하고 있다. 또한 10월 말까지 제출되는 각국의 감축 이행 목표치를 토대로 11월1일 분석 보고서를 발간한다. 지금까지 유엔에 제출된 각국의 이행 목표를 살펴보면, EU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의 40% 수준으로, 미국은 2025년까지 2005년의 26~27% 수준으로 낮추기로 했다. 일본은 원전 가동 중단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증했던 2013년을 기준으로 2030년까지 26%를 감축키로 했다. 중국은 2030년까지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5년대비 60~65% 줄이겠다고 밝혔다.
◇탄소세 부과, 경제 성장에도 이득
온실가스 감축 방법은 국가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탄소세 부과, 신재생 에너지 이용률 제고, 저탄소 도시 건설 등이 보편적으로 채택된다. 그 중에서도 탄소 배출에 일정 금액을 부과하는 방안을 도입한 곳이 많다. 탄소세 징수는 도입 초기만 해도 "경제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반발을 샀지만 최근 일련의 연구를 통해 환경 보호와 경제 성장에 모두 이득이 된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글로벌 경제 기후 위원회가 이달 중순 발간한 '더 나은 성장과 더 좋은 기후를 위한 글로벌 기회' 보고서도 보다 많은 기업과 투자자들이 저탄소 경제가 생산성을 높이고 세계 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라는 사실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동부 9개주가 연합해 지역온실가스이니셔티브(RGGI)를 창설했는데, 2009~2013년 경제성장률 9.2%, 온실가스 감축률 18%를 달성했다. 같은 기간 나머지 41개주의 온실가스 감축량은 4%에 불과했으며 성장률도 8.8%로 더 낮았다. 캐나다의 브리티시콜롬비아주는 2008년 5달러였던 탄소세를 2013년 30달러로 대폭 상향했다. 그 덕분에 온실가스 배출량은 10%나 줄여 1%에 그쳤던 다른 지역을 크게 상회했다. 고액의 탄소세 부과가 경제성장률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 일찍부터 탄소세를 도입했던 EU 국가들에서도 비슷한 추세가 나타난다. 1990~2012년 유럽 경제는 45% 확대된 동시에 온실가스는 19% 감소했다. 이산화탄소 한 톤당 170달러의 세금을 징수하는 스웨덴은 온실가스 감축률 23%, 경제성장률 60%라는 놀라운 성적을 내기도 했다.
보고서는 올해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 협력의 강도를 높이기에 매우 적절한 시기라고 진단했다. 원유, 천연가스, 석탄 등 화석연료의 가격 하락으로 탄소세 부과로 인한 비용 상승을 상쇄시켜 기업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작년 9월에 열린 유엔기후정상회담 이후 전세계 73개국과 1000여 개 기업들이 탄소세 부과를 지지하는 행동에 참여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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